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셈케이 Oct 11. 2024

18 고작 서른셋, 벌써 서른셋



서른셋, 만 나이로 두어 살 더 어려지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숫자 자체가 주는 의미보다 더하기 한 살이 되는 그 의미가 내겐 더 컸기 때문이다. 대단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그럴싸하게 그 나이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여겼고 그래야만 잘 살아가고 있다 자위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무언가를 해내려고 마음먹을수록 새하얗게 변해갔다. 채워지지 않은 흰 도화지를 바라보고 공허하다 느낄 것인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라 느낄 것인지는 한 끗 차이였다. 붓을 들고 선을 그으려 할수록 망설여졌다. 시작에 있어 이전보다 더 대단한 용기들이 더해져야 했다. 또한 선택에 따른 어떠한 결여와 상실감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줄 넉넉함을 키워내는 것에도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그냥 그저 살아가기만 하기엔 감내해야 하는 찰나들이 늘어갔고 잘 버티어내기 위해 난 또 단단해져야 했다. 나의 고심은 늘 한 곳의 의미를 모으고 있다. 그저 내가 평온하길 바라는 의미. 조금 더 욕심내어 행복의 순간들도 이따금씩 찾아오길 바라는 의미.



 가을맞이 이불 빨래를 위해 들린 빨래방. 한껏 돌아가는 빨래를 뒤로하고 한켠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을까.


  어쩌면 조금 더 어릴 때는 삶에 대한 정의가 더 명료했을지 모른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보다 뚜렷했을지 모른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모호해지는 찰나에서 그럼에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냥 버려지는 찰나는 없다는 것이었다. 왜 내게 이러한 일이 생긴 건지 한탄하고 돌아서면 조금 더 키가 큰 내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럼에도 괜찮다고 안아 주었다. 자꾸만 돌도 아니면서 단단해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날 끌어안아 줄 힘이 꾸준히 더 많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분명 사랑할만한 부분도 진정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닿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경험이 더해갈수록 새로운 당신을 앞에두고 흐려진 당신과 당신의 습관이 보일 때 혼자 '무슨 생각하는 거야?'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더 이상 특별하거나 유일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더해간다. 맛있는 음식을 덜어주고 멋진 풍경이 있는 공간에 함께 있어도 자꾸만 사랑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그러다 우연히 대화를 나누던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고민하신 마음이 너무 멋지네요."라는 한마디에 사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내가 우스웠다.


 누군가의 친절과 배려보다 나라는 사람의 궤적을 짚을 수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보다 어려워졌다. 대단치도 않은 나를 대단하게 봐줄 시선과 나조차 넘겨버린 찰나를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고 어렵기에 되려 동동 구르지 않게 된다. 사랑이란 게 늘 그랬다. 필요에 의해 상황에 의해 옆자리를 내어주어도 마음이 따르지 않으면 떠내 보낸 빈자리를 털어내는데 곱절 힘들었다. 사랑일 것 같다가도 사랑이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고 사랑이 전혀 아니다가도 사랑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스쳐가는 사랑들을 더 이상 나열하지 않는다. 버려지는 찰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유의미한 순간으로 내 삶 어딘가에 자리할테니.



 나는 그저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직 이러한 사색을 위해서다. 눈을 떠 이불을 개키고 잠이 덜 깬 채로 출근 준비를 마치면 나는 또다시 평범한 직장인이 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의 삶에 대해, 나에 대해 더 깊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설령 누군가는 나의 생각이 과하다 여길지언정 나는 이러한 고찰들이 보다 나은 나로 만들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시나 오늘도 답은 모른다. 그저 꾸준히 묻는다. 너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너에게 사랑이란 어떤 의미인지. 너는 결국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서른세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안동으로 여행을 떠나려 준비를 마쳤다. 대범하게 당일 투어까지 예약을 했다. 가족과 연인 친구 그리고 나와 같이 홀로 여행을 온 모든 이들이 한데 어울려 그 속에서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혹시 일말의 의미를 얻어오지 않을까.


 나는 계속 계속 물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7 이사를 했고, 진정한 레벨 33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