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가족과 멀리 떨어져라

오만가지 사람마음 16-정신적으로 원가족과 결별해야하는 이유

결혼해도 부모에게 시달리기

순희(가명)씨는 엄마의 잔소리와 부모의 부부 싸움 속에서 살아왔다. 결혼뒤에도 부모님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마다 순희씨는 친정으로 달려가곤 했다. 부모님의 갈등을 중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많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나서야 심리상담실을 찾아왔다. 그녀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해결할 방도가 없자 심리상담을 자처했다.

영희(가명)씨는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멀리 살고 있어도 엄마는 전화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곤 했단다. 그런 이유로 마음의 부담을 덜지못해 급기야 심리상담실을 찾았다. 영희씨의 경우는 처방이 간단하다. 엄마와 통화를 30분 이상 하지 않는 것이다. 급하다고 끊거나, “여뽀떼요”하며 통화음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거나 어떻게든 30분을 계속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아진다. 얼마 후 상담실에 온 영희씨는 엄마가 전화도 자주 하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역기능 가정과 200마일 떨어져라."

미국 가족치료 단체에서 잘하는 말이다. 200마일이면 300km정도 되는 거리다. 고통을 주었던 가족 속에서 자란 사람은 그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원가족과 험난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원가족과 가까이 있으면 고통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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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의 한 장면. 사진= SBS 웹사이트

좋은 가족을 쉽게 만날 것이라는 '환상'

우리는 '효도'라는 미명하에 불필요한 간섭과 침범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그 당연함 때문에 부모의 역기능 태도를 자신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간 경계선이 없으면, 자신은 타인의 영향력에 쉽게 노출되고 마음이 무너지게 된다. 인생 자체가 혼란스러움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헤어나려 할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마치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신고 기름 벽을 오르는 행위라고 할까. 노력하고 노력해도 다시 제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힘들게 열심히 살면서 과거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어느 순간 기름 벽을 타고 아래로 쭈욱 미끄러져 수렁에 빠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 이들 중에 상당수는 의미 있는 관계에 빠지거나 사랑을 찾아 쉽게 결혼할 수 있다는 환상도 갖고 있다. TV, 영화, 광고, 그리고 유튜브나 책 등을 통한 대중 심리학이 주입한 결과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간관계야말로 가장 힘든 일이며, 가장 노력해야 하는 과제다. 더구나 역기능의 가족 사이에서 자란 사람들은 긍정적 가족관계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이들은 단순히 이상적인 배우자를 꿈꿀 뿐이다. 모든 고통을 단번에 해결하고 공허한 부분을 채워주며, 이제까지 꿈꾸던 삶을 가져다주고 내 자신을 원하는 만큼 바꿔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과정이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런 이상적인 배우자나 이상적인 결혼은 없다.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만큼의 삶을 살 뿐이다. 결혼한 배우자가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때부터 밖에서 이상을 찾거나 자녀에게 내가 원한 사랑을 쏟거나 받고 싶어 하면서 또 다른 역기능 상황을 만들어 간다.

원가족 고통은 뇌에 저장되어 있다

역기능 가족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부모의 갈등, 가족간의 갈등 경험을 뇌와 근막(fascia)에 저장한다. '근막'이란 근육을 둘러쌓은 막으로 긴장과 수축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뇌에 저장된 기억은 자극을 받게 되면 신호를 보내서 근육을 긴장시킨다.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안좋은 기억과 긴장은 신체근육을 부자연스게 수축과 이완시키면서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그래서 결혼한 부부들을 치료할 때 가장 먼저 접근하는 것이 원가족과 거리두기, 그 원가족의 역기능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심리치료는 원가족이 주는 감정적 신호를 차단하는 훈련이 1단계다. 그 다음에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반복하는 오래된 습관이 원가족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분리해 내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새로운 가족 역할과 행복을 지속하는 방법을 배우는 식이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정신적 상처를 통해 몸에 저장된 긴장을 관계 속에서, 특히 부부관계, 가족관계에서 과장해서 드러낸다. 1차적인 신체적 반응도 긴장이나 심장 박동, 오한, 발열, 복통과 두통 등 심인성 질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고통스런 이미지와 자극은 극심한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뇌피질이 담당하는 사고기능과 판단기능은 외상과 상처에 의한 감정적 뇌의 기능으로 활성화되고 심신까지 장악한다. 그래서 객관적 사고와 판단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 감정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변연계인데, 쉽게 고치기 힘든 부위다. 단순히 말로 하는 치료나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다.

내 원가족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부터

생활속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사고가 상황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과정은, 부모나 역가능 가족에서 함께 했던 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이런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을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사랑이라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을 느끼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변연계는 공명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타인의 지지를 통해 자극을 받는 순간 자신의 내면 세계를 성찰하고 인식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갈등을 파괴적인 방식이 아니라 생산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게 된다. 여기서 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부부라면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상태를 이겨내고 상호 치유자적 관계로 변하게 된다. 분열과 갈등을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이해를 높이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가족 특히 부부가 겪는 문제는 어느 정도 내면의 문제를 반영하기도 한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의식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무의식적 행위이기도 하다. 부부상담, 부부치료, 가족치료등은 이 무의식적 갈등을 의식화 하는 과정이다.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된다는 일은 우리 자신을 직면하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나의 원가족의 갈등을 연속시키며 고통스럽게 살 것이냐, 서로가 치유자가 되어 상처를 회복하는 부부와 가족이 되느냐는 고스란히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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