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02
수습기자 생활 3주차. 정말 정신이 없다. 오죽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1, 2, 3가지 모두 ‘잠을 원 없이 자는’ 것이겠는가. 선배들이 내주는 과제도 처리하면서, 리드(야마)를 잡고 제목을 붙이는 훈련도 해야 한다. 우리 매체에 맞는 표기법을 준수하면서도 적절한 사진을 찾아 캡션도 다는 것도 일. 정말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보낼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다시 기자라는 세계에 입문하면서 달라진 9가지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지난 월요일 선배는 내게 출입처 목록을 주며 ‘모두에게 전화를 돌리라’는 특명을 내렸다. 현재 KT의 순광대역안심무한51 요금제에 가입 중인 필자는 매월 15GB의 데이터와 100분의 무료 통화, 100통의 무료 SMS를 이용한다. 그런데 2015년 12월 9일을 기준으로 벌써 잔여 통화량은 39분, 문자는 28통이다.
아무래도 공적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카카오톡과 같은 비공식채널보다는 문자로 자료를 요청하거나 미팅 스케줄을 잡게 된다. 그보다는 역시 전화가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더욱 효과적이기에 전화 통화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일부 통신비를 지원해주기는 하나 역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핸드폰요금제는 주말 내로 올릴 예정이다. 데이터 요금은 많이 써도 10GB 정도 수준이므로 통화/SMS 무제한 요금제로 갈아타게 된다. 지금보다 10,000원 정도 더 비싼 통신비를 부담하게 된다.
+그래서 통신비 할인카드를 내년 1월에 새로 만들 계획이다. 30만원 이상 쓰면 7000원 할인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가 있다. 참고.
기본적으로 하루 3번 이상 장소를 옮긴다. 하루 4, 5번도 빈번하다. 전화 통화로 간단하게 취재하는 경우도 많지만, 역시 취재원으로부터 기사 소스를 제대로 얻으려면 얼굴을 맞대고 친해져야 한다. 출입처를 다니고, 간담회, 발표회를 나가야 하는 이유다.
기사 쓰느라 간담회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택시 타는 일도 다반사. 지금까지는 지하철 정기권 55,000원(서울지역에서만)을 끊고 한 달 5번 내외로 버스를 타면서 교통비는 6만원 내외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지금 12월의 1/3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교통비에만 벌써 2만 5천원을 넘게 썼다. 아마 판교에 가는 일이 지금보다 잦다면 7~8만원을 넘는 것은 우스운 일도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늦잠을 자 집에서 회사까지 만원 넘는 택시비를 부담했다. 기자라서 겪는 일이다.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매월 일정 수준 사용하면 교통비를 할인해주는 카드도 있기는 하나, 할인 한도를 정해놓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매월 같은 통신 요금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앞서 언급한대로 통신사 할인 카드가 오히려 더 이득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새로 몸담은 회사는 경제지다. 경제지의 하루는 정말 빠르다. 출근 시간이 6시로 이른 곳도 있고, 필자 회사처럼 7시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최소한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전날 머리를 감고 샤워를 다 마쳤을 경우에 그렇다.
겨울이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수습이기 때문이다. 수습이기에 지각은 금물이다. 부장이나 팀장, 사수 선배에게 찍혀봤자 내게 득 될 것 하나 없다. 차라리 일찍 일어나 정규 출근 시간보다 30분 더 먼저 출근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좋다.
일찍 일어나 출근하면 좋은 점도 있다. 아침 6시 전, 집에서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울시 대중교통 조조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조조 혜택을 받는다.
남자친구도 기자다. 신분이 기자(아직 필자는 수습기자다)인 커플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오늘 기사 잘 썼어? 취재는 잘 됐나? 오늘은 어디서 누구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했어? 오늘은 저녁에 업체랑 약속 있어? 술 좀 작작 먹어”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주말에는 “어제 너무 술 많이 마셨어ㅠㅠㅠ 오후로 약속 미루자”라는 말에도 ‘에구 불쌍한 녀석!’이라 생각하며, “알았어. 속좀 풀고 정신 차려. 오후에 봐”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기자세계로 돌아오면서 남자친구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바쁘면 자기가 얼마나 바쁘겠냐면서 닦달하기도 했고, 매번 데이트 일정을 나만 짜는 것 같다며 투정부리기도 했다. 영화를 한참 보다가 팀장의 지시로 30분간 영화관 밖에서 기사를 쓰고 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안쓰러움’보다는 ‘서운함’을 먼저 내밀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직접 해보니 정말 하루가 전쟁이다. 업계에서 터져 나오는 이슈를 따라가고 새로운 시각에서 기사를 써내려가야 한다. 잠시라도 현실에 안주할 틈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자친구는 틈틈이 문자도 해주고 전화도 해줬다. 예전에는 ‘손가락이 삔 것도 아니고, 화장실 가고 밥 먹을 시간이 있으면 1분 짬 내서 연락도 못 하냐”고 타박했다. 지금은 “화장실 가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연락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평기자는 팀장, 부장의 지시에 되도록 따라야 한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항상, 언제나 이들의 연락을 받아야 한다. 영화관에서 한창 영화를 보고 있더라도, 보트 위에서 여유로운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더라도 부장과 팀장의 호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배터리가 없었다’ ‘진동이라서 몰랐다’라는 변명 따위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네가 기자냐’며 면박을 주는 것은 오히려 애교다. 주말에도 항상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말 심장이 쫄깃해진다. 언제 선배가 어떤 지시를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일요일에는 선배의 지시를 받고 보도자료 한 건을 처리하는 연습을 했다. 선배가 내게 준 시간은 단 15분. 15분 안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선배가 내게 보낸 카톡 메시지, 전화 한 통을 받기 전엔 정말 심장이 벌렁 해진다.
