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스토리: 미완성의 저

EP3 part 1 . 무명의주인공

by sama

[게이트 활성화 중…]


파직, 파지지직—

번개의 잔상이 모니터 화면을 가르듯 지나갔다.

그 순간, 미나의 앞에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이번 던전의 제목은


『무명의 주인공』



“이번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미나는 이젠 이 게이트 앞에서도 쉽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조차 없는 제목.

‘무명의 주인공’이라는 그 단어가

어쩐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게이트를 넘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건 아무것도 없는 흰색 공간이었다.

배경도, 인물도, 오브젝트도 없이

딱 한 줄의 문장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이야기 속 조연이란, 언제쯤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그 순간, 공간에 한 사람의 실루엣이 생겨났다.


“당신은… 누구죠?”

미나가 물었다.


그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나는 그 수많은 이야기에서

항상 죽거나 잊히던 조연이에요.”



이곳은 ‘미나의 미완성 소설 속’에서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조연들이 모인 세계였다.

한때 한 장면을 위해 창조되었다가,

결국 삭제되거나 무시당했던 인물들.


이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그녀의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썼지만,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에요.”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완성해주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미나는 무언가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그동안 떠올리지도 못했던 존재들.

단역들, 조연들, 단순한 장면의 배경이었던 이들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순간, 틴커벨 대신 등장한 조력자는—

피오나였다.


“미나. 이번 던전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건… 당신 자신에게도 묻는 질문이거든요.”


“내가? 나한테?”


“그래요.

작가로서, 과연 미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무명의 주인공』

이야기는 그렇게

가장 깊고, 가장 조용한 울림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백색의 공간 위.

무수한 실루엣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미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했다.

기억해달라고—

단 한 번이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죄송해요.”


미나는 무릎을 꿇었다.


“전부 제가 만든 인물들이에요.

그런데 단지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신들을 이렇게 잊어버렸네요.”


그녀의 말에 누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2장까지 쓰고 덮어버린 학원물에서

그저 ‘조용한 반장’이었어요.

이름도, 성격도 없었지만…

사실 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었죠.”



또 다른 인물이 말했다.


“나는… 네가 쓴 동양풍 판타지에서

불 속에 죽었던 아버지였어요.

하지만 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었어요.”



이름 없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흘러나왔다.

묻히고 지워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작가 미나에게 그 기억을 돌려주고 있었다.



그때, 피오나가 조용히 말했다.


“이 던전은 클리어 조건이 따로 없어.

이건 너 스스로가 정하는 거야.”


“……그럼 나는 이 이야기들을 완성해야 해.”


미나는 일어나 펜을 들었다.

그녀의 손끝에 얇은 빛줄기가 모였다.

펜촉이 허공을 가르자, 실루엣들 중 하나가 서서히 색을 입기 시작했다.



“네 이름은… 진우야.

학원물 속, 처음으로 주인공에게 말을 걸었던 친구.”



빛이 퍼졌다.

‘진우’라는 이름이 공간에 새겨졌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고마워요. 나를 잊지 않아줘서.”



미나는 다시금 펜을 들어,

한 명씩,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부여하고, 정체성을 써내려갔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모든 창작물에 책임지는 작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간은 서서히 안정되었다.

하얀 안개는 걷히고, 실루엣들은 모두 자리를 찾았다.


[시스템 알림]

『무명의 주인공』 – 진행률 54%

이름 부여된 캐릭터 수: 17명

기록 보관 중…



“피오나.”

미나가 조용히 물었다.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부터는 너의 이야기 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어.

그 누구도 지워지지 않고,

네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살아남을 수 있어.”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버리지 않아.

끝까지, 끝까지 책임질 거야.”


“여기는… 어디죠?”


이름을 되찾은 캐릭터 ‘진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낯선 현실을 헤매듯 흔들렸지만,

어딘가 단단한 믿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미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에 작은 수첩 하나를 쥐어주었다.


“이건 네 이야기야.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다시 써나가는.”



흩어져 있던 조연들이 하나둘 미나 곁으로 모였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어, 너도 거기 있었구나…”

“네가 그때 그 상점 NPC였어?”

