07 구례로 향했다
구례로 떠나게 된 계기가 간단했다. 일주일 사이에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몰아치듯 찾아왔고 버티다 못해 쓰러질 곳이 필요했다. 더 정확히는 울 곳이 필요했다. 마침 연락 중이던 친구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넌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갈래?"
"음... 구례?"
그렇게 구례로 정해졌다. 내가 울어버릴 곳으로 말이다. 후에 친구에게 왜 구례였는지 물어보니 그 당시 지인이 구례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말을 해서 생각이 났고 더욱이 내가 진짜로 본인의 말대로 훌쩍 그곳으로 떠날지 몰랐다며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사실 어디든 상관없었다. 어디로 떠날지 선택하는 것조차 힘들 만큼 고통에 절어있었기에 설령 그녀가 땅끝마을을 말했어도 난 갔을 것이다. 기차에 올라타 한참을 가는데 도무지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도를 보니 구례는 전남이었다. 부끄럽게도 가는 지역이 어디 있는 곳인지 어떤 것이 유명한지 아무 정보도 없었다. 나는 여행이 아닌 도피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도착했다. 태어나 처음 와보는 구례는 고즈넉했다. 역도 그다지 크지 않아 소박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라 도착과 동시에 치유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급하게 예약한 숙소를 향하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고 부디 기사님이 말을 걸지 않길 기도했다. 누구라도 말을 걸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기사님은 백미러로 나의 시선을 살피다 이내 말을 걸었다.
"아가씨가 잡은 위치는 그 숙소랑 멀텐데?"
"그래요? 저는 주인분이 알려주신 주소로 찍은 건데 혹시 다른 길이 있나요?"
기사님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핸들을 돌리더니 숙소로 쉽게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주셨다. 큰 대로에 내리면 걸어 들어가는 길이 어두워 위험하다며 배려해 주신 거였다. 다신 만나지 않을 기사님이지만 거칠어질대로 거칠어진 내 마음에, 감사한 배려에, 그럼에도 살갑게 인사하지 못하는 죄송함에, 그저 고개를 꾸벅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택시는 떠나갔다. 목요일 밤, 휴가철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여서인지 큰 기와집에 나 혼자 묵었다. 나무 기둥 틈이 뒤틀리며 나는 소리에 찰나는 무서웠고, 드디어 풀어지는 마음에 눈물이 두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찰나는 쓰라렸다. 눈물 줄기는 더 빠르게 흘러내리다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잘 해내고 싶었는데. 나답게 잘 살아가보고 싶었는데. 내가 다 망친 것 같아 내가 너무 미웠다. 그래서 누굴 탓할 수도 욕할 수도 없이 그저 나를 있는 힘껏 미워하고 쏟아내고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참 밉고 동시에 안쓰러웠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어 보니 엄마였다. 전화를 걸었다.
"회사 있을 시간 아니야?"
"혼자 여행 왔어."
"이번에도 제주야?"
"아니. 구례로 왔어."
엄마는 더 이상 놀라워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혼자 훌쩍 떠나는 걸 봤기에 무덤덤하게 맛있는 음식 먹고 잘 쉬다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린 시절 넘어져 울며 집에 와도 엄마는 지금처럼 무덤덤하게 연고와 반창고를 붙여주셨다. 왜 이렇게 다쳤는지, 어쩌다가 다쳤는지, 많이 아픈지. 엄마는 묻지 않으셨다. 그게 참 서러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덕에, 나는 스스로 이겨내는 법을 그렇게 배워갔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함께 해소하는 것보다 스스로 희석시키고 증발시키는 법을. 이는 대단한 자랑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완성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여행이었다. 적당히 울 수 있는 곳. 내가 내가 아니어도 괜찮은 곳.
준비를 마치고 나오니 핸드드립 카페가 있었다. 평소에 즐겨마시지 않던 드립 커피지만 그날은 무언가 홀린 듯 가게에 들어섰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그날은 한 분만 가게를 지키고 계셨다. 추천받아 한 잔을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공간을 둘러봤다. 커피 향이 콧가를 스칠 무렵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사장님은 익숙하듯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녀들 또한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구석에 혼자 앉은 나를 몇 번 쳐다보다가 이내 커피를 주문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마침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한입 입안을 채우니 눈이 번떡 떠졌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맛있을 수 있다고?
