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만다 Feb 17. 2016

정리하고 싶다

수습기자의 일기 10

너무 정신이 없다. 내 주변을 크게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숲도 보고 나무도 보고 물도 마시면서 여흥을 즐기면서,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다. 


수습기자라서 그런 걸까? 정식 기자가 되면 좀 나아질까 기대해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기자라는 삶이 원래 이런갑다! 몰랐다.ㅠ.ㅠ 



당장 시급한 문제는 내 주변에 놓인 물건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 자료정리


간담회에서 받은 자료들, PDF로 정리하고 싶다.

일부러 비싼돈 주고 휴대폰 스캐너까지 샀는데 소용없다.

정리할 시간이 없다.ㅠ.ㅠ



2. 바탕화면 이미지 캡처 파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캡처할 일이 많다. 

기사쓸 때 증거자료로 확보해야 할 일이 많아서다.

기사쓰고 나면 자료를 따로 잘 보관해야 하는데 보관해둘 시간이 없다.


바탕화면에는 캡처 이미지가 넘쳐난다. 바탕화면에 파일 늘어뜨리는 걸 혐오했는데

그걸 지금 하고 있다.




3. 다운로드 폴더


보도자료, 사업계획서, 보도자료 이미지, 회사 로고 CI로 넘쳐나는 다운로드 폴더.

매주 정리해도 또 새로운 파일이 쌓이고 또 쌓인다.

정리하는 게 일.

이제는 포기.ㅠ.ㅠ




4. 헤어스타일


머리를 정리하고 싶다. 그런데 미용실을 간 지도 반년이 넘었다.

미용실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마나 남자친구 만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요일 '토요일’을 뺴면 일요일.

일요일엔 월요일 발제 및 지난 한주 리뷰를 해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미용실 가면 반나절 소요된다. 그냥 과감히 미용실가길 포기한다.


대부분 예약을 받던데 주중에 미리 예약할 짬이 없다 ㅋ 그게 함정이다.




5. 일정


얼마전 89스타트업 친구들과 모임 일정을 잡았다.

부서 MT가 2월에 있는 줄 알고 2월에 잡았던 약속을 3월로 미뤄놨더니

부서 MT가 3월로 잡혔다. 

다시 부서 MT 일정으로 인해 모임 약속을 또 미뤘더니,

남자친구와 기념일이었다.


스케줄링을 잘하던 나에게도 기자들의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캘린더 앱에 일정을 채워놓지도 않고, 지난 일정을 리뷰하는 것도

잊어버린 지 오래다.



6. 건강


스트레스받지, 점심 잘 챙겨먹지, 잠 적게자지, 

저녁에 술약속이라도 있으면 술먹어야하지, 물도 적게 먹지(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사실)

대다수 고기, 밀가루가 메인이다. 채소만 먹고 싶기는 한데 또 채소만 먹으면 힘이 안난다. ㅠ.ㅠ

건강을 잘 챙길래야 챙길 수가 없다. 피부 관리도 어쩌다 생각나면 이주에 한 번 꼴로 팩을 붙이는 게 전부다.

요가를 일주일에 3번 가고 싶어도 저녁에 회의나 회식이 잡히면 가고 싶어도 못간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스르르 잠들기 일쑤다.

건강음식 챙겨 먹을 겨를도 없다. 



자료정리 잘하고, 바탕화면에 쓸모없는 파일 두지 않고, 일정 관리 잘하고, 건강 잘 챙기고, 외모 단정하게 꾸미고 다니는 삶을 추구했는데

수습기자 생활 시작하면서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지난 3개월간은 추구하는 삶과는 거리가 먼 현실 때문에 갈등했다.

지금은 포기했다. 포기하는 편이 속이 편하다.

일단 수습기자 생활을 잘해내는 게 목표다. 나머지는 그 다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일상의 편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