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만다 Feb 22. 2016

단순 보도 그 행위를 넘어서

수습기자의 일기 11

하루에 수십, 수천 개의 기사가 쏟아진다. 기자 간담회라도 열리면 제목과 리드가 다른 수백 개의 기사가 양산된다. 요즘은 로봇도 기사를 쓴다. 이 마당에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엇비슷한 뉴스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어떤 차별화 전략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고민은 해보는데 딱히 답은 없다. 일단 '수습’부터 떼는 것이 과제다. 






오늘은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컴퓨터인 알파고와의 대국을 앞두고 미디어 브리핑이 열렸다. 오후 5시 한국 기원에서 열리는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 30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장소에 도착했다. "뭐, 기술적인 내용이 대다수이기도 하고 30분 전부터 미리 오는 기자가 어딨엉ㅋㅋㅋ"하면서 도착했는데, 나의 착오였다.



30분부터 입장 가능하다던 대국장은 벌써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들로 가득찼다. 안쪽으로 들어갈 자리도 없어 남는 의자에 그냥 앉아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한국 기원 도착했습니다’라는 부동보를 날리고 나서 한숨부터 푹 쉬었다. 이 많은 선배들 틈바구니에 껴서 나는 무엇을 써야 하나….


이날 일문일답과 자료를 포함해 총 4개의 기사를 썼다. 순전히 양으로 밀어붙였던 것 같은 판단이 뒤늦게 든다. 급하게 쓰느라 몇 군데는 오타도 났다. 돌이켜보니 (수습)기자로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 잘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화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수많은 기사 중에 독자의 간택을 받는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들이다. 기자란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사람인 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에 크게 연연할 필요도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아쉽다.


누구나 훈련을 통해 사건사고를 보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들과 경쟁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잘한다고 어필할 수 있을까? 무엇을 잘한다고 해야 내가 경쟁력을 갖춘 사람임을 강조할 수 있을까? 보도하는 그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두는 것만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물론 이제 수습기자라는 딱지조차 떼지 못한 내게는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가지만 잘하는 것보다는 잘하지는 못해도 모든 것을 경험해본 '제너럴(General)'의 가치 비중이 더 높다. 회사에서도 그런 인재를 원한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픈 분야가 생긴다고들 한다. 더 연구해보고 싶고 알고 싶고, 깊이 파고 싶은 분야가 생긴단다. 그 분야를 찾기 위해, 편협한 시각을 갖지 않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 집단 지성을 구현하기 위해 그래서 다시 그 힘들고 힘들다는 기자 세계에 입문했다. 물론 여전히 내 신분은 수습기자에 불과하다. ㅠ.ㅠ


3개월째 수습기자 생활을 해보니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다. (늙어서) 굳어 버린 머리 때문에 이슈 팔로업을 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살덩이는 덤이다. 그런데도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있다. 앞으로 막연히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생겼다는 거다. 바로 데이터 저널리즘이다!


데이터보다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팩트는 없다. 이미 다 알려진,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정보이지만 빅데이터에 분석을 더했을 때 새로운 팩트를 발견해볼 수 있다. 단순히 "그럴 거 같은데, 그랬을 거 같은데"라는 가설을 검증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거다. 앞으로 어떤 산업이 전도유망한지, 왜 그 산업이 망했는지를 볼 수 있는 수단도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와 저널리즘을 접목해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떠올리는 거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 이면의 진리를 도출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이터로부터 일단 유의미한 것들을 도출하고 해석하는 일부터 시작해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데이터를 읽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인생 경험도 부족하다. 그래서 여기에 필요한 소양을 쌓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그래서 참으로 매력적이다. 짤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주고 받고, 많은 사건들을 겪는다. 다이나믹하게 살다보면 내 안의, 내 인생의 답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건을 단순히 보도하는 그 이상의 가치. 데이터저널리즘으로 찾을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해본다. 아직 꿈이 있어서 행복하다. 꿈을 꾸는 20대라서 행복하다. 


https://twitter.com/eintas07/status/608190590245691393

PS. 사회경험이 풍부한 인생 선배들은 쥬니어 레벨에서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빡세게 기본기를 잡는 과정이니 힘들어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차근차근 밟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나중에 3~4년차 되면 그때 실력 발휘 할 수 있다며 견디는 것이 답이라고 한다. 일단 견디는 것, 버티는 것! 그게 먼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