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미의 의미

by 사만다

최근 유퀴즈에서 김태희가 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점점 생기겠죠.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많이 웃으면서 생긴 주름들은 긍정적으로 예쁘게 봐주세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나이 들어감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늘 ‘이 나이쯤이면 이런 걸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왔다. 그런 압박은 한국 사회에서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정해진 과업을 다 치르고 난 뒤의 삶은 좀처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손발 저림 후유증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복지관 사진반에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서는 아빠가 막내였다. 타의적인 은퇴가 남긴 결과였다.

남편이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사드리며 응원했다. 그 뒤로 아빠는 더 열심히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집에만 있던 몸도 건강해졌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기쁨을 되찾은 듯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그 순간만큼은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잊혔다고 했다.

사진 덕분에 아빠와 전시도 함께 보게 됐다. 그런데 전시장은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괜히 아빠가 어색해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아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그대로 카메라를 들었다. 오히려 주위를 의식한 건 아빠가 아니라 나였다.

물론 내 상황은 아빠와는 다르다. 나는 아직 한창 일해야 할 나이다. 그래서 퇴근 이후의 시간을 취미로 채우기보다는 차라리 일로 채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취미는 돈도 들고 시간도 써야 하고, 성취가 크지도 않았다. 생산성만 따져보면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아빠를 보니 그 비효율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힘이었다. 언젠가 일에서 물러나더라도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건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식물을 키우고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가지치기를 하고 비료를 챙겨주며 화분 앞에 앉아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잊곤 했다. 그 끝에 새싹이 돋아날 때는 작은 환희마저 느꼈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자료를 모으고 문장을 고치며 매만질 때는 시간이 사라진 듯했고, 한 꼭지가 제자리를 찾아 흐름이 탁 트일 때는 짜릿한 기쁨이 찾아왔다. 둘 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이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다만 노년에 쓰는 글은 나를 위한 글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아기가 힘들 때, 엄마가 곁에 없을 때 꺼내볼 수 있는 글. “엄마가 살아보니 인생은 이렇더라.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을 담은 글.

아빠가 사진으로 하루를 채우듯 나는 글로 시간을 채워갈 것이다. 그 기록들이 언젠가 아기가 힘들 때 꺼내볼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나를 유일하게 기억해줄 사람이 아기가 언젠가는 그 글을 통해 엄마를 추억하길 바란다.

(함께 실은 사진은 아빠가 직접 촬영했다. 아빠가 아픔을 잊으며 카메라에 담아낸 풍경처럼, 이 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