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아버지, '잘난' 남편이 물러서라

오만가지 사람마음 12

남편의 말로 상처 입은 아내가 하소연을 한다. 남편이 무슨 말만 하면 가슴이 뛰고 무얼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진다고 한다. 자신이 약해서 남편이 "병신"이라고 비아냥대면 자신이 병신 같아지고, 남편이 욕을 하면 욕먹을 짓을 했나보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이 약해서,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남편의 말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을 하는 것이다. 이 내담자는 실제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전쟁은 총알이 날아 오고 폭탄이 터지는 상황을 말한다. 총알과 폭탄의 파편은 살을 도려낸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 가능한 고통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말로 상처를 주는 것도 총알이나 폭탄의 파편처럼 영혼을 도려내는 효과를 낸다. 말이라는 총알과 폭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이 없을 뿐이다. 자기를 학대하고 공격하는 말을 하루가 아니라 일년 또는 십년을 듣게 되면 확실하게 영혼이 망가지고 삶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천천히 무너지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

눈에 잘 띄지않는 저강도 전쟁

전쟁 방식에는 고강도 전쟁과 저강도 전쟁이 있다. 폭탄을 때려 붓는 전쟁이 고강도라면 첩보, 간첩, 심리적 교란 등이 저강도 전쟁이다. 많은 물량을 쏟아 붓는 고강도 전쟁보다 적을 교란시키고 나약하게 만드는 저강도 전쟁이 효율면에서 훨씬 낫다. 많은 에너지와 물자를 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고도의 방법이다. 이 저강도 전쟁은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전이라는 저강도 전쟁이 근대에 시작된 일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는 오랜 옛날부터 존재했다. '사면초가'처럼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일은 서양이나 동양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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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가족 비극사로 남은 영조와 사도세자. 영화 '사도'의 스틸컷.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아버지

상담을 하다보면 확실히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보다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아버지가 더 큰 문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아들은 심약해지기도 하지만 반항심이라도 생긴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아버지를 둔 아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정신병까지 얻는다. 정신병을 얻어도 자기 탓으로 알게 된다.

아버지가 유명한 교수인 고등학생 아들이 심리치료를 위해 찾아왔다. 그는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지만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고 가끔 횡설수설하는 버릇이 있었다. 모든 심리문제의 시작은 불안이다. 내담자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측정하면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치료를 진행하는 동안 아버지도 함께 왔다.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쉽게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도 좋은 신앙인으로 정평이 난 분이다. 그러나 주변의 평판과는 달리, 오랫동안 아버지는 '억압형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억압이란 별거 아니다. 공부에 대한 의견과 함께 "나 때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잔소리였다. 아버지의 모든 말은 다 옳았고 그릇된 것이 없었다. 더구나 신앙이라는 판단까지 더하니 아들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자녀에게는 고통스런 억압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상담을 하러 왔다. 장성해서 결혼까지 한 아들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첫마디였다. "문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아들이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말만 했다. 당사지인 아들과 손녀, 그리고 부모인 아주머니와 남편인 아버지가 함께 왔다. 상담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옆에 앉아서 상담 내용에 간간히 끼어든다.

"애가 일찍 안 일어나요", "약속을 어겨요", "이러다 뭐가 되려는지"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구박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 모습만으로도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짐작이 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유학도 보내고 직장도 마련해주고 결혼도 시켰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탓할 수 없다. 결국 무력감으로 살다가 병이 생긴 것이다. 나는 넌지시 아버지가 문제가 있으니 가족 상담을 하든지, 아버지도 상담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상담사를 욕했다고 아주머니가 전해왔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서 가까운 곳에서 상담 받으라고 권하는 것으로 끝냈다. 이런 가족의 경우, 아들이 죽는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지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의 고집과 자기의 경험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녀는 자발성을 키우고 에너지를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유능한 아버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억압 대신 동등한 대화를

시대가 변하듯이 사람사이, 가족관계도 변해야 한다. 관계가 전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과 집단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 간에도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듯, 개인간의 갈등도 대화가 있어야 해결된다. 대화란 서로가 동등할 때 가능한 일이다. 불평등한 관계 아래서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억압일 뿐이다. 말 많은 사람이 말 없는 사람을, 목소리 큰 사람이 목소리 작은 사람을 억압한다. 나이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을 괴롭힌다.

이런 억압 대신 진정한 대화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체급을 같이 하려는 노력과 연습을 해야 한다. 헤비급 선수가 라이트급 선수와 싸우게 해서는 안된다. 헤비급이 몸무게를 빼거나, 혹은 라이트급에 특별한 혜택을 주어야 동등한 게임이 된다. 이러한 동등성이야말로 대화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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