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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만다 Aug 29. 2016

휴가는 축복이었다

장정 9일간 베짱이처렁 띵가띵가 놀았습니다


광복절 전후로 크게 몸살감기를 앓은 이후로 빨리 휴식기를 취하고 싶어졌다. 토일월. 장장 3일 내내 아파서 잠만 잤던 터라 이번 휴가 때는 부디 건강하기만 해도 잘 보냈다고 위안 삼을 것만 같았다. 


월화수목금. 5일짜리 휴가서를 냈다. 앞뒤 주말을 이으면 장정 연일 9일을 놀고먹었던 셈이다. 주말자 기사를 써야 하는 큰 부담이 없는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는 주말 내내 기사 쓰느라 바빴다. 어쩔 수 없이 '왓챠플레이’로 영화를 보며 혼자 놀았다. 일요일에도 놀았다. 월요일에 기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지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방 청소를 하다니! 


평소 토요일에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데 사용한다. 주 중에는 서로 만날 시간이 거의 없다. 어떤 때는 전화나 카톡 문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그날따라 미팅이 많거나, 처리해야 할 기사가 많거나… 실적 주간이거나. 어쨌든 셋 중 하나다. 


일요일에는 월요일 쓸 기사를 찾아보는 데 일부 할애한다. 그러다가 오후 8시가 되면서부터 스스로 망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뭔가를 해도 불안하고 안 해도 불안하다. 잠을 자고 싶어도 초저녁부터 잠은 오지 않고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11시가 되면 '난 망했다’며 자책하다가 새벽 1시 넘어 잠자리에 겨우 든다. 아아. 망했습니다. 난 월요일부터 망했습니다. 저기압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아들이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 월요일 오후 7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멀쩡하게 한 주를 시작하는 날은 화요일부터다. 


그랬던 내가, 그랬던 일요일이 너무 평화스러웠다. 감격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드라마를 봐도 하하 호호 웃음만 났다. 캬캬캬ㅑ 나 내 일 기사 안써. 


존나 좋아!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통영과 거제도 여행을 떠났다. 즉흥적으로 일정을 짰다. 숙소는 데일리호텔과 티몬에서 당일 예약했다. 일부러 비수기를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숙소도 넉넉했고 휴가지로 달리는 길마저 여유가 넘쳤다. 조셉 고든 레빗이 각본, 연출, 주연을 모조리 맡은 '돈 존’을 우연히 발견해 본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월요일 밤, 심심해서 RSS 앱인 '피들리’를 켜서 기사 제목만 체크해보기는 했다. 그런데 웬걸. 기사 하루 체크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나지 않았다. 크리티컬한 기사가 나오지 않기도 했고. 엇비슷한 리드의 엇비슷한 기사만 보이니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보도자료만 긁어 내보낸 기사도 많았고 그냥 숫자만 새로 업데이트하거나 쓰기 위해 쓴 기사도 많아 보였다. 휴가를 조금 여유롭게 즐겨도 되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그 뒤로는 피들리를 열어보지 않았다. 


거제 바람의 언덕


월요일은 통영에서, 화요일은 거제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더 놀다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래도 역시 집에서 뒹굴뒹굴 노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목요일엔 엄마 심부름도 하고 왓챠플레이로 또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에서 남해까지 오가는 차 안에서도 왓챠플레이로 영화를 봤다. 풍광을 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사실 고속도로에선 볼 게 없다. 연휴 때는 왓챠플레이 재미를 톡톡히 봤다. 구독하길 잘했어 ;)


다만, 세금정산 때문에 아까운 휴가 4시간을 까먹은 게 오점이었다. 전 직장에 원천징수영수증을 청구하지 않아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확정신고를 했해 했는데 때를 놓쳤었다. 신고 기간 후 신청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직접 기입해야 하는 란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내년 연말 정산은 정말 똑 부러지게 잘할 것만 같았다.


금요일에는 남자친구를 만나 평일 점심 토다이를 갔다. 주말보단 평일, 그것도 저녁보단 점심 가격이 제일 저렴하다. 통영과 거제에서 먹은 회보단 싱싱하다는 느낌은 덜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삼청공원을 산책하고 서울시 따릉이를 이용해 자전거도 원 없이 탔다. 


토요일은 대망의 사진정리. 아이포토 앱으로 생성한 사진라이브러리 파일을 사진(Photos) 앱 버전으로 전환하는, 일종의 치트키를 찾았던 것.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자그만치 14년의 역사가 담긴 사진도 구경하고 바빠서 정리하지 못했던 아이폰 속 사진과 데이트 사진을 모조리 정리했다. 두고두고 언제나 꺼내보고 싶은 사진은 맥 사진 라이브러리와 아이폰 동기화 조치를 취했다. 해묵은 먼지를 치운 느낌이다!


저녁에는 무도 '무한상사' 예고편을 보고 나서 영드(영국드라마)를 무한대로 시청했다. 왓챠플레이를 모다가 문뜩 나도 미드나 영드에 푹 빠져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휴가 기간 보기로 결정한 영드는 바로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시즌 1, 시즌 2, 시즌 3 1편까지 연이어 쭉쭉 봤다. 일요일 새벽 3시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시즌 3은 모두 3편으로 구성돼 있고 이 중 1편을 보다 말았는데 다시 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모두가 사랑하고 예뻐한 여주의 남자친구 '핀’을 아주 못된 녀석으로 만들었다는 줄거리를 보고 나면서부터다. 내 아름다운 동화는 여기서 끝나길 바라. ㅠ.ㅠ 


그리고 어김없이 일요일에는 월요일에 써야 할 기사 아이템 찾기. 어이없게도 일요일에 유영무 법률사무소 조인 변호사님에게 페북 메시지를 보내서 취재까지 했다. ㅠ.ㅠ 원래 주말 취재 안하는 데 정말 죄송해요!! 일을 다 마치고 저녁을 먹고나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토요일에 무도를 보기 전에 달콤한 잠을 잤는데도 졸렸다. 오빠랑 데이트하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잠을 잤는데 졸렸다. 오후 7시부터.  ㅠ.ㅠ 


다시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열이 나고 오한이 나는 것 같았다. 휴가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픈 목이 낫고 열이 내리더니 웬걸. 일요일 저녁부터 다시 몸이 골골거렸다. 


회사가 힘들 건 아닌데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내게, 아직은 버겁나 보다. 내일을 미리 살아야 하기에, 내일을 먼저 살아야 하기에, 내일을 추측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그리고 휴가에 복귀한 나는 아직 이 시간에도 컴퓨터 앞에서 무슨 기사를 써야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다. 오늘따라 참, 기사가 없네잉.


휴가기간 동안 뭔가 건설적인 일들을 하려고 머릿속에 계획만 세워두길 잘했다. 여행도 가고 남자친구랑 원없이 데이트도 하고 영드도 보고 무한도전도 보고 잠도 자고 자전거도 탔다. 완전 신난다. 모든 사진을 정리한 것도 잘한 일 중 하나다. 일출도 보고 케이블카도 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전주한옥마을, 대천 해수욕장도 들렀다.


영화도 엄청 많이 봤다. 러브픽션, 댄싱퀸, 쥬만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빨간머리 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퀼, 늑대아이, 파라다이스 키스. 총 9편. 예전에 봤던 영화를 재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넘 좋았어!


휴가는 언제나 좋다. 그리고 방학이 있는 학생이 존나 부럽다! 그리고 내 행복한 휴가 시즌2는 왠지 추석 때 다시 시작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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