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사람마음 15
우울한 아내 두고, 남편은 왜 뺀질거리며 웃기만 했을까
한때 방송사들은 가족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SBS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 있었고 EBS는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유명해지니까 '부부가 달라졌어요', '고부가 달라졌어요' 등 '달라졌어요' 시리즈를 방송했다. MBC의 '오늘 아침', KBS의 '아침마당'과 종편 채널의 여러 프로그램도 가족과 부부 문제를 다뤘다. 필자는 그 방송들 덕분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가족치료와 부부치료를 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싱글생글 웃기만 하는 남편
그 많은 사례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항상 웃고, 친구를 좋아하고,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직장을 다니는 아내는 항상 우울하고 스트레스가 많고 일상에 피곤해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방송에서 제공하는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상담, 미술치료, 가상 재판을 하든, 남편은 시종 진지함 없이 웃기만 하고 장난스럽게 참여할 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남편의 심층적 치료를 위해 역할극을 통한 상담을 시도했다. 무대에서 아내 역할을 맡은 보조 선생님이 “넌 항상 진지함이 없어”라고 지적하자 실제 남편은 싱글 싱글 웃으며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는 식으로 대꾸해댔다. 그 말을 하는 가운데서도 남편은 머리를 넘기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거나 가슴에 손을 올리는 행동을 했다. 필자는 그 행동을 알아채고 "웃을 때 가슴이 아프나요"라고 물으면서 그런 행동을 강화시켰다. 보조 선생님이 “넌 진지함이 없어”라고 말할 때마다 필자는 웃는 남편의 가슴을 압박하며 “웃어, 웃으란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남편은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얼굴로 변했다.
필자는 멈추지 않고 물었다.
“언제예요? 언제부터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맥락없는 질문 같아 보였지만, 남편은 분명히 기억을 떠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누구 때문에,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죠?”
“저 때문이에요”
남편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필자는 더욱 몰아부쳤다.
“당신 혼자 이 버릇을 시작하진 않았을거 아니잖아요. 누가 있었죠?”
끝내 남편의 입에서 숨겨진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웃을 때는 아버지가 저를 때렸어요. 제가 웃으면 아버지는 기분 나쁘다고 했죠. 누나들도 제가 웃으면 불행해진다고 웃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은 아버지도 안계시고 누나들도 결혼해서 다 따로 살아요.”
필자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때로 가 봅시다”
이번에는 아버지 역할을 하는 보조 선생님이 무대에 올랐다. 보조 선생님은 매를 들고 있고, 남편의 어린 시절을 하는 보조 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필자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냐고 물었다. 남편은 “개새끼, 씨발놈" 등등 다양한 욕들을 쏟아냈다.
필자가 시작을 외치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선생님이 바닥을 치며 그 욕을 외치고 남편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외치게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외쳤다.
“거기서 나와. 언젠가 행복해 질거야. 그만 힘들어 해. 너도 행복해져야지.“
아내는 눈이 동그래져서 남편의 역할극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잠깐의 순간에 아내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챘을 것이다. 남편의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눈물이고 절규였다.
'웃을 자유'를 억압당했던 남편
어릴 때 천진난만하게 웃고 장난치고 싶었던 자유가 폭력으로 억압당하고, 아버지나 누나들의 비난 때문에 자유를 마음 속 깊이 숨기게 되었을 것이다.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고,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고 살면서 어른처럼 자유롭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고 싶다는 욕망만 강하게 자리잡았다. 결혼 후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만의 웃음과 장난기 어린 행동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편은 아버지와 역할을 맡아서 자신을 위로했다.
“아들아, 내가 아내가 없고 삶이 힘들어서 그랬다. 미안하다.”
역할극 속에서 연출된 잠시의 위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자신의 문제를 고쳐나가는 시발점으로는 효과가 있다. 그 장면을 지켜보다 눈물을 훔치던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결혼 후 한 번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남편을 받아들인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을 하였다.
“여보 미안해, 나는 웃으면 당신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했어.”
어찌 보면 우스꽝스런 생각이지만, 남편의 머리 속에는 어린 시절에 습득한 삶의 방식과 억눌린 잠재의식이 몸에 배어 있었다. 마음껏 웃고 놀고 떠들 수 있는 것을 아버지와 가족으로부터 억압 당한 자신이 결혼을 통해 자유로와졌다고 생각하면서 히죽히죽거리는 생활을 한 것이다. 자신의 생활방식이자 해방구라는 웃음만이 우울한 아내를 돕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웃음만이 부부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내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마음 속 어린 아이가 여전히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면의 아이'와 같이 산다
이처럼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남편의 '과거 어린아이'를 데리고, 아내는 아내의 '과거 어린아이'를 데리고 함께 살게 된다. 이 모습을 연구했던 사람 가운데 '브래드 쇼'라는 저술가가 있다. 그는 이 모습을 '내면아이'로 규정했다. 미성숙한 부부는 모두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 내면아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이용한다는 주장이다. 4명이 사는 부부 생활속에서, 내면에 존재하는 아이를 다시 과거로 돌려보내거나 위로와 치유를 해주어야 정상적으로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