낯설지만 기쁜 재회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제 ‘무명의 존재’가 아닌,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각자만의 이야기를 갖는 인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럼… 이 세계는,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 거야?”


한 조연이 물었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쓰는 유니버스.

수많은 장르와 세계가 겹치고, 충돌하며,

조연들도 서로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이야기.”



그 순간, 시스템 창이 떴다.


[서브 유니버스 통합 시스템 가동]

「스토리 링크」 기능 활성화

메인 스토리 내 조연 확장 허용

선택된 조연: 진우, 수연, 타오, 에이린…


“이거… 새로운 던전이 열리는 신호야?”

피오나가 놀란 듯 물었다.


“아니, 피오나.

이번엔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신호야.”



조연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은 세계가

‘서브 월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학원물, 동양 판타지, 사이버펑크, 일상 힐링…

미나의 미완성 파일 속에서 잊혔던 수많은 세계들이

하나둘씩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다면…”

진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언젠가,

주인공의 자리를 나눠 가질 수도 있는 거겠죠?”


미나는 미소 지었다.

“이미 그걸 하고 있어.

이야기는 이제 ‘나 하나’의 것이 아니니까.”



[시스템 알림]

『무명의 주인공』 – 클리어

새로운 시리즈: 『이야기 너머의 세계』


미나는 새롭게 열린 ‘스토리 유니버스’의 중심에 섰다.

아직 아무 장면도 그려지지 않은 거대한 책장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첫 페이지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야기는 늘 미완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피오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제부터 이곳은… 작가님이 만들어가는 진짜 이야기의 세계예요.”


“프롤로그를 다시 써야겠네.”

미나는 작게 웃으며 책장을 펴들었다.

손끝에서 빛이 퍼지며, 하얀 공간에 배경이 깔리기 시작했다.



첫 장면은 평범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지금껏 등장했던 조연들이

각자의 역할로 존재하고 있었다.


진우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수연은 카페를 운영하는 마법사.

타오는 용병단 리더로 돌아왔고,

에이린은 마을의 힐러가 되어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배경이 아닌 삶의 주체였다.



“신기하지 않아?”

진우가 수연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 이야기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수연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미나가 우릴 다시 써줬잖아.

이제 우리도 누군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



그리고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자,

그 중심에 미나가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가 된 것이다.



“이제, 나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게.”


미나는 펜을 들고 프롤로그를 새로 써내려갔다.


『이 이야기는 작가와 캐릭터들이 함께 완성해나가는 세계다.

여기선 누구도 잊히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다.』



책장이 넘겨졌다.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

새로운 던전, 새로운 갈등,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미나 혼자가 아니었다.


“작가님, 질문이 있어요.”


미나가 펜을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진우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앉았다.


“왜 우리를 만들었나요?”



순간, 미나의 심장이 톡— 하고 울렸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안엔 묵직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널 만들었을 땐,

그저 주인공 옆에서 한 마디 대사라도 쳐주는 캐릭터가 필요했어.”


미나는 숨을 고르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 한마디를 위해, 나는 너의 존재를 만들어냈고,

그 짧은 등장조차 너에겐 전부였더라.”



수연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진짜 인물이 된 걸까요?”


“너희가 다시 나타나서,

내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순간, 공간에 빛이 퍼졌다.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떴다.


[공동 창작 시스템 가동]

각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 서브라인을 제안합니다.

“작가님, 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떨까요?”



미나의 펜 끝에, 이제는 타인의 의지가 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혼자 쓰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타오가 말했다.

“이 세계가 완성되려면,

각자의 진심이 담겨야 해.

그게 있어야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니까.”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는

나도 너희의 이야기를 들을게.”



그날 밤, 공동 작가 회의가 열렸다.

수연은 카페 한편에서 차를 끓였고,

에이린은 노트북을 펼쳐두었으며,

타오는 지도를 꺼내 세계관 구성을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작가에게 요구되는 숙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럼, 우리 다같이 써보자.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미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 손끝에는 더 이상 혼자만의 외로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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