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사는 이것.
꽃집을 차렸다. 길가에 오가는 사람들한테 꽃을 판다. 조금 더 사세를 늘려보고자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홈페이지에서도 꽃을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생도 뽑고 정직원도 뽑으면서 사업을 영위한다. 자영업자다. 자신의 사업장이 있고 직원을 채용할 수 있어서다.
직원을 채용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를 부각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1인 기업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전문성을 살리는 직업이기 때문에 스스로 마케팅도 한다. 자신만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부각하는 데 성공한다면 새로운 사업을 수주하기도 쉽다. 어쨌든 이들도 사업자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느 기업에 고용돼 노무를 제공한다면, 이들은 근로자다.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는 "한 사용자에게 고용돼 지속해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돼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근로자에 해당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온디맨드 서비스가 부상하면서 사업자도, 근로자도 아닌 '노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은 근로계약이 아니라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챙긴다. 조직이라는 개념이 없고 일하는 만큼 벌어들인다. 어떤 면에서는 사업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플랫폼에 종속된 형태다. 마치 한 사업장에 고용돼 노무를 제공하는 형태다. 그런데 근로자는 아니다. 또 사업자도 아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이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대리운전, 가사도우미, 퀵배달기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지난 10년도 넘게 이들은 존재해 왔다. 다만 최근 IT기업들이 서비스와 노동을 사고파는 앱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배달대행, 카풀, 대리운전, 가사도우미 등 신규 서비스와 앱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국내법상 여기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최저시급, 4대보험, 사용자 임의 해고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어찌 됐든 간에 플랫폼 사업자에게 노무를 제공하니 근로자로서 법적 지위를 확보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에서도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모델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은 공식석상에서 "공유경제가 아니라 공유노예제"라며 회의론을 펼치기도 했다.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용어가 부각될 정도다.
여러 플랫폼에 노무를 제공하다 보니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단적인 예로, 퀵배달기사가 있다. 퀵배달기사들은 콜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여러 콜업체에 등록한다. A, B, C, D, E. 최대 4개 업체에 등록하고 콜을 받는 아저씨를 보기도 했다.
플랫폼 사업자로서는 억울한 감도 있을 것이다. 네이버쇼핑이 '중개’만 할 뿐 상품 매매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이들도 모든 것을 책임지길 꺼린다.
다만 중개 플랫폼에서 취급했던 것들이 서비스, 또는 상품에서, 노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어찌됐든 플랫폼에 종속된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사업자로 취급한다고 하더라도, 고객은 그냥 기업과 서비스로 인식한다. '카카오택시 블랙’이 사실은 서울택시 16곳에 고용된 고급택시 기사들을 연결해주는 거지만, 고객은 그저 카카오 서비스의 한 연장선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도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정규직원으로 채용하는 회사도 있다. 차량 딜리버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퍼라는 곳이 내가 알고 있는 곳 중에선 유일하다. 근로계약서 양식을 만들기 위해 직접 노동법, 근로기준법 등을 다 뜯어봤다고 한다.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되는 건데 안 하는 거다. 플랫폼 사업장은 빨리 확장해서 시장 점유율은 높이길 원한다. 그러나 까다롭게 노동자를 고용해가기엔 사업 확장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마치 남는 시간, 남는 방, 남는 물건을 공유하게끔 하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좀 버세요' 라고 하면서, 자사 플랫폼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근로보장성은 주지 못하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사업리스크를 이들에게 부담을 안기는 것도 문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단가를 낮추고, 혹은 수수료를 높여서 이들에게 돌아가는 수당을 낮추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이중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플랫폼 사업자가 자신의 사업 리스크를 노동제공자에게 전가시켜, 다량의 프레카리아트(precarious+proletariat: 불안정한 노동자, 즉 비정규직 노동자)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개인사업자로서 지위를 확립 받으려면 독자적인 서비스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 즉, 중개 플랫폼이 없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업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버티컬 서비스를 원하고, 이런 수요에 따라 '서비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도 커지니 수요에 따른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고용 형태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만 남은 셈이다.
결론적으로는 과연 여기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보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들을 위한 다양한 법 개정이 시도됐으나 늘 무산됐다. '근로자’에 대한 정의를 바꾸지 않으면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꼴이다. 어떻게 보면 근로자로서 누리는 모든 혜택을 당장 주는 것보다도, 과연 이들이 제공하는 노무형태가 사업자성이지, 근로자성인지 서비스별로 면밀히 따려봐야 할 시점이다.
이에 대해 손익찬 변호사는 근로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다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차별적인 보험료 책정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총자본(또는 해당 산업체 업주)들이 책임을 지는 형태다. 예를 들어, 한달에 다섯개 업체로부터 콜을 받는 퀵배달기사가 있다면, 이 모든 업체가 퀵기사의 4대보험료를 비례 납부해주는 것이다. 업체별 전산처리된 기사의 업무내역(운전거리, 시간 등)을 근거로 하는 것이 골자다.
덧붙여 손 변호사는 특수형태근로자에 대한 보호안 뿐만 아니라 현대 흐름에 맞춰 노동 시장은 물론 사회보장분야에 대한 대수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의 체제는 사실상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들만 보호해주고 있다. 사실 정규직조차도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등 지금의 노동법 및 사회복지 체제는 종말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손익찬 변호사 페이스북 댓글 중
제가 나름대로 내린 답은.
일단 진정한 의미의 특고가 존재하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겁니다. 본인이 생산수단을 보유하고, 여러 사업주로부터 오더를 받아서 일을 처리하고, 특고와 사업주간의 리스크 그리고 서비스제공과정에서 고객과 사이에서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한 책임소재가 비교적 명확한 경우를 의미합니다. 사실 대개 이런경우는 특고의 협상력이 강하기때문에 굳이 법이 우선순위를 둬서 배려할 필요성이 낮습니다.
그러나 특고의 옷을 입은 노동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노동부나 법원이 "근로자"로 보고 보호를 해줍니다.
기자님 지적하신대로 특고를 따로 보호하는건 산재법 뿐입니다. 그나마도 특정 직종이 특고가 많다는 경험론에 근거해서, 그 직종 사람들은 "근로자"가 아니어도 산재보험가입을 허용하는거죠..^^
근데 잘 아시겠지만,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확실히 노동자라고 볼 수 없으나, 사업주라고 보기도 애매한. 여러 징표가 섞여있는 경우.. 이 경우는 분명히 특별한 보호가 필요합니다만...
그 보호의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할지는 개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는, 특고라는 옷을 입은 근로자는 확실히 근로자로 보호해줘야한다.
나머지는 어떤 개별근로법적 보호가 필요한가? 산재? (그렇다면 보험료는 누구에게 받아야하나) 나머지 3대보험료는? 등등..
지난 19대 특수형태근로자를 위한 법안을 발의했던 일부 의원들이 20대 국회에도 연임됐다. 서비스와 노동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 플랫폼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만큼 아마 관련 법안들이 재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계속 추이를 지켜볼 계획이다.
ps. 그리고 법은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