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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하는 아버지

오만가지 사람마음 24 - 아버지는 만들어진다.


자녀 일생에 가장 큰 영향 미쳐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세상에 어느 강한 사람보다 강하고 어떤 능력자보다 더 능력 있는 자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자식이 올려다 본 아버지의 모습은 슈퍼맨처럼 보인다. 그런 아버지를 자식이 성장하면서 극복하는 일은 그 어떤 인생의 과제보다 큰 문제다. 아버지의 존재는 역사와 문학에서도 끊임없이 다뤄진다. 아버지를 오해하고 결국 죽였던 오이디푸스, 세대 간의 갈등을 다룬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조와 사도제자 등 수많은 아버지와의 갈등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도 정신분석을 창안한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제를 설명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론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를 다루었다. 가족치료를 주장하는 심리치료사들도 가족의 문제로 아버지를 꼽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을 때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 할지라도 그와 함께 한 경험은 자녀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너무 강해도 문제고, 너무 약해도 문제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컷.

아버지는 태양, 자신은 빈 그네

유학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고급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김 모씨는 얼마 전 아내로부터 이혼을 강요받았다. 병원에 근무하는 아내는 인간관계를 잘하지만 남편의 무뚝뚝함을 못 견뎌했다. 그러던 중 카드 명세서에 술값과 이상한 항목의 지출 내역을 발견하곤 남편을 추궁했다. 지출 내역은 룸살롱과 성매매로 인한 지출이었다. 부부싸움은 매일 일어났고, 마지막으로 남편이 상담을 하는 조건으로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상담실을 방문한 남편은 단정하고 말수가 없었다. 묻는 말에 짧지만 군더더기 없이 답변하는 성격이었다. 첫 상담에서 '너무 말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내도 사랑하고 자녀도 사랑한다는 남편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했다. 그렇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술집 문제와 성매매 문제를 말하자, 그는 그날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말했다. 나는 남자에게 술집에서, 호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봤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말이 없는, 아니 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이 필자는 궁금해졌다.

상담 중에도 많은 말을 하지 않은 그 남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림으로 그려 오라고 했다. 그 남자는 그림 대신에 사진 한 장을 찾아왔다. 사진은 강한 태양 아래 비어 있는 그네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남자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짐작한 대로 '태양'은 아버지며 '빈 그네'는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엄격했고 아들이 순응하기를 원했다. 아버지 말대로 유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가졌지만, 자신은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틸 컷.

자녀 공부시키려 엄마 때리는 아버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상담하러온 한 주부의 남편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능하고 평판이 좋아서 돈도 많이 번다. 그런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아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녀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공부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되자, 그는 아이들의 성적을 위해 극단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란 자녀가 성적이 떨어지면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회초리로 아이 엄마를 때리는 것처럼 하다가 점차 강도가 세지고 자신의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는 아내의 뺨을 갈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는 “너희들 엄마가 이렇게 안 맞게 하려면 알아서 해!”라고 고함을 쳤다. 

처음 그 주부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아무리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고 자녀들의 엄마를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때린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많은 사례를 접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이란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버지는 아내나 자녀를 자신의 평판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결코 자기를 반성하거나 자신을 고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반면 아내와 자식은 아버지로부터 탈출해야 하는데 이미 그럴 힘이 없다. 아버지의 돈이 필요하고 아버지가 제공하는 안락이 다른 꿈을 꿀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무의식 속에서 아버지에게 복수할 수도

이런 일이 극단적 사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자녀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니 물어봐도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답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다. 술을 먹은 아버지가 매일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린다. 아내를 때리고 자녀들에게 소리를 친다. 그런데 딸이 커서 결혼을 했는데 술 먹는 남편이었다. 딸은 남편에게 맞고 집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남편의 술 때문에 못살겠다'라고, '남편의 구타 때문에 못살겠다'고.

이 사례를 두고 많은 심리학적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해석은, 딸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저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 정신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망치면서 아버지에게 복수하느냐고 말하겠지만, 인간의 무의식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은 자녀의 무의식에 자리잡게 된다. 자녀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아버지는 평생동안 자녀의 행동과 말을 지배하게 된다. 자녀가 아버지를 거부하면 거부하는 에너지만큼, 자녀가 아버지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인 만큼,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은 자율성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성장이란 아버지와 심리적 결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보고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건강한 자기 삶을 살 수 있고 행복한 결혼도 가능하게 된다.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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