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기자의 일기 09
선배가 명절날 내준 과제로 기사 공부하다가 생각 정리 중.
#1.
가끔은 언론이 너무해. 지나칠 정도로 성과지표와 숫자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다.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하고 나서도 계속 게임을 익히고 전략을 스스로 구상하는 신경망 구축에 힘써왔다. 그간 성과도 계속 발표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성과는 언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저 기사를 장식하는 건,
"네이처 논문, 이세돌 9단, 세계최초 프로 선수를 이긴 알파고"
이 타이틀이 너무 매력적인 것 뿐이라 이제야 언론에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봇물처럼 쏟는다. 때로는 개발자와 기획자가 프로덕트를 만들고 제품을 기획하는 그 과정에서 흘리는 피땀을 무시하는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가끔은 합리성을 가장한 행위라고 보여진다. 자극적인 타이틀,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듯한 리드문. 껍데기만 포장하고 찬양한다.
#2.
오늘 오후 2시까지 연휴용 기사를 마감하느라 책상 앞에서 기사쓰기 삼매경에 빠져있던 찰라 여동생 "언니, 부재중 통화가 왔더라"하면서 거실에 놓여있던 내 아이폰을 들고 있다.
받고보니 당직 선배. "넌 뭐하길래 전화를 하면 받지를 않아?" 주말에 전화를 안받아서 혼이 났다.ㅠㅠㅠㅠ 아침부터 또 혼이 났다 ㅠㅠㅠ 맨날 혼만 난다 ㅠㅠㅠㅠ
한편으론 이게 크게 혼날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문이 마음 한켠에서 피어올랐다. 9to6. 주5일. 회사와 나와의 계약된 시간 외 간섭받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과 나의 의지........ 기자가 되기는 틀렸나 보다. 하지만 난 24시간 일하는 기계가 아닌데 기계처럼 일해야 함을 강요당할 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인터넷, 스마트폰 따위 사라졌으면 좋겠어.
#3.
자유와 개성의 날개짓이 껶여진다. 그리고 조직에 동화되어야만 한다고 세뇌당한다. 공장화를 거치고 난 '자아'는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걸까. 내가 없어질까 두렵다.
혹자는 "잠시 너만의 색깔을 버리고 맞춰주라"고 한다. 수년간, 수십년 간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살다가, 그 이후에 다시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선인들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4.
군대가 나은지 수습기자생활이 나은지 묻는 질문에 유경험자들은 "감히 군대랑 비교불가. 수습생활이 훠너어어엉ㄹ씬 낫다"고 말했다.
아니... 이것도 힘들고 어려운데 군대생활은 이것보다 더 처참하다니.... 상상조차 안된다.
#5.
일 시작하고 나서. 몇주 만에 부모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슬펐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부모님은 어제보다 더 늙어있었다. 나부터 살고 보겠다고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그 시간동안, 부모님은 지난해보다 더 늙어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안쓰럽고 미안하다고 하신다. 나는 왠지 모르게 너무 슬퍼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면 이따금 혼자 운다. 일을 통해 자아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을 하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행복하지가 않고 우울해진다.
군대식 문화. 반드시 그 문화를 겪고 이겨내야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시스템이 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자산이 되어주기는 할까. 나는 왜 계속 고민만 하는 걸까. 고민이 끝나고 나면 나는 내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부모님의 흰머리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걸까.
#6.
멀티태스킹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에 효율적인 동물이 아니며, 애당초 멀티태스킹은 효율성과는 먼 방식이라는 논문도 발표되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 요구되는 것은 오롯이 멀티태스킹이다. 대학생활 내내 배운 게 절차지향형 프로그래밍이라고!
#7.
로봇이 기사를 쓰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도 '속보'가 인간 기자의 경쟁력을 논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로봇이 실시간으로 속보를 처리하고 공시를 쓰는 세상이 오게 되면, 그땐 인간 기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나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분석(Analaytics), 데이터저널리즘이 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