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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만다 May 15. 2016

아, 부질없다!

수습기자의 일기 21

일에 편중된 삶은, 일만 바라보는 삶은, 일만 전부인 삶은 부질없다. 그리고 요즘 내 삶은 부질없음의 연속이다.


솔직히 요즘 너무나 힘들다. 취미는 고사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 마저 사치다. 집에 와서도 끊임없이 뉴스를 보고 리포트를 보고 블로그를 찾아본다. 뭔가 새로운 이슈가 없을까, 뭔가 더 새롭게 분석할 만한 거리가 없을까. 뭔가 새롭게 쓸 만한 기삿거리가 없을까.


눈뜨고 잠들 때까지 나는 하이에나처럼 기삿거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면 내 꿈과 내 열정이 무엇이었는지 망각하게 된다. 작고 사소한 이슈를 따라다니느라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관계, 우리 가족들도 다 까맣게 잊어버린다. 


주 중에 잠자고 씻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다 보면 주말에는 넉다운의 연속이다. 어쩌다 보니 이쪽 세계(기자)로 넘어오고 나선 남자친구와 교외 데이트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데이트하면서 하는 이야기도 이쪽 업계 이야기뿐이다. 주중과 주말 모두 일에 시달릴 때면 모든 것을 손놓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정말 정신을 계속 붙들고 있을 여유마저 없는 지금이 너무나 싫다.


누구도 내게 일을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사람 없지만 스스로 불안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여기서 더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세상은 시시 각각으로 변하고 늘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진다. 잠시라도 뉴스를 보지 않으면 도태되는 느낌마저 든다. 패배자, 실패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쓉싸일때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읽고 또 읽는다.


쇼핑도 재미가 없고 책은 보기도 싫고.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배울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을 위해 내 시간을 양보해야만 한다.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자친구도 그 사건을 위해 자신을 양보한다. 서로 '사건’에 양보를 하다 보면 서로를 위해 내어줄 시간은 없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하고, 곪은 데 또 곪다가 계속 터진다.


이러다가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혼자 울고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카카오나 네이버는 아닌데. 내 에버노트에는 네이버 카카오 기사와 두 업체 관련 데이터들로만 넘쳐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대신해야 하는 것들로만 넘쳐난다. 해야 하는 것들만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채울 공간이 없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울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내가 없어지고. 그래서 너무나 슬픈 거다.


컴퓨터 전원을 끄는 것처럼 오후 6시 반 이후에는 그 누구도 기사를 읽지도 보지도 쓰지도 않게 해주길 기도하고는 한다. 왜 24시간 쏟아지는 기사를 상대로 기자 1인이 상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들뿐이고 공생은 없고 생존만을 위한 울부짖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처음부터 카카오와 네이버를 좋아했던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을까? 일만 하다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을 잃어 버렸고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지금 현재 내 상태다. 


어제 오빠한테 전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마음이 너무 공허해. 한기가 차. 근데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공허하다고 느끼는지 모르겠어. 내가 나다울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 내가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였어.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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