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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갈등에 자녀가 왜 힘들었을까?

오만가지 사람마음 27

팝가수 프린스도 힘들었던 부모 갈등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많다. 그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여다보면 부모의 갈등과 외로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공통된 주제다. 우리들의 부모는 싸웠고, 우리는 갈 곳이 없어 방황했었다. 집보다 교회나 친구가 좋았으며 골목길에서의 탈선과 방황은 집을 벗어나기 위한 일생의 첫 전략이기도 했다.

유명한 팝가수 프린스는 도발적 뮤지션이었다. 그의 음악에서 혹은 콘서트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하곤 했다. 프린스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퍼플 레인>이란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양친의 대사가 나온다.

아버지: 이 집구석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어머니: 당신은 내가 즐거운 꼴을 못 보잖아.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파티를 좋아하는 엄마는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따뜻한 밥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프린스는 그의 회고록에서 "왜 그가 우리 곁을 떠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자녀는 장성하고 부모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어릴 때는 부모의 갈등이 자신이 말을 잘 듣지 않고 공부를 잘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자책한다. 그러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를 나쁘게 보고 연약한 엄마를 돕겠다고 생각한다. 이혼하면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엄마를 선택한다.

무조건 엄마를 편들던 어린 자녀는 장성하면서 둘 사이의 문제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다. 부모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아직도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나이들어 알게된 부모갈등의 이유

박군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면 구경만 하다가, 싸우고 난 후에 방을 치우는 게 일이었다. 싸우고 나면 엄마의 푸념 섞인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초등학생에게 엄마는 주문을 외우듯 "네 아빠랑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희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두 번째 레파토리는 "너는 왜 하는 짓이 네 애비랑 똑같냐"라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박군이 잘못하거나 말썽을 일으키면 칼을 앞에 놓고 "내가 죽으면 정신을 차릴래?"였다. 박군은 배를 타는 일을 하거나 높은 공사 타워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온다. 극단적인 생각과 무기력은 박군 삶의 고질적인 문제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는 지금도 자신의 인생이 안풀리는 것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치지만 곧이어 후회가 몰려오거나 자신의 죄책감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고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도 어머니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랜 상담 후에 알게 되었다.

박군은 나이가 들어도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듯 하다가도 자신감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애는 필수, 결혼은 비추"라고 외치며 산다. 멋있게 그런 문장을 외치지만 자신의 마음속 갚은 곳에서는 여자에 대한 두려움, 즉 '엄마와 다시 살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가득하다. 자신이 연애를 잘 하다가도, 사귀는 여자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나 습성이 조금만 보여도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프린스가 성장하고 나서 자신의 아버지가 이혼 후 가족을 떠난 것을 이해하였듯이 자신도 아버지의 마음이 가족을 떠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박군은 어릴 때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고 밥상을 엎고 하던 모습만이 상처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름 아닌 어머니가 '구타유발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괴롭게 했으면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우울해지곤 한다. 그런 아버지는 곁에 없고 어머니는 이제 박군의 마음을 힘들게 만든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는 자녀를 괴롭혔다

널리 회자되는 '지랄 보존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열량보존의 법칙이란 과학적 용어를 우스개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심리학적 법칙이 숨어 있다. 청소년기 때에 자기 마음대로 지랄을 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지랄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주체적인 존재로 자기 멋대로 살아보면서 세상과 자신과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인간의 그런 특성을 모른 채 청소년기 아이의 이상 행동을 문제로 보고 억압하는 부모가 있는데 잘못된 억압은 자녀를 삐뚤어지게 만든다. 어떤 아저씨가 늦바람 나는 것도 어린 시절 부모말만 잘 듣고 착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서 마음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지랄 충동성이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박군의 어머니도 인생의 지랄 총량을 채우는 과정에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충동과 미련을 남편에게 퍼붓고 요구하며 살았을 것이다. 남편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남편의 주먹 한방을 기다렸으리라. 맞아야 자기 신세를 한탄할 수 있고 원망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 가해자도, 침해도 없는 상태에서 통곡하고 땡깡을 부리면 남들도 자신을 미쳤다 할 거니까 남편이 때릴 때까지 악다구니를 쓴 것인지 모른다.

때리는 사람은 강자이고 맞은 사람은 약자라는 단순 도식의 시각은 문제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 때리는 사람의 속사정, 맞는 사람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때 비로소 두 사람이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면 먼저 내 마음이 편하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는 아버지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라지면 어머니는 다른 대상을 찾았다. 잔소리와 정서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강하고 오래간다. 그 대상이 자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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