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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꾸미고 나가?"
아내를 의심하는 남자

오만가지 사람마음 26

사랑과 집착은 구분이 모호하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관심이 집착으로 느껴지기 시작하기도 하고, 집착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사랑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의 행동이 어떤 것이라고 딱 구분되지 않지만, 주관적으로 사랑이고, 관심이라고 치부하면서 관계는 시작된다.

꽃을 들고 집 앞을 계속 방문하는 남자가 귀찮게 느껴지다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만남과 관계가 시작된다. 개구리가 물의 온도가 뜨거워지는 것을 못 느끼다 죽는 것처럼, 사랑의 연장선이 아닌 숨통을 조여오는 행동을 느끼는 것도 천천히 온다는 것이다.

상담실의 문을 노크한 한 여성의 상황도 그러했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 초부터 깨끗하 고 깔끔한 사람이었다.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은 물론, 물건 하나를 수년간 아껴 쓰는 모습은 털털한 그녀에게는 믿음직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남편이 아끼는 애장품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작은 사소한 일부터였다. 한밤중 자고 있는데 남편은 일어나 아내의 핸드폰을 확인하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의심 없이 지나갔는데 하루는 아내가 화장을 하고 외출을 위해 머리를 만지고 옷을 고르는 모습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꾸미고 나가?" 이 말이 한 두번 반복 되다가 그 말 속에는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입고 생활하는데 누구를 만나길래 그렇게 꾸미느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과 행동이 맘에 들지 않을 때는 괜히 짜증을 내고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의 분노가 아이들에게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은 밤중에 아내의 카톡을 뒤지거나, 말다툼 속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거래처 남자에게 웃음을 남발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말로만 들었던 의처증이 다름 아닌 내 남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여자를 의심하는 남자의 의처증은 어느 시점부터 나타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작은 행동과 관심으로 시작하다가 숨통을 조여 오는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남자 자신도 모르고 아내도 모른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아내도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

영화 '적과의 동침' 스틸 것. 병적인 의처증 남편과 도망가려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편집증에서 오는 의처증

의처증의 다른 명칭 가운데 하나는 편집증이다. 편집증은 '파라노이아'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의심을 뜻한다. 의심을 하면 머릿속으로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짜고,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영화의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편집이라 하듯이,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어디서 보고 들은 사실을 짜 맞추는 행위다. 

의처증 환자는 곪았던 상처가 터지고 가족의 문제가 심각해져 전문가를 찾아오면 치료가 시작된다. 아내의 권유로 남편의 상담을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그의 말에서 짐작이 되는 원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싸웠다. 엄마는 아빠가 소리치면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그런 엄마는 아들에게도 많은 잔소리로 힘들게 했다. 그런데 지금 아내는 엄마처럼 자신에게 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의 행동에 꼬투리를 잡고 소리치면 마음이 편하고 시원해진다고 털어놓았다. 어찌 보면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 대한 분노를 아내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남편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직장을 제외하고 운동을 함께 하는 동호회 사람들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을 느낀다. 그들은 친밀해지면서 사소한 일상과 비밀을 함께 나눈다. 아내 이외의 여자가 있다거나 여자를 꼬신다는 말을 밥 먹듯 농담처럼 주고받았다. 그렇게 주워 들었던 내용은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고 상상하고 짜맞추기를 할 때 좋은 재료로 활용되었다.

심리적 폭력의 다른 모습

마지막으로 남편의 무의식에 숨어있는 성적 환상이다. 자신의 음란성 성적 판타지는 젊은 여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속마음이 들킬까 두려운 남편은 아내 이외의 여자들을 거부하거나 소통 자체를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까 봐 여자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상이 아내에게는, 자신과 같은 상상을 하거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공격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 이 부부만의 문제일까? 당신을 사랑한다는 남자가 머리에 코를 박고 냄새가 좋다고 말을 하던 행위가, 어느 순간 내 모든 소지품과 속옷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으며 자기가 보지 않은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하지만 그런 남자도 있다.

여자가 모르는 사이 여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관찰하면서 처음에는 이벤트를 계획하던 남자가 어느 순간 여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행위로 변한다면 여자의 마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부장 시대에는 그런 의심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자는 밥상을 엎으면서 "어떤 놈하고 붙어먹었어?"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현대는 누구나 폭력을 쓰면 부부라도 처벌받는다는 사실이 남성에게도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폭력은 교묘하게 이뤄진다. 물리적 폭력은 잦아든 반면 심리적 폭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마음의 장난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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