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04
수습 7주차다. 경제지 시스템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완료한 상태다. 주말에 몰아서 자느라 월요일마다 정신이 '외출’한다는 것 외에는 일일 사이클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문제는 발제하고,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는 부문이다. 아직도 '에디터’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크리포트’를 작성한 습관이 남아 있어 시간이 한정된 일간지 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 수습딱지 떼기 전에 이 틀을 '반드시' 깨트리는 것이 과제다.
최근 들어 심적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다. 의욕과는 달리 기사는 잘 써지지 않는다. 기사를 많이 보고 참조를 하지만, 막상 기사를 쓸 때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과 지식이 가득 차 있지만, 글로 풀어내는 데 약간 애를 먹는다. 어쨌든 기사를 써내지 못하면 취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심히 일했다’라는 것을 증명받을 길이 없다. 열심히 취재했는데 글로 표현하지 못한 스스로한테도 화가 난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싶어서 스스로를 자책해보기도 한다. 답은 안나온다. 상황을 탓해보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글로 받은 스트레스, 글로 푼다. 유일한 취미이자,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2달째 수습기자 생활하면서 서러웠던 5가지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고자 브런치를 펼쳤다. "이등병이 군생활하면서 서러웠던 7가지 순간"과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이등병 생활이 더 힘들다는 것에는 무조건 동의한다.
지난 3일 네이버 라인스토어 명동2호점 현장 취재는 가는 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초록색 점등이 3칸이 남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던 것. 오른쪽 무릎이 쓸려서 피가 났다. 손으로 만져보니 무릎이 금세 부어올라 시큰시큰했다. 그러나 스타킹을 내려 상처를 거들떠볼 시간이 없었다. 그보다는 1분이라도 빨리 현장에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요일 오전. 집에 있었으면 다치지도 않았을 그 시간. 휴일에 취재한다고 나와놓고선 도로 한복판에서 넘어져 창피한 것은 차치하고서 오른쪽 무릎에 정말 '미안함’을 느꼈다. 몸을 정말 함부로 쓰고 있었구나, 앞으로 50년은 더 조심하게 써야 하는 몸뚱아리를 잘 간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뚝거리면서 취재는 해야 하고, 무릎은 아프고. 이 상황이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서러웠(었)다. 지금은 붓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다.
신년 연휴 때 부모님은 친척들과 2박 3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연휴 내내 업계 취재에 빠져있던 상황이었던 터라 부모님께 해넘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야 부야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4일,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딸, 1년 만에 얼굴보고 제대로 인사하네"라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내게 "많이 힘들지, 체력이 버텨줄까나 모르겠네. 남이 너에게 뭐라고 하든 꼭 그사람보다 잘 될 거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버티는 게 답이야"라면서 위로아닌 위로를 해줬다.
그냥… 엄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면 또 울 것만 같았다. 엄마는 우는 날 보며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그 일을 해야겠느냐"고 떠볼 것이 분명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맞지만 난 여기서 어쨌든 버텨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의 최종 안식처는 부모인 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안쓰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볼 때 서러움이 폭발하는 것만 같다.
변비가 이토록 오래가는 것도 처음이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수습기자의 일상'에서도 밝혔다시피 물을 마실 정신이 없다. 아침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일은 있어도 물을 마시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렇다고 채소 반찬이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육류나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접하면 섬유소가 많은 식품과는 자연스럽게 '이별’을 고하게 된다. 변은 점차 딱딱해지고, 변기 손잡이를 부여잡고 피x싸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새해가 들어 1살 더 먹은 탓도 있겠지만, 몸 건강 상태가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느낌이 다분하다. 원체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것도 이유이기도 하지만 물을 안마시는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화장실 가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힘들고 시간낭비라서 의식적으로 마시는 물의 양을 줄이기도 한다. 선배따라 이동하느라 화장실 가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몸에서 요구하는 대로 물을 흡수하거나 배출하지 못하니 당연히 생체 리듬이 깨질 수밖에 없다. 물은 나를 필요로 하지만, 나는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 그래서 변비의 고통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제대로 '배출’하지 못할 때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남자친구도 동종업계에서 일한다. 남자친구는 2년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CES출장을 간 남자친구를 위해 2년 째 신년 연휴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몇 안되는 휴일에, 그것도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나서 1년 거대한 계획을 세워도 모자를 시기에 남자친구는 자료처리하고, 자료정리하고, 출장준비하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나는 "괜찮다. 그동안 밀린 자료 정리하면서 시간 보내면 된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100% 진심은 아니다.
모처럼 편히 쉬어도 되는 그만인 휴일인데 강제 '반납’하고 일하는 남자친구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즐기고 놀아야 하는 이 나이에 정적인 활동만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나는 감정도 동시에 생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나도 (수습)기자라서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해해야 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한편으로는, 조금은 억울하다. 그래도 "너도 같은 일 하니까 잘 알지?" 그 말 한마디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컴퓨터공학 전공 후 스타트업 미디어에서 6개월동안 컨퍼런스 준비 및 에디터 업무 지원. IT전문지에서 7개월 수습 후 외국계 미디어에서 1년 6개월 간 테크리포트 및 글로벌 IT기업 기술에 관한 기사 작성. 27살때까지 맡아온 일들이다. "스타트업" "IT"가 주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경제지에 왔다. 경제산업을 이해해야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현재. 각종 경제 용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어렵다. 아직도 IT기술 집약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보고, 기술을 바라봐야 한다. 현재 몸담은 매체가 지향하는 바이고, 그래서 그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고수해온 미시적인 관점을 버려야 한다.
'관점’에 변화를 주는 것 자체가 서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경험해야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초조함이 서럽게 만드는 것이다. 잘한 선택일까,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는 게 옳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시시각각으로 든다. 굳이 비교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10년간 수영만 훈련해온 선수가 부상을 입어 수영 대신 책을 다시 붙잡는" 심정과 비슷할 것 같다.
이것저것 새로 배우는 게 많다보니 뭔가 빠뜨린다. 어제도 혼나도 오늘도 혼나고 내일도 혼날 것 같다. 선배의 지시사항 빠짐없이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서 잘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된다. 예전 지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것 하다가 선배가 호출하면 "아 맞다!"하며 또 한 번 좌절한다. 심장이 또 쫄려온다.
뭘 해도 잘못한 것 같다. 잘하고 있는 건 '한 개’도 없는 것 같다. 자꾸만 작아지고 움츠러든다. 그래서 오로지 쪼그라들었던 심장과 간 크기를 키워서 나만을 위해 글을 쓸 때만 자신감을 펼쳐 든다. 지금까지 글을 써온 게 몇 년인데 기사를 쓸때면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 "모 아니면 도" "0아니면 1"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도 고치고 유연하게 대응하고 싶은데 이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한 조직에 소속된 조직원으로서, 그리고 대외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기자로서 필요한 역할과 마음가짐이 때때로 충돌을 빚을 때마다 혼란스럽다. 기자로서 자질이 없는 건 아닌지 되묻고 되물어 본지는 좀 오래된 것 같다. 불의를 보면 참고 넘어가지 못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 이것만이 기자의 자질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어쨌든 계속 갈 길을 스스로 찾는 것만이 정답일 것이다. 아직도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 열심히 취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아직은 답이 안나온다. 일단 경제 상식 서적부터 펼쳐보고 타매체 선배들 기사도 많이 읽는 것이 우선순위인 것 같다. 하, 기자가 되는 길은 너무 험하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