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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아픔에 대해

오만가지 사람마음 22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다'는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다며 포스터를 붙이는 사람도 있다.

딸을, 아들을, 엄마를 잃은 사람들의 절규

그런 힘든 사연을 가진 분이 몇 다리 건너 상담치료 사무실을 찾아왔다. 오래 전에 일어버린 딸을 모든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겠다는 아버지의 일념을 확인했다. 그 일념 탓에 아내마저 잃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역할극을 통해 가상으로나마 딸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주었다. 딸 역할을 맡은 보조 선생님과 같이 식사도 하고 생활도 함께 하게 했다. 그 생활에 몰입하기 시작하니 아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마지막에 딸이 먼 외국으로 가는 장면을 연출했다. 현실에서 딸이 없는 중에도 아버지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보조선생님이 역할을 맡은 딸은 아버지와 함께 자다가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딸의 손을 꼭 쥐고 한동안 놓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또다른 사례도 있다. 한 어머니는 사고를 당한 아들이 숨을 거두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었다. 친척이 보다 못해 어머니를 상담실로 데려왔다. 이 얘기 저 얘기를 건네봤지만 죽은 아들 생각에 어머니는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이 분에게도 역할극을 해보기로 하고 가상의 장면을 만들었다. 아들이 놀러 가는 것을 "가지마"라고 하는 자신의 모습과 "놀러 가겠다"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이 방식은 당사자가 직접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보조 선생님들이 장면을 다 연출하고 어머니는 지켜만 보도록 했다. 이 방식을 '이야기 극장'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머니는 그 장면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몸까지 불편했지만 무대 앞으로 나와 아들 역할을 하는 보조 선생님을 안아주게 했더니 어머니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랫동안 묵혀 둔 슬픔과 허기로 말라버린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다.

또다른 사례가 있다. 상담치료교육 수업시간에 역할극을 해보자고 말하고 지원자를 받았는데, 한 30대 후반의 여성분이 손을 들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해외에서 선교사로 일할 때 한국에 계신 어머니는 병원에서 힘들게 병마와 싸우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의 죽음에 임종할 수 없었다. 비행기 표를 살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죽음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듣고 먼 타국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는 기도의 힘으로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신앙으로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다른 마음 한켠에는 사랑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미웠을 것이다. 이성적 신앙과 정서적 자책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살았을 것이다.

마음은 감정을 통해 드러난다. 반면 생각은 감정과 상관없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감정과 사고가 일치되지 않으면 심인성 질환으로 발전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몸이 아프다는 말은, 마음이 아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연출해낸 장면은 엄마가 누워 있는 병실이었다. 엄마와 딸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아프지만 선교를 위해 일하는 딸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딸로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딸은 안타깝지만 웃으며 엄마를 위로한다. 결국 엄마를 임종한 딸은 정성스럽게 장례를 준비한다. 엄마의 영혼이 웃으며 고맙다 하고, 딸의 손을 잡아준다. 딸은 그제서야 위안을 받는 모습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실감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면, 당사자는 먼저 무감각해진다. 어떤 자극과 말에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허공에 뜬 것처럼 아무 느낌없이 살아가게 된다. 먹고 입고 말하고 노는 것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다. 그 다음에 찾아오는 심리상태는 사랑하던 사람을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려는 열망이다. 이어 혼란, 분노, 절망의 단계가 찾아온다. 이 단계에서 이성이 조금 돌아오지만 자신을 원망하거나, 사람과 상황 탓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시기다. 분노와 절망을 반복하는 등 자기도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을 분출하게 된다. 이 과정이 지나야 비로소 정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몸을 재정비하고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사람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상실의 충격을 겪으면 대체적으로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만큼 상실감을 극복하고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건강한 삶을 가장하며, 괴로운 내면을 숨기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불쑥 찾아오는 분노나 우울감에 하루하루 힘들어한다. 

위로하는데도 조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예전에는 장례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 장례 기간 중 망자를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헤어짐의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일은 세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은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말도 쉬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게 최선일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보통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지나야 하고, 그래도 일상생활로 복귀하지 못하면 심리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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