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기6
에버노트는 취재 및 정보 트레킹을 위한 '기자수첩’이다. 워크플레이스의 형태는 직업군에 따라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각종 자료를 모아두는 '아이디어노트’가 될 수가 있겠고 요리사에게는 '조리노트', 선생님에게은 '학급일지' 등이 될 수 있다. 기자라는 '업’을 가진 내게 에버노트는 떼레야 뗄 수 없는 기자노트가 됐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에버노트는 라이프설계를 위한 '다이어리’였다. 영어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매년 새로 만든 버킷리스트를 한두 개씩 지워가고 싶었다.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삶을 알차게 살 수 있는 방법론을 구상하는 장소이자 보관함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기록하고 또 기록하는 일기 같은 곳. 선물, 메일, 메시지 등 라이프로그를 기록하는 나만의 역사서.
그러다 다시 수습기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에버노트의 성격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9개월간 기사 스크랩, 취재 정보 관리, 내가 쓴 기사 정리 등을 주로 하다 보니 '에버노트=기자수첩’이 되었던 것.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노트가 기자 수첩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버킷리스트나 월간 달력을 관리하기는 개뿔. 매일매일 기사를 쓰고 업계 이슈를 찾느라 삶을 질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9개월 전의 나는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한 계획에 집중했다. 지금은 어떻게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있다. 삶의 방향성이 달라졌으니 지금 상황과 관련 없는 노트는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 6108개의 노트를 5555개로 줄이기로 했다. 약 9%의 노트를 자체 삭제하는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 이유는 아래 2번째와 일맥상통한다.
1. 노트가 많을수록 좋다 vs. 노트가 적을수록 좋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양질의 노트라면 많이 저장돼 있을수록 좋을 수도 있고 혹은, 적을수록 좋을 수도 있어서다. 개개인의 에버노트 운영방식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숫자는 에버노트를 잘 사용하고 있다는 척도로 삼기에는 어렵다.
2. 쓸데없는 노트가 많을수록 좋다 vs. 쓸데없는 노트가 적을수록 좋다.
단 몇 초 만에 상대방의 첫인상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노트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제목이나 첫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단순히 무엇인가를 적거나 기록하느라 급급했던 것’인지 아닌지를 순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더러 그렇다. 개인적으로 내게 필요 없는 노트는 빨리빨리 지우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필요한 노트를 빨리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장 버킷리스트를 생각하면서 삶을 설계할 여력도 없고.. 차라리 모든 에너지를 기업 및 기사 아이템 발굴과 기사 데이터 백업 및 관리에 쓰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지우고 또 지웠다. 그리고 드디어 노트 5555개가 됐다. 아래 번호순으로 나열된 노트군(群)들와 주로 빠빠이했다.
나중에 읽는다고 표시해놓고, 참 안 읽더라. read-it-later? 어차피 다시 안 봄ㅋ에서도 썼다시피, 욕심이 낳은 참사다.
"언젠가 기사 쓸 때 참고할 거라며 모으던 자료들은 검색하지 않으면 언제 무엇을 왜 저장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저장하는 그 시점에 제목만 훑어보고 저장한 콘텐츠는 어차피 머릿속에서 잊힌다. 사람의 뇌 작용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린 참사다."
그래서 아예 나중에읽기 태그 자체를 삭제하고, 해당 콘텐츠도 2개 빼고는 싹 다 지웠다. 수집한 자료를 보니 당시 '외신기사 작성하기', '저널리즘', '직장인', '스마트워크', '연애' 등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14년, 2015년에 내가 그런 사람임을 스스로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ㅠ.ㅠ 나르시스즘이 아니고서야!
다행인 건 '.나중에읽기' 태그를 붙여 놓았기에 관련 노트를 빠르게 검색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역으로, 제목만 훑고 나중에 읽을 거라고 저장하는 노트에 모두 '.나중에일기' 태그를 붙인 뒤 분기, 절기 또는 분기 등 정기적으로 관련 없는 노트를 삭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맛집을 다닐 시간이 없다. 맛집 정보만 정리한 노트는 내게는 이제 더미(dummy)일 뿐이다. 휴지통으로 얼른 들어가렴. 개중에는 이미 폐업한 곳도 꽤 될 것이다. 다~~~~~ 지웠다. 어차피 맨날 가는 데만 가고, 눈 앞에 보이는 곳에 간다. 보고 싶은 영화는 왓챠플레이에서 언제 어디서나 감상하면 그만이다.

