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술이 곁들어진 회식을 즐겼다. 모여서 업무적 고충을 하소연하고 고마움을 전하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 회사생활의 큰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회식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멀어졌다. 복직 후에는 공식적인 회식이 크게 줄어 하소연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처음엔 기댈 자리가 사라진 듯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회식은 위로의 자리는 될 수 있어도 문제를 풀어주진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SNS에 쏟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해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공감받아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결국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털어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며 좋은 순간만 남기는 이유다.
마음을 기댈 자리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복직 후에는 일로 만난 소수의 동료와 여러 번, 1:1로 점심을 함께했다. 잦은 만남을 통해 서사를 쌓았다. 서로의 관심사와 고민, 인생 철학까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친밀감은 예전 회식보다 훨씬 큰 위안을 줬다.
나는 일로 다져진 동료가 술친구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술잔 앞에서 호형호제한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그 자리에선 다짐과 약속이 남발된다. 그러나 문제를 푸는 건 결국 행동이다. 위로와 공감은 어떤 자리를 빌려서든 나눌 수 있다. 굳이 술일 필요는 없다. 나는 점심 식사 뒤에 함께 나누는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