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03
전날 2시간밖에 자지 못했어도 무조건 5시에 일어나 씻고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와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들고 업계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러프하게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출입처에 도착한다. 7시. 자리에 착석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11월 막바지에 경제지 수습기자를 시작한 나는 요즘 '해'를 본 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다. 지하철 입구로 나오는 그 순간 햇빛이 찬란한 그 거리를 기대해보고는 하지만, 어김없이 춥고 어둡다. 아침을 먹지 못한 상태로 출근할 때는 배가 고파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아침까지 먹을 정신은 없어 빈속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엄마가 지어준 밥을 언제 먹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온종일 출입처나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특별함'이 돼 버렸다. 여전히 내 머리는 노트북을 향해 있다.
2주 전 일요일은 가족 모두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딱히 무엇인가 유의미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수습기자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례적인 휴일 출근이었다. 전날은 하루종일 자느라 남자친구도 만나지 못한 상황인지라 우울함은 더욱 깊어졌다. 그렇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내색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누군가에 “힘들다”고 털어놓는 순간, “그러니까 그 힘든 일을 왜 선택하고선 힘들다고 찡찡대냐”라는 피드백이 올 것이 뻔했다. 그 고단함을 알고서 다시 이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진짜 기자로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한번 쯤은 거쳐야 한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래서 가끔은 그 말에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뭐랄까, 요즘 일상이 어떤 면에서는 소모적이다. 대기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들이 많다. 그럴수록 아무렇지 않게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 소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사치일 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수습기자’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버려가면서까지 배워야 한다.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도 오로지 내 몫이다. 나는 수습이니까.
일이 내 생활이고 생활이 곧 일인 직업을 택하고 싶었고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인 기자를 선택한다면 이런 인생관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아야만 한다고, 이 어려운 시기를 넘겨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빡센 기자생활을 견뎌내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참아볼 만하다. 드라마 속 ‘미생’과 같은 삶. 그렇지, 현재 내 신분은 그러하다.
잠시, 20대는 내 일과 공부에 올인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잠시 뒤로 미뤄둔 상태다. 지금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다.
왜 경제지에 들어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이따금 상기해보고는 한다. 앱이나 서비스의 효용 가치에 대해 말하는 대신, 기업의 움직임을 보고 싶어서라고, 그래서 경제지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이다. 거시적인 시각을 기르고 싶은 것도 이유다.
어제 퇴근길. 선배가 “하나를 자세히 알기보다는, 업계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더 좋다. 너무 작은 부분만 보려는 게 과연 잘 안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피드백을 줬다. 인정했다, 아직도 내 시야가 작은 사실을.
그래서 오늘부로 딱 한 달째 수습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에 보도자료도 수십 건 처리하고, 공시도 보면서 기업 활동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해가고 있다. 잠시 내 생각은 버려둘 타이밍이다. 지금은 이 시기를 인내해야 한다. 기본기가 탄탄한 기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