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사람마음 10- 데이트 폭력, 왜 일어나는 걸까
영희(가명)는 남자친구를 끔찍이 사랑한다. 사랑이 깊어지면서 매 순간 그를 생각하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한다. 남자 철수(가명)는 그런 영희가 너무 좋다. 너무 사랑했다. 영희가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희는 전화와 문자를 넘어서 철수의 생활에 대해 다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섹스는 짧고 고통은 길다.
또 다른 여자인 미숙(가명)도 마찬가지 경험을 한다. 사랑했던 남자 민영(가명)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줘서 행복했다. 때가 되면 선물에, 한 달에 한번 가는 여행은 꿈만 같았다. 점점 그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을 해봐도 헤어날 길이 없었다.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이들의 공통점
언론을 통해 데이트 폭력 사건을 많이 보면서 사람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미명하에 저질러진 물리적, 심리적 폭력 말이다. '영화 같은 사랑'이란 다시 말해서 병적 사랑이란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그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훈련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상담교육할 때 남자가 “자기야 내 꿈 꿔”하면 황홀해 하기보다 “내 꿈은 내가 꾼다”라고 말해주라고 가르친다. 상대가 침범하지 못하는 자신의 사적 영역을 만들라고 말한다. 인간은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없다. 부부라도 말이다.
삶이 힘들고 내면이 고통스러울수록 '이상적 이성'을 꿈꾸게 된다.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상대를 원하게 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부모는 옆에 있어주면 된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면 된다.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달라고 한 부분만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알아서 다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요구하지도 않고서 말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솔직하게 미치고 환장한다. 대체 어떻게 하라고.
건강한 개인만이 건강한 만남과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병든 마음 삐뚤어진 마음을 갖고 있으면, 병든 사랑 삐뚤어진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 여학생들이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물어볼 때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가 건강하면 건강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여자가 병 들었으면 병든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힘들 때 만난 남자를 건강할 때 꼭 버리라고 권한다. 남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말할지 몰라도 긴 인생에서 봤을 때 그래야 한다. 억울해 하는 남자들에게는, "나중에 당신의 딸이 힘들 때 도와준 남자와 의무적으로 연애하고 결혼하라고 할 부모가 될거냐"고 묻는다. 그러면 다들 조용해진다. 남자들이 자기가 사귀는 여자에게는 해당되지만 자기 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죽도록 사랑해"라는 대사가 멋있다. 그러나 죽도록 사랑하다보면 정말 죽게 된다. 적당히 사랑하면서 생활도, 직장도, 학업도 잘해야 한다. 젊을 때 그런 사랑을 한번쯤 할 수는 있다. 그 사랑의 연장선에서 결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 후에, 결혼 후에는 생활이다. 영화에서는 그 생활을 보여주진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생활은 지속된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정신적 결핍'을 가진 자를 피하라
또 다시 여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남자가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하고 생명이나 전 재산을 바치는 남자와, 그 사랑을 분할해서 하루하루 나누어 줄 수 있는 남자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거냐"고 말이다. 한꺼번에 '몰빵'으로 사랑하는 것은 쉽다. 환자 일수록 그런 짓을 잘한다. 결핍상태가 그런 사랑의 행위를 하게 한다. 그러나 그 결핍된 사랑이 데이트 폭력과 같은 집착으로 변한다.
연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는 화류계에서 일하는 여자를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보석이고 가방이고 많이 사주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일을 나가자 확 죽였다고 한다. 그는 왜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을까? 이 지점에서 심리적 해석을 해볼 수 있다.
남자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불쌍한 여자를 사랑했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그 여인에게 쏟아부었다. 이를 심리적 용어로 '투사'라고 한다. 자신의 욕구나 결핍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심리적 행위다. 내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상대가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할머니가 배고픈 시절을 많이 겪어서 손자들을 보면 무조건 배고프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 왜곡된 사랑이 좌절되거나 막히면 숨겨둔 분노가 올라오게 된다. “네가 내 말을 안들어?”라는 마음이 들면 폭주하게 된다. 극단적 예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조금씩은 있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다스리고 관계를 잘 이어가는 게 교양이고 품격이다.
사랑하는 방법 가르치는 교육장터가 필요하다
영화를 사랑의 표준으로 삼는다면 인생은 누추할 뿐이다. 사랑이란 이상 때문에 현실의 사랑을 못할 가능성이 많다. 삶이 힘들수록 사랑이란 돌파구를 통해 탈출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이상향이 강할수록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삶이 부유(浮游)하게 된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하루하루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능력은 교육과 훈련으로 다져진 사람이다.
일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약과 같은 사랑을 꿈꾼다. 마음이 병든 사람일수록 마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혼도 아플 때 결정하면 안된다. 잘못된 결정을 하기 쉽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이혼은 건강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하는 결혼과 이혼은 모두 환자들이 하는 행위다. 만남, 관계, 사랑을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툭하면 이혼한다. 젊은이들은 더욱 그런 현실을 답습할 가능성이 많다. 학교와 같이 삶을 배우는 교육장터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