예전 직장에서는 ‘분석’을 추구했다. 하지만 역시 한가지 고민은 있었다. 그 분야를 10년 넘게 연구해온 사람보다 더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할 자신이 없었다. 업계가 돌아가는 이야기,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분석하고 현황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에 가치를 느꼈다. 그리고 일간지로 옮긴 지 3주차.
월급쟁이로 글을 쓴지는 사실 2년 반도 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취재 지시가 떨어져 기사를 쓰는 데 야마(리드)를 잡는 데 애를 먹는다. 최신 정보를 제공해야 하면서도 전반적인 시장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매일 터지는 사건은 빠르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업체와의 관계를 위해 보도자료도 충실히 처리해야 한다.
일간지 시스템 속에서 기자는 분석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현재 시장/산업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분석해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전문가의 의견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주니어 급 기자가 가장 해야 할 것은 ‘기본’에 충실하기다. 기본을 배우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가장 먼저 객관적인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분석을 내놓을 수 있다. 수습기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가 들어선 건물 3층에는 중국집이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중국집 행이다. 가서 굴 짬뽕을 먹는다. 겨울에는 국물이 끝내준다. 그런데 굴 짬뽕만 한 다섯 번 먹은 것 같다. 이젠 질린다. 중국집 안 가고 싶은데 계속 가야 한다. 선택권이 없다. 그냥 주식이다.
비단 이 회사에서뿐만 아니다. 맨 처음 인턴생활을 시작했던 전문지에서도 중국집은 단골 매장이었다. 가끔 반주도 먹을 때도 있었다. 그때도 굴 짬뽕을 먹었다. 기름진 중국집 메뉴 중에서도 그래도 담백하고 국물이 깔끔하다. 수북한 양파, 채소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은 덤. 면보다는 건더기 위주로 건져 먹는다. 면을 많이 먹어봤자 살만 찐다. 그나마 면을 최대한 안 먹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전에는 샐러드나 과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는데 잘못하면 이 회사 다니면서 살이 다시 오를 판이다. 식사량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살이 다시 찔 판이다. 거의 비슷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는 하나 방심은 금물이다. 어쨌든 자장면, 짬뽕보다도 내겐 굴 짬뽕이 주식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였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외국계 회사와 문화에 익숙해졌던 나를 바꿔야 했다. 이제는 마음대로 움직여서도 안 된다. 아무하고나 밥을 먹어서도 안 된다. 어디 갈 때마다 보고해야 한다.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려야 한다. 어떤 기사와 아이템을 쓸 것인지 상세히 적고 확인 받아야 한다. 팀장 또는 부장의 지시에 ‘거의’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기자는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누구나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보고에 충실해야 한다. 어쨌든 기자이기 전에 회사에서 봉급을 받는 사람이다. 회사 오너 입장에서는 기자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해한다. 기자가 쓴 기사는 한 매체, 미디어를 대변한다. 그래서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매체, 언론사의 자존심이고 힘이다.
그래서 계급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밖에서는 전투적으로, 저돌적으로 싸워 기사 아이템을 쟁취해야 하지만, 안에서는 다르다. 엄연히 조직체계가 있고, 그 위계질서는 강하다. 예의 바른 사람으로 다시 한 번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강단이 있어야 한다. 참 어려운 부분이다.
물 마실 시간도 없다. 한 번 자리에 앉아 기사를 쓰면 화장실 가는 것조차 사치다. 어떤 날은 많이 걷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온종일 이슈 처리하느라 기자실에 묶여 있는다. 자연스럽게 장운동을 줄어들고 변비가 온다. 지난 주말에 그랬다. 단체 이동도 잦아 물 마시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드니 변비는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의식적으로 물을 마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이 빈번하다.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연신 마셔대지만, 오히려 카페인 때문에 체내 수분이 증발할 뿐이다. 반찬이나 밥도 건조하다. 술은 먹지만 술은 물이 아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몸은 수분을 필요로 하지만, 내 정신은 수분을 찾을 정신도 없어 보인다. 변비가 ‘친구 하자’며 쫓아올 기세다.
더 많은데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지금 이 시간 이후 선배가 지시한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서일 게다. 좋은 기자로 성장하기 위해,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할 계획이다. 난 정말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가 되고자 한다.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산업의 흐름을 읽고 문제를 짚어주는 사람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