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바로잡으려면,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오만가지 사람마음 13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 가운데 제일 힘든 대상이 청소년이다. 부모, 특히 엄마에게 끌려온 청소년들은 상담할 마음이 없다. 자신의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자 앞에 앉아 있다. 부모는 상담비를 내고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는 듯이 돌아간다. 청소년은 죽겠다는 표정으로 '시간아, 어서가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엄마는 돈만 내고, 아이는 침묵으로

그 청소년에게 “무엇이 힘들어?”라고 물어봐도 도통 대꾸를 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특징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입을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도 쉬는 시간을 위해 참고 있을 뿐이다. 공부하기는 싫은데 학교는 와야 하니, 그래서 책상에 엎어져서 자는 게 시간 때우기에 최고다. 언제부턴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소년을 향해 필자도 별 질문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긴 침묵으로 방안의 어색한 공기를 마실 뿐이다. 그렇게 한 번의 상담이 끝난다.

두 번째는 필자는 필자의 일을 하고 청소년은 고개를 떨굴 뿐이다. "잘 살았어? 어떻게 지냈어?"라고 형식적 질문을 해보지만 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아주 간단한 심부름을 시켜본다. "프린트하게 저 종이 좀 내게 가져다줄래? 물 좀 가져다줄래?" 이 정도의 말을 나누고 행동하는 게 1 단계이다.

세 번째 쯤 만날 때는 좀 더 나아가 심부름 정도를 시킨다. 그러다 청소년이 하는 질문이 이거다. “교수님은 돈 얼마 버세요?”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자신은 상담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 상담사가 아무 일 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상담사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의 엄마에게 돈만 받는' 나쁜 놈으로 보는 시기다. 자신이 싫어했던 엄마와 동맹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 두 사람의 적은 물론 ‘나(상담사)’다. 이렇게 돈 이야기를 하다보면 청소년과 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항상 원칙은 ‘주변에서 중심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에 그 청소년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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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유명한 장면.

상담선생님은 '구나 선생'일뿐

필자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그들도 상담 받은 이야기를 한다. 학교에 상담 선생이 모두 있기 때문에 상담이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상담 선생을 '구나 선생'으로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냐 하면 한 목소리로 “그랬구나”라고 외친다. 상담 선생님이 말할 때마다 공감하는 목소리로 “그랬구나”, “그렇게 힘들었구나”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 형식적으로 상담을 이해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상담사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돌본다고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하루는 또 다른 어머니가 방문했다. 아들이 고1인데 '틱'이 심하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아들은 틱이 시작되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의자 위에서 몸을 뒤트는 정도가 불 위에서 오징어가 구워질 때 오그라드는 모습이라서 나는 '오징어 틱'이라고 명명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유심히 살펴 보니 아이는 어머니와 대화할 때 가장 심한 증세를 보였다. 그러는 중 어떤 단어에 대한 반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문학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는 당연히 영어나 수학이 중요하다며 과외를 시켰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엄마가 원하는 것 사이 불균형이 문제였다. 필자는 상담 뿐 아니라 필자의 제자를 시켜 주중에 아이 집 근처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아무 얘기나 하도록 시켰다. 몇 달이 지나자 아이는 호전됐고, 엄마는 상담을 멈추게 했다. 경제적 이유였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바위처럼 바뀌지 않는 부모

마음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증세가 없어지면 해결된 것이라 생각하는 어른이 또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강의할 때나 대학에서 수업할 때 부모에게 마음이 아프다면 모르니까 꼭 피를 상징하는 물감을 묻히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라고 웃으며 이야기 한다.

아동이나 청소년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부모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청소년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모는 바위를 움직이는 것보다 바꾸기가 힘들다. 아동과 청소년의 발달 단계를 구분하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르다. 공통적인 부분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주변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충분히 형성되어야 다른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단계가 온다. 정체성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사랑'과 '지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은 청소년이 정체성을 찾기 전인데, 그에게 객관적 시각을 주입하기에 바쁘다. '공부해야 하지 않냐', '남을 위해야 하지 않냐', '이 정도는 네가 알아야지' 등 많은 과제를 부여받는데, 내 몸과 마음으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머리만으로 남이 주입하는 당위성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제대로 '사랑'과 '지지'를

부모와 상호작용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성장하는데 있어 부모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든 보호자든 아동과 청소년은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장한다.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 정체성을 세우려면 대인관계와 더불어 자신을 둘러 싼 일들에 대해서 자기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 행동과 감정, 사고의 균형은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게 되면 그 정체성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기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조정하고, 자신의 성격과 세상에 대한 조율도 가능하게 된다. 부모가 이 일들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청소년은 방황하거나 때로는 상담실을 찾게 된다. 부모가 공급하지 못한 정서적 안정감을 선생님이나 상담사 혹은 병원이 완전하게 공급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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