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한 자녀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폭력이다

오만가지 사람마음2

우울이든 강박증이든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상담치료 때도 자신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자신과 갈등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갈등 해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쓴다. 심리 상담은 그 에너지를 배분하고 올바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물론 상담하는 치료선생님에 따라 원인을 분석하고 이해시키는 것도 병행하지만, 종국의 목적은 현재를 잘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조현병보다 더 무서운 엄마의 잔소리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환청 때문에 괴롭다. 조현병 환자들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묻고 약처방을 받는다. 약을 먹으면 조금 나아지기도 하지만 증세는 쉽게 완치되지 않는다. 이런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상담치료를 할 때 큰 해결책을 기대하지만, 필자의 경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한다. '말을 하라'는 것부터다. 무엇이 들리는지, 그리고 본 것은 무엇인지를 설명해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게 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하는 치료는 완치 목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긴 시간동안 환청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내담자는 상담치료를 중단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발전 상황을 본인이 모를 뿐이다. 환청이 24시간 들리는 심각한 정도라면 병원에 입원치료해야 하는데, 일도 하고, 밥도 먹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상담심리 치료로도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자기 발전도 일어난다. 이 과정을 못 참는 사람들중에는 주변의 가족들이 있다. 그들이 다시 시작하는 잔소리가 모든 걸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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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앞에서도 다 큰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부모. 드리마의 한 장면.


다시 시작된 엄마의 '살 빼라'는 잔소리

좋은 직장에 다니는 한 여성 회사원은 한때 조현병을 앓았다.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다가 병세가 호전되면서 정규직 자리를 얻어 출근하고 월급을 받고 사니 이젠 행복감도 느낀다. 조현병의 특징인 환청이 안들리는 것도 큰 치료성과였다.

그런데 부모의 잔소리가 다시 이 여성을 혼란과 긴장에 빠지게 만들었다. 엄마가 딸에게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병이 있을 때는 잠잠하더니 병이 나은 듯하자 잔소리가 이어졌다.

엄마의 잔소리는 “이제 살을 빼야 하지 않겠니? 맞는 옷이 없겠다. 살 빼야 결혼을 하지” 같은 말들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 화가 나지만,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말들이었기에 참을 수 밖에 없다며 힘들어 했다. 엄마와 별거중인 아버지도 한몫한다. 아버지는 본인이 심심할 때마다 딸을 부른다. 그는 식사하거나 술을 마실 때 종종 딸을 찾는다. 딸이 아프고 병원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곧바로 모르쇠로 일관한다. 딸은 아버지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나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대항할 힘이 없다.

필자는 이 여성 피상담자에게 엄마와 말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랑 대화하는 게 우리 모두의 습관인지라, 엄마와 대화하지 않는 것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엄마의 교육과 가르침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이 여성분은 습관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얘기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엄마의 가르침과 잔소리에 듣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필자의 지시에 따라 머리로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은 잘 따르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부를 때 달려가지 말라고 권유했지만, 번번히 달려가곤 했다. 부모를 만나고 잔소리를 듣는 고통받는 과정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내적인 힘이 생기면서 점차 자기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몸무게 이야기,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이 여성 피상담자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걸 하게 됐다. 아버지가 오라며 자신을 불러도 이런저런 핑계로 찾아가지 않게 됐다. 결국 상황이 딸 중심으로 바뀌어갔다. 필자와 이 여성분은 상담 때마다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상담치료에까지 개입하는 엄마

서른이 된 병철(가명)은 불안장애로 사람과 사귀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랫동안 약도 먹고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알음알음으로 상담실을 찾아온 청년은 상담 자체도 힘들어 했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상담실을 방문했다. 상담이 시작되자, 엄마의 간섭이 눈에 띌 정도였다. 그 엄마는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저도 얼마나 노력했다구요”, “그렇게 말하시면 우리 아들이 좋아지겠어요?”, “저도 심리학을 배웠구요” 등등 수시로 상담치료중에 개입했다.

이를 보는 필자도 넋이 나갈 정도였으니, 아들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갔다. 엄마이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고 수용해야만 했던 그 잔소리는 아들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갔을 것이다. 결국 불안이 극에 달하며 대인관계도 힘들게 됐을 것이다. 필자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은 힘겨웠지만, 어머니이기 때문에 원망도 하지 못하고 함께 지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됐다.

이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엄마의 잔소리가 더 큰 원인인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익숙한 엄마의 잔소리를 사랑으로 여기고 살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환경(엄마의 잔소리)을 수용하는 대신에 마음의 큰 병을 앓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겠는가,

해결은 멀다

누구든 잔소리나 훈계를 할 수 있고 또 사람에겐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말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다르고, 듣는 사람의 성향, 듣는 사람과의 거리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천편일률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잔소리로 인한 조용한 스트레스는 듣는 이가 어떤 심리적 영향을 받는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사람의 마음을 잠식해 간다. 누가 그 환경과 스트레스 상황을 멈추게 하기 전까지는 영혼이 망가져간다.

듣는 이가 자녀인 경우, 필자의 해결책은 무엇보다 '어머니와 거리두기'다. 그러나 어머니와 거리두기를 할 만큼 자녀들은 대부분 강하지 못하다. 사소한 결정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리상태가 되어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변하게 할 방법은 과연 있을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게 자녀의 고통이고, 우리 가정들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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