'가상현실' 관련 기사 100개를 저장했다고 가정하자. 관련 기사를 필요할 때마다 검색해서 쓸 것인가, 필요한 것들만 한 자리에 추려서 볼 것인가? 사실 100개의 기사를 개별로 저장했다면, 더구나 기사 제목만 보고 에버노트에 저장했다면, 언제-무엇을-왜 저장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자료는 개별적으로 저장하는 것보다 연관된 것들끼리 묶었을 때 연상 작용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헤어샵' 노트를 보자. 카카오헤어샵을 출시한다는 단독기사부터 카카오헤어샵의 오프라인 매장 대상으로 설명회 진행했다는 기사, 카카오헤어샵의 수수료 등 관련 취재 기사는 모두 한 노트에 모았다. 나중에 '카카오헤어샵' 기사를 쓸 때 내용을 참고해야 한다면 이 노트만 보면 된다.
그래서 같은 야마의 기사를 되도록 합쳤다. 다양하다. 내가 기사를 쓰고 싶은 관점에서 봤을 때 비슷한 거면 다 묶었다.
카카오, 온라인 '대동여지도' 만들기 시동 건다 이 기사를 쓸 때 카카오 보도자료 중 다음 지도와 관련된 것들만 모은 적이 있다. 2004년부터 2015년도까지. 수백 개의 보도자료를 한데 모으면 너무 방대하다. 그래서 연도별로 쪼개서 노트를 저장했다. 8개면 되는 노트를, 200개 넘게 만들 뻔했다.
ps. 같은 야마의 (보도)자료의 경우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날짜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개인마다 정리하는 방법은 다르니 참고만!
가장 급할 땐, 아이폰을 켜고 '전화' 앱을 눌러 연락처를 검색한다. 에버노트를 열어볼 일이 거의 없었고, 상대방에 대한 신상 업데이트나 정보는 바로 연락처 메모에 남기는 것이 더 편했다. 그래서 에버노트에 저장돼 있었던 수십 종의 명함 노트를 모조리 삭제했다. 어차피 명함 데이터는 모두 리멤버에 저장돼 있으니까 ;) 모든 자료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 더 좋다. 그렇지만 데이터에 따라서는 버티컬 서비스를 사용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PS.만약 리멤버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할 경우, 그때 에버노트로 데이터를 통합해도 늦지 않다.
지난해, 수습기자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경제, 시사 공부를 했다. 노트가 곧 키워드 카드였다. 지금도 이와 관련된 노트는 830여 개가 넘는다. 목록 노트만 잘 만들어도 노트 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PS.이런 것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흉보겠지만... 자주 안들여다보면 까먹어서 ㅠ.ㅠ
드디어 5555! 그리고 현재 5552개로 3개나 더 줄었다. 그리고 열심히 기록했던 목록 노트 하나가 영구 삭제됐다. 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뭔가 정리했다는 이유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물론, inbox 앱에는 '정리 좀 해주세요!!'라고 관심을 표하는 노트들이 여전히 쌓여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매년 10% 정도의 노트는 정리해도 별 탈 없이 잘 만 살 것 같다.
1. 매년 10% 정도의 노트는 정리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
2. 자신의 라이프 패턴에 맞는 데이터 위주로 에버노트에 저장한다. 잡다한 것을 넣어봤자, 어차피 안봐요ㅋㅋ 에버노트를 단순히 '노트’라는 앱으로 보지 말고, 삶의 특정 부분의 생산성을 높일 워크플레이스로 보면 좀 더 다루기 쉽다. 일반 직장인이라고 하더라도 영업, 마케팅, 기획, 개발 등 자신이 역량을 키우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을 것이다. 창업노트로 활용해도 굿.
3. 데일리노트 용으로는 사실 데이원(Dayone)과 같은 훌륭한 솔루션이 있다. 단순히 메모만 한다면 구글 킵(Keep)이나 애플 기본 메모 앱도 훌륭한 대안이다.
4. 에버노트가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에버노트를 왜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에버노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5. 에버노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멋지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공을 들이고 노트를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도구는 잘못한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