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말이다. 나의 마음이 여유에 따라 퇴근길 어깨에 기대어 잠든 아주머니가 성가신 날도, 안쓰러운 날도, 그중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헷갈린 그런 순간들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진짜 나의 모습을 궁금해하다 그냥 '좋은 쪽'으로 마음먹어버린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더 들어 지금보다 못한 체력으로 축 쳐져있을 그런 날, 젊은 아가씨의 어깨를 빌릴 양심을 지금 벌어보자는 심상으로.
좋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놓고 결말은 어쩌면 지극히 나를 위해서였다. 잠든 아주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고민들이 나를 위한 결말로 화살을 돌려야만 납득이 가는 것일까. 그저 상대를 온전히 위해서라는 마음을 갖기엔 부족한 것일까. 이 모든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지극히 평범한 것일까. 고민이 뜨개실처럼 계속 계속 같은 움직임으로 짜임이 길어져간다.
비건 친구가 '물고기'를 '물살이'라 부를 때 나 자신이 야만적이다 스쳐 생각하면서 내 식탁에는 어김없이 육류와 해산물이 올라왔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 낙후된 나라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니 버텨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도 선뜻 후원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위선적이다 스쳐 생각하면서 배가 차 음식을 남기는 날은 여전히 있었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끝내 받지 않을 때 나 자신이 먼 훗날 오늘은 후회하지 않을까 스쳐 생각하면서 진동이 멈출 때까지 꿈쩍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지녀온 마음가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생각이 올바른지. 혹여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진 않은지. 또는 나 스스로 내게 상처를 주진 않는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굳건히 지켜가는 것에 대해, 내가 옳다고 보는 시선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나를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자세를 취해갔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내가 낯설고, 그래서 신랄히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때론 자연스럽게 나의 새로운 면모를 사랑하기도하는 다채로운 결말에 도달했다. 그렇게 한 사이클을 돌고 나면 긴 낮잠을 잤다. 또 한 번의 마음 감기가 나아가고 있다고 안도하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책으로 인연이 된 몇몇 사람들과 알고 지낸 지 약 1년쯤 될 무렵, 처음으로 맥주 한잔을 하자고 제안해 온 여자가 있었다. 이름밖에 아는 정보가 없던 서로였기에 맥주 한잔이 다소 부담이 되었다. 그 한잔으로 인해 수많은 정보가 오갈 것이며 이전에 없던 선입견과 사회적 틀이 또 씌워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한사코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꽤나 진솔했고 모두 저 만의 자기애가 보였다. 단순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감정 그 이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터득한 개인만의 환기 방법을 그날의 대화 속에서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딱딱한 직무환경을 벗어난 퇴근 후, 그녀는 좋아하는 야구를 직관하러 가 고척돔에서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크림새우를 주문하고 미친 듯이 응원가를 부른다고 했다. 또 다른 그는,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사놓고 전시해 두며 언젠가 완독 할 날을 고대하는 마음이 본인을 즐겁게 만든다고 했다. 그간 바빠 참석하지 못한 몇 달간 그들을 꽤나 돈독해져 있었고 덕분에 관찰자 역할로 자리하는 내게 대답을 서둘러 바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코 끝을 시리게 하는 바람이 기분 좋았던 그날 밤. 터벅터벅 다소 느린 걸음으로 집을 향하며 생각했다. 나는 버거울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간의 궤적을 점검하고, 인정하고, 다시 환희하거나 마지막으로 남은 슬픔을 털어내는 등, 나의 감정을 오롯하게 마주 할 용기를 얻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을, 사랑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혼자 여행을 훌쩍 떠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때때로 버거우면서도, 그렇기에 그런 나를 더 평온히 끌어안는 내가 되길 욕심내어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물살이'라 부르지 않아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매달 후원을 하지 않아도 가끔은 엄마의 전화를 노력하여 받지 않아도 나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 위한 찰나의 의심을 거두며 진짜 내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2-3시간 헬스를 한다는 노력과 연말 모임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뜨개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러한 노력들과는 견줄 수도 없는 나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
그 투명하고도 투명해서 나조차 모르고 지나가버리는 노력들이 차가운 바람에 씻겨져 온전히 마주하게 된 어느 11월.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겠노라 말하면서도 내게 가혹했고 냉정했지만 내가 도달하고픈 경지는 선명한 한 곳이었다.
내가 나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그 마음이 내재되어야 적절한 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에, 흔들리는 마음이 이리저리 오가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나는 더욱더 내게 모질고 상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 의심의 눈빛으로 거울 속 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자꾸 느껴진다. 투명한 노력들이 더해질수록 몸 안에 단단한 근육 비슷한 형질의 무언가가 내면을 채워 꾸준히 나를 걸어가게 해주는 그 느낌을 말이다. 나는 그 느낌을 결코 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정산을 위해 내 연락처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나와 깊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고. 그날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지 못했지만 나도 궁금해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녀의 투명한 노력들은 무엇이 있을지. 그렇게 또 겨울이 짙어지고 한 해가 끝나간다.
나는 미묘하게나마 또 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