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서 이 정도 야단도 못치느냐"

오만가지 사람마음 19 자녀교육에 숨어 있는 부모의 이상심리

자녀의 '친구 강박증'...원인은?

자신이 하는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어떨까. 쉽게 하는 일상적인 대화지만, 긍정적일 때는 자녀의 영혼을 채우는 자양분이 된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자양분이 될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꼭 그런 효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부모의 모든 말이 옳은 것도 아니고, 어떨 땐 오히려 독이 되고 폭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디 말뿐이랴 부모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중 하나가 “좋은 사람과 사귀어라”다. 이 말에는 “나쁜 친구 사귀면 안 된다”라는 말이 함께 붙는다. 이런 말은 평소 자녀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이 자녀의 삶을 왜곡시킬 수도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한 여학생이 심리치료 상담실을 방문했다. 그 학생은 친한 친구의 행동 하나하나에 몹씨 신경을 쓴다. 자신과 재미있게 놀 때는 기분이 좋지만 다른 친구와 놀고 있으면 화가 난다고 한다. 이 학생은 '그 친구가 나에게 멀어지면 어떻게 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친구의 마음을 내게만 붙잡아 둘 수 있게 할까'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고 한다. 교실에 들어오면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상해서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너, 공부하기 싫어서 별 걱정을 다 하네”라는 말로 상담을 시작한 필자는 그 학생의 반응을 살폈다. 필자와의 상담에 수긍하고 다시 공부를 할 거라고 약속을 했지만, 한 주가 지나자 다시 친구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에 걱정을 더 했다. 필자는 그 학생이 왜 친구 한명에게 몰두하는지, 다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자유를 왜 주지 않는지, 너만 사귀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식으로 상담을 했다. 하지만 친구에 대해 고민하는 그 학생의 강박증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때마침 그 학생의 아버지도 상담치료 중이라 필자는 아버지의 행동과 말을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그는 필자와 대화하는 도중에 과도한 칭찬과 리액션하는 모습을 계속 보였다. “와! 텔레비전에도 나오셨나 봐요, 와! 수백 명에게 강의도 했고, 와! 이 책을 다 읽으셨나 봐요.”

그런 그 분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이 대단하게 보여요?”
“공부 많이 한 사람, 유명한 사람, 유식한 사람요.”

자녀의 강박증세에 대한 원인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는 '과도한 이상화'(理想化:idealization)를 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사례는 정신분석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이상화'는 사람이나 상황에 너무나도 높은 기대를 걸어놓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특별히, 대단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깨지게 되면 큰 실망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좌절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남을 우월하게 봄과 동시에 자신을 평가절하 하거나, 자신을 이상적 존재로 평가하면서 상대를 평가절하하기도 하는 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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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강박증과 방어기제

이 방어기제를 갖게 되는 이유 역시 부모라는 대상에 대한 상처와 무관치 않다. 부모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하거나 억압된 정서를 오랫동안 가지면서 이상 심리는 시작된다. 결국 결혼 후 자녀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잔소리가 “좋은 친구 잘 사귀어라”가 되어버리기 쉽다. 자신이 '이상적인' 대상을 마음에 두고 살았듯이, 자녀에게 역시 '이상적인 친구를 가지라'는 충고같은 것이다.

한 두번의 충고나 가르침이라면 모를까 입에 닳도록 하는 말은 자녀에게는 노이로제가 될 뿐이다. 노이로제에 빠지면 자녀는 머릿속에서 “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해. 친구를 못 사귀면 난 병신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단순히 말의 반복, 강요 만으로 자녀가 강박적 사고를 가지게 될까? 보통의 경우 말과 함께 정서적 억압이 동반되어 있다. 무서운 분위기, 폭력적 행동, 짜증과 비난 등이 깔려 있을 때는 부모의 말은 송곳처럼 자녀의 몸과 마음에 상처로 각인된다. 부모의 심리적 안정이 없는 상태의 말은 자녀를 경직되게 만든다. 이런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던 부모일수록 무엇이 정상적인 자녀교육인지 모른다. 혼을 내야 교육이고, 야단을 쳐야 고쳐진다고만 생각한다.

같은 풀을 먹어도 독사는 독을 만들고 소는 우유를 만든다고 했다. 좋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자신이 뱉은 말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달리 나타난다. 자기 상태를 객관화하지 못한 채 생각한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데, 결국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약한 자녀일 경우는 그 자녀가 정서적 문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녀 인생을 망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어떤 부모의 경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자녀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가 무시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는 합리적 해결이 아닌 과도한 개입으로 나타난다. 학교의 선생님이 자기 자녀를 야단 친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전후 사정을 따지지 않고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의 멱살을 잡는다. 그 행동이 자녀를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학생들로부터 자녀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게 올바른지 모른다. 자녀에게 청소가 안됐다고 소리치고, 정리를 안 한다고 욕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자녀의 심성이 망가지고 학교생활이 어려워져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부모는 자신이 그보다 더 야단도 맞고, 얻어맞았어도 잘 살아왔다고 강변하기 일쑤다. 모든 걸 자기가 살아온 것을 기준을 할 뿐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를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고 돈 벌어서 할 것 다하게 해주는데, 이 정도 야단도 못 치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자녀에게 미칠 정신적 억압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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