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05
사수 선배가 7박 9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선배가 없는 첫날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선배는 나를 남겨두고 여행길에 오르는 와중에도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큰 이슈가 터지면, 네가 혼자 잘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나는 그런 선배를 보며 '절대 그런 이슈가 터지지 않길 바라며,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려야죠’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내 간절한 소원과는 달리, 선배가 여행을 떠나버리고 없는 첫날부터 전쟁을 치르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카카오의 로엔 지분 인수! 오전 9시에 보도자료를 보고 '헐 대박’이라며 큰 소리로 탄성을 내버렸다. 그러고서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가 없는 와중에 큰 이슈는 터졌고, 도대체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자료를 쳤다. 그리고 또 가만히 생각했다. '여기서 뭘 어쩌죠? 분석기사 써야 하는데 그냥 취재해서 기사 쓰면 되나요?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솔로몬!'
데스크에서는 박스 기사나 후속 기사를 취재해서 올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연히 취재 포인트는 "왜 카카오가 거대 자금을 들여가면서까지 로엔의 지분을 인수하고 최대 주주로 올라섰을까"였다.
모르지, 나야. 왜 인수했는지. 인제야 카카오가 콘텐츠 플랫폼 강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는 감을 잡아가는 상황인데 알 턱이 있나. 일단, 선배들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을 토대로 전화부터 돌렸다. 취재라도 하면서 야마(리드)를 잡기 위함이었다.
카카오, 로엔엔터테인먼트, NHN엔터 등 관계자들한테 전화란 전화를 다 돌렸다. 전화를 안 받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통화’라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를 파악하려면 기사 속 맥락을 짚거나 자료를 뒤지는 것보다는 '인맥’을 활용하는 편이 가장 빨랐다.
대강 야마가 잡혔다. 홍보팀이라는 공식 채널보다는 '우회' 채널을 통한 정보 습득이 역시 뭔가 유의미하다는 판단을 했다. 내부 소식통을 많이 심어놔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동시에 곧바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업계 선배들이 이번 기사를 어떻게 썼는지 읽어보는 시간조차 부족했다. 정확, 신속하게 이번 이슈를 '탈탈' 털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쨌든 생각보다는 빠르게 야마가 잡혔고, 보도자료를 토대로 보충 취재한 내용을 잘 버무렸다.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래도 사수 없는 첫날, 그렇게 최소한의 대응은 잘했던 것 같다. 물론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이다.
이튿날. 카카오-로엔 관련 이슈는 계속해서 챙겨야 하는데 지시하는 사람이 없어서 불안했다. 다른 매체에서는 꾸준히 보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안 하고 있자니 찜찜하고 하자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근 공시 업무에, 보도자료도 처리해야 하는 바쁜 와중에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릎을 탁 칠만한' 새로운 보도가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 매체에서도 분석 기사가 나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사이에는 너무나 큰 벽이 존재했다.
에라이. 내가 할 수 없는 부문에 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선배가 한국에 들어오면 분명 한주간 있었던 일에 대해 복습시킬 테니, 내가 지금 당장 할 일은 '공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치 독방을 탈출한 자유인이 된 듯한 느낌이 정말 좋다. 하지만, '심장’이 쫄리게 만드는 선배의 재촉이 없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내 사수는 밀고-당기기를 잘했던 것 같다. 풀어줄 때 풀어주고, 쪼을 때 쪼아주는 그런 선배.
하루라도 빨리 선배가 한국에 돌아와서 남은 4개월도 밀땅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선배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