적지 않은 양의 커피를 홀짝홀짝 빠르게 마시자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입에 맞으세요?"
"너무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한껏 울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닌, 그저 유유자적 거리를 거닐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러 온 나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 일어서려는 순간 나를 붙잡으셨다.
"너무 맛있게 드셔서 다른 커피 맛 보여드리고 싶어서 내리고 있는데.. 바로 가셔야 해요?"
택시를 이미 잡아 얼추 가게 근처까지 왔을 무렵이었다. 사장님의 간절한 눈빛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앉아있던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마시려고 저희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괜찮으면 같이 마셔요!"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지금 누구라도 붙잡고 울고 싶은 내게 다들 친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골목이 어둡다고 보다 가까이 내려주기 위해 핸들을 꺾은 기사님도, 혼자 머물러도 근처에 사니까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던 게스트하우스 주인분도, 커피를 조금 더 내려 내게 맛 보이고 싶다던 카페 사장님도, 함께 마시자며 내게 말을 걸어오던 그녀들도. 평소라면 그저 일상적인 상황일지라도 흐트러진 마음을 안고 서있는 내겐 너무나도 바랬던 위로고 배려고 따스함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그 당시에는 그러했다.
죄송한 마음에 급히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카페 쿠폰을 챙겨 나왔다. 그 의미는 분명했다.
또 오겠다는 마음.
화엄사로 향했다. 홍매화가 유명하다는 사실도 그날 아침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이유보단 절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무교지만 희한하게 절에 가면 차분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홍매화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그 당시 봄이 늦게 찾아오던 때라 찬 바람에 꽃이 피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면 홍매화가 어렴풋이 피우려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 사진에서 보던 만큼 만개하지 않았다.
간절한 사람이 많아 보였다. 어떤 마음일까. 건강한 삶, 자식들의 행복, 해내고 싶은 도전, 그 숱한 바람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나의 슬픔이 가시는 동시에 그들의 삶의 바람들도 이뤄지길 바랐다. 모두가 그저 평안해지길 바랐다.
유명한 화개장터 구경을 하고 카페에 들러 호화스럽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편지지를 꺼내고 펜을 들었다. 편지를 썼다. 나에게 썼다. 더 나아진 내가 먼 훗날 그 편지를 읽어내리며 비로소 너의 고통이 끝이 났다 위안할 수 있게, 그런 바람으로 편지를 썼다. 편지를 고이 접어 책 한켠에 깊게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괜찮아져 갔다.
인생이 참 어렵다고 느껴진다. 원래도 쉬운 적 없었지만 유난히 더 힘든 순간들을 종종 마주한다. 누군가 방법을 말해줬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인생은 스스로와의 싸움뿐이다. 내가 나를 이겨내야 하고 나를 이해해야 하고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가 있다. 감정을 방치하고 나와의 관계를 회피하면 결국 곪고 터져 회복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필요해진다. 그 시간 동안 잃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자꾸자꾸 노력해 본다. 여행을 떠나서, 눈물을 한껏 흘려서, 스스로를 다독여보며 그렇게 나만의 치유법으로 단련시켜 간다. 완전한 회복이 되지 않은 채 돌아오는 기차에 올라섰지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미워도 그럼에도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네가 참 애잔하고 대견하다고. 내가 미워 떠난 여행에서 조금이나마 나를 끌어안고 왔다면 얼추 성공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잘 흘러가긴 할까? 난 정말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무한한 질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저 그 대답을 만들어가는 내가 있을 뿐. 3월의 구례. 낯설었지만 순간의 따스함이 더해져 실제 홍매화를 보지 못했지만 내 마음의 홍매화 이파리가 서서히 피어났던 3월의 구례.
잘 살아가고 싶었던 나의 첫 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