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일기 19
"무슨 일기인가? 블로그에 연재하는 거 잘 보고 있어."
지난 토요일, 국장께서 내게 갑자기 건네신 말 한마디. 뜨끔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과 브런치를 통해 표출해왔던 개인의 사상을 들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차 싶었다. 잔소리하실 거라 생각했다. "기자는 그런 거 하는 게 아니야. 기사나 충실하게 써"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줄 알았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운을 뗐을까 싶었던 찰나
"이수경이는 매체로 수식 받길 원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길 원하는 거 같은데?"
라고 말씀하셨다.
5월 7일. 화창한 토요일 기자협회 축구대회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진행되는 축구대회 응원단으로 차출된 일로 상심이 크던 차였다. 그 전날 임시공휴일에는 내내 비가 내린 턱에 나들이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우천으로 대회가 취소됐으면 하는 바람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넘나 화창한 것.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니 낯익은 회사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축구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몸을 풀고 있었고 응원단 석에는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온 선배들과 나처럼 응원 나온 수습 여자 동기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바로 응원에 들어섰다.
한 달 내내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응원하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춤을 추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즐겁게 응원을 하면 됐다. 후반부에는 북을 건네받아 양손을 번갈아가며 북을 쳐댔다. 뭔가 신났다. 선후배가 한자리에 모여 북 치고 장구 치고 웃고 떠들고 응원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속감’이었다.
모든 경기를 종결하고 행신역 근처 음식점으로 이동하기 오전 10시. 설마 아침부터 술을 먹겠느냐는 예감은 어김없었다. 테이블마다 맥주 2병 소주 1병씩 배부된 이후부터 무한정 회식이 들어갔다. 축구대회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작은 이벤트일 뿐이었고 본 무대가 시작된 셈이었다.
에고. 좋은 날 무슨 아침부터 불려와서 술 먹느냐 한탄을 하면 한없이 스스로가 불쌍해진다. 좋게 생각했다. 그래, 좋은 선배들과 좋은 동기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야. 사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회사 선배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정말 힘들다. 얼굴을 자주 보고 부대껴야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데 기자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다. 출입처로 바로 출근해버리면 주간 당직(주당)이나 야간 당직(야당) 때에만 겨우 회사에 들어간다. 그마저도 매번 똑같은 선배랑 당직을 서게 되면 이름만 아는 선배들도 수두룩하게 된다.
부서 선배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쫑알쫑알 수다를 떨며 맛있게 갈비를 먹었다. "이거 너무 달지 않아" "많이 못 먹을 거 같아" "여기 야채는 맛있네요"라며 여자들의 수다를 떨었다. 왕언니, 둘째언니, 재미부장과 함께한 아점(아침식사+점심)은 꿀맛이었다. 적당히 먹고 어떻게 하면 중간에 빠질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오후라도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선배들이랑 주변 산책도 하고 선배 따라온 6살짜리 꼬꼬마를 데리고 행신역 주변을 거닐었다. 6살짜리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칭찬하는 것. "와 동생한테 씽씽카 양보한거야? 동생이 정말 좋아했겠다" "유치원에서 발레도 배워? 언니는 발레 배워본 적이 없는데… 발제 동작 보여줄 수 있어? 왜 정말 잘한다~~" 눈높이 학습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배들도 가고… 할 일이 없어졌다.
슬금슬금 가방을 가지고 집에 가려는 찰나 붙잡혔다. 이쪽저쪽 테이블에 옮겨 다니고 대표님과 악수도 하면서 아하하하하하핳ㅎㅎ 즐겁게 대화하면서 놀았다. 우리 회사가 언론사이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술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다. 그 점은 넘나 좋은 것.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와중에 국장께서 내 쪽 테이블로 건너오셨다.
나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길을 가다가 오빠가 "저 사람 어때?"라고 물어봐도 대개는 "어, 못 봤어"라고 응대해 버린다. 상대방의 얼굴이나 몸매를 보지도 않고 관심도 두지도 않는다.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의 배경 정보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다. 우리 회사로 이직한 지 한 달 된 선배가 "너 정말 회사 소식 잘 모르는구나?"라고 했을 정도로 타인에 대해 심드렁한 편이다.
나만 잘하면 되죠. 저 혼자 버티기도 어려운 세상인 걸요.
내가 기억하는 국장과의 에피소드도 하나밖에 없다. 언론사의 SNS 전략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물어보는 국장께 "사실 브랜딩 외에는 도움되는 것은 없다"고 답변드린 적이 있다. 그것 이외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 술자리에서 IT와 스타트업쪽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드린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국장께서 내 브런치를 '잘' 보고 계신다는 말에 내심 놀랬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철저히 개인 고유의 영역인 브런치와 페이스북 활동에 대해 제재를 하시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예전에 어떤 선배가 "기자는 찡찡대면 안 돼. 그런 이야기 할 꺼면 너 혼자 보는 일기에나 써"라고 쓴소리를 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오빠도 SNS를 통해 겪게 될 부정적인 이슈는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런데 국장은 내 SNS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체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자신도 그런 가치를 높게 사는 시대를 사는 동안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시대는 변했고 그런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 이제는 기자 개인의 브랜딩을 강화하고 팬을 늘려나가야 하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씀하셨다.
"조중동에서 쓰는 네이버, 카카오 기사가 너(이수경이가..를 한 500번 반복하셨는데 낯간지러운 관계로 지칭대명사인 너, 네로 대체한다)가 쓰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네가 IT 쪽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 물론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는 아닐 수 있어. 전통적인 언론관과도 맞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게 본다면 우리 회사와 너가 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너의 글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 사람들이 곧 우리 회사의 독자가 되고 서로 윈윈할 수 있지."
이런 뉘앙스였다. 매체력보다는 기자 개인의 브랜딩에 힘써야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 그리고 너는 그런 가치관에 관심이 많아보인다는 것. 속마음을 들킨 듯한 느낌에 깜짝 놀랬다. 나를 수식해주는 매체력보다는 개인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내 마음을 엿본 듯했다.
1인 기업 이야기도, 스타트업 이야기도, 네이버 카카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국장은 네이버, 카카오에 대해 떠드는 것도 나름의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시는 듯했다. 잘할 수 있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을 키워주고 싶고 키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대성한 기자가 되길 기대한다고 국장께서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단서가 붙기는 했다. 겸손해야 하는 것, 그리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 아무리 스스로가 잘나고 잘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겸손의 미덕이 없으면 화를 입게 된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겸손함을 갖추지 못해 배척을 당한 남이 장군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도, 나다울 수 있는 것도, 나다운 기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우리 회사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중동 후광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아마 그건 아닐 거다. 좋은 취재 환경을 보장받을 수는 있겠지만, 성취감은 지금보다 덜 할 것이다.
아직 답은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잘하는 후배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부단히 노력도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듣고 써야 한다. 정말 이 기사 만큼은 잘 썼다는 평가도 받고 싶다. 어디에, 어떤 곳에서 일하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칭찬을 마다치 않는 원석이 되고 싶다. 어떤 역할과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기업과 조직의 후광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국장과의 대화를 통해 한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했다.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소신껏 한 길을 가면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던 답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