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스토리: 미완성의 저

Ep3 part2 이름없는 책장

by sama

“잠깐, 그 장면… 내가 그렇게 안 썼는데!?”


미나는 책장을 넘기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수정 중이던 시나리오가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다른 전개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위기 속에서 고뇌하다가…’

(삭제됨)

‘주인공은 갑자기 용병단에 스카우트되어 활약함’


“이건 완전 타오 스타일인데!?”



수연은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응, 타오가 새벽까지 플롯 회의하더니 바꿨대.”


“무슨 회의!? 나한텐 말도 안 했는데?”


“작가님 바쁠까 봐, 우리가 먼저 정리한 거야.”

에이린이 미소 지으며 노트북을 돌려보였다.

“이건 수정된 감정선 흐름표.

주인공은 이제 4화쯤부터 연애 감정이 생기도록 조정했어.”



“…연애?? 누구랑??”


“진우.”

“타오.”

“수연.”

셋이 동시에 말했다.


미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누가 주인공이야?!”



피오나가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는 조연이 주인공이고,

주인공은 조연만 따라다니고 있어…”


“이게 내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 맞긴 한 거지…?”

미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조금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망가졌지만…

그래도 생기가 넘친다.’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각자의 목소리가 살아 있었고,

그 속에서 미나는

진짜 ‘함께 쓰는 이야기’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미나는 일어나서 선언했다.


“이제부터 이 세계는 공동 창작 유니버스야.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조연이 될 수 있어.

대신! 나도 내 이야기 하나는 고집할 거야!”



“오, 작가님의 반격이 시작된다~”

타오가 웃으며 말했다.



[시스템 알림]

『게이트 오브 스토리: 유니버스 모드』 전환 완료

“모든 캐릭터가 서사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플롯 경쟁 기능 활성화!


“이번 화는… 내가 쓴다.”


미나는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조연들이 모두 잠시 얼어붙었다.

그 목소리엔 전에 없던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수정 불가. 의견 수렴 없음.

이건 온전히, ‘작가 미나’의 플롯으로 갈 거야.”



진우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럼 저, 이번 화에서 대사 없는 건가요?”


“너는 잠시 배경.”


“으으…”


타오가 킬킬 웃었다.

“흥미롭군. 드디어 ‘작가님’ 모드로 돌아오셨나?”


“그래. 잊지 마. 여긴 결국,

내가 시작한 세계야.”



미나는 펜을 들었다.

그 순간, 공간이 변했다.

책장이 스스로 펼쳐지고, 배경이 자동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거대한 도서관.

수천 권의 책이 떠다니고,

한가운데엔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극장 무대.



“이번 화의 무대는 ‘마음의 도서관’이야.”


“마음…?”

에이린이 되물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이야기의 정수.

완성된 것도, 미완성도, 메모조차 안 된 단편들도

전부 이 안에 있어.”



무대 중앙에 미나가 걸어올랐다.

그녀는 조용히 관객을 바라봤다.


그곳엔 지금까지 등장했던 조연들,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없는 캐릭터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내가 너희에게 들려줄게.

왜 너희를 만들었는지.

왜 끝까지 못 써냈는지.

그리고, 왜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왔는지.”



미나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녀의 진심은 잔잔한 파동처럼 공간을 흔들었다.


관중석의 인물들은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시스템이 반응했다.


[작가 플롯 우선권 발동]

‘작가 시점: 단독 제어’

감정 이입도 상승 + 45%

서사 집중도 +30%



“이제야,

내가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야.”


미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었다.


무대 위에서 미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을 때,

공간은 고요했다.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닌,

무겁고 조용한 공감의 무게였다.


그녀는 무대를 내려왔다.

이제 이야기는,

다시 조연들의 시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로 말문을 연 건 진우였다.


“사실, 나도 작가님이 다시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어요.”


그는 무대 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엔 자신이 등장했던 초기 설정 문서가 구겨진 채 들려 있었다.


“처음에 등장하고,

다시는 불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죠.

그때 느꼈어요.

내가 쓰인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거구나.”



그 옆에서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사실… 제 캐릭터 설정서, 반 정도 쓰다 멈추셨잖아요.”


“아… 맞아… 그때 좀 바빠서…”


“괜찮아요.”

수연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걸로 상처받았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다시 쓰여지고 있으니까요.”



타오가 들고 있던 검을 툭, 바닥에 내려놓았다.


“난 처음엔 그냥 ‘간지 담당’이었지.

대사 짧고, 퇴장 빠르고.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내가 다시 쓰일 거라 믿은 건,

딱 한 장면 때문이었어.”


“어떤 장면?”


“그 주인공이 ‘타오 형’이라고 부르던 장면.

그거 하나에 나도 의미가 생겼거든.”



조용히 듣고 있던 피오나가 말했다.


“미나는,

당신들이 잊히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저… 끝까지 갈 용기가 부족했던 거죠.”



그 말에 미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용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조연들은 그런 그녀를

‘다시 믿고 싶은 작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대 뒤편에 조명이 하나 켜졌다.

새로운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스템 알림]

『스토리 동기화율: 85%』

캐릭터-작가 간 신뢰 수치 상승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자랍니다.”



“그럼 이제,

다음 장을 함께 써볼까요?”


미나가 말하자,

조연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조연이 아니었다.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창작자였다.


“여기… 원래 있었던 공간인가요?”


진우의 말에 미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지금, 도서관 깊숙한 곳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책장들은 하늘로 끝없이 이어졌고,

각 칸마다 책이 꽂혀 있었지만—

표지가 없다.


모두가 제목 없는 책이었다.



“이건 뭐지?”

수연이 조심스레 한 권을 꺼냈다.

책은 얇고 부드러운 빛을 품고 있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이 시작만 하고, 끝맺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쓴 거야.”

미나가 입을 열었다.

“여긴 내가 미완으로 남긴 모든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타오는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 제목도 없고, 표지도 없는 책들.

이걸 전부 다시 쓰겠다고?”


“응. 다 쓰진 못하더라도,

이제는 외면하지 않을 거야.”



[시스템 알림]

『이름 없는 책장』 접근 완료

총 미완성 이야기 수: 231권

동기화 가능 이야기: 7권

던전 활성화 가능성: 1건


“하나가 깨어나고 있어요.”

피오나가 말했다.



그 순간, 한 책이 붉게 빛났다.

책등에서 번쩍이는 문자가 떠올랐다.


『눈물의 왕국과 얼어붙은 여왕』



“…이건 기억나.”

미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한겨울의 저주에 갇힌 왕국 이야기.

근데, 내가 여왕 캐릭터를 만들다가 성격을 못 잡아서…

그대로 멈췄었지.”


“이야기가 다시 깨어나려 해요.

이제, 마주할 때예요.”



[시스템 알림]

새로운 던전 생성 중…

제4던전 『눈물의 왕국과 얼어붙은 여왕』

장르: 북유럽식 설화 판타지 / 감정 해빙

클리어 조건: 얼어붙은 감정의 근원을 찾아,

왕국 전체를 녹이는 이야기 완성



“이번 던전은… 무거울 거야.”


“하지만, 지금의 너라면 가능해.”

조연들이 뒤에서 말했다.

“이제 우리도 같이 가니까.”



미나는 무겁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다시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펜을 손에 쥐고,

또 하나의 미완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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