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취재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호기로웠다. 오늘도 오전 11시 내로 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자신감은 여지없이 구겨졌다. 열두 시, 오후 한 시. 두 시, 세시. 초조했다. 오후 일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난 역시 능력이 없는 걸까" 자책하다가도 기사가 일단 출고되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기사가 출고되면 힘이 쫙 빠진다.
우리 회사 산업부의 일과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 재량껏 7시에서 7시 30분 내외로 기자실 또는 기자실 비스무름한 회의실에 안착한다. 마감은 오전 11시. 대략 4시간의 시간동안 IT업계 기사도 들여다보고 보도자료도 확인한다. 점심은 12시부터 1시(또는 1시 30분까지).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료 취재나 티타임을 겸한 현장 취재를 겸하고 난 뒤, 4시부터 내일을 위한 일보를 준비한다. 5시 이후부터는 오늘 하루 동안 나온 IT업계 기사를 확인한다. 일분일초가 아까울 정도로, 촉박한 일정이다.
요즘은 회사 지침상 되도록 보도자료는 쳐다보지 않고 있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보도자료를 요령껏 다듬어서 내보내는 일에 대한 가중치는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한다. 거대기업들의 인수합병이나 투자 소식이 아니한, 되도록 보도자료는 생략한다. 어차피 나 아니어도 다른 매체에 나온다.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 =ㅅ=
차라리 잘됐다. 보도자료를 안친다고 해서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보도자료 사이 행간을 읽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대개는 이벤트 또는 홍보 자료다. 거기에서 무슨 행간을 읽어야 할 지 솔직히 난감하다. 업체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는 것을 빌미 삼아 안부 전화 한 통 건네볼 수는 있겠지만 딱히, 더 깊은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어차피 물어보지 않는 한, 고급 정보를 먼저 알려주는 홍보인들은 없다. 안물어봤으니 안가르쳐주는 게 당연한 거다. 그래서 더더욱 질문거리를 찾아 돌아다닌다.
사실 되도록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마침 그 예다. 오늘 내 계획은, 오전 11시에 정상적으로 기사 마감 후 12시 점심 약속, 오후 3시 티미팅, 오후 4시 반 티미팅이었다. 오전 4시간 안에 마무리할 분량의 기사가 아니라 어제 오후 10시부터 미리 스터디도 해놨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사를 쓰기 위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것이 한둘이 아녔다. 아무리 업체가 "이래이래이랬어요~"라고 말해도 팩트 체크는 기자의 몫. 관련 법령도 뒤져보고 업계에서는 어떤 기사들이 나왔는지 보고, 내가 쓰고자 하는 야마와 비슷한 기사를 찾아 형식을 빌려오는 등 준비작업이 필요했다.
10시 반. 절반도 못 썼다. 오후 12시, 점심 먹기 전이면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선 도표 작업부터 진행했다. 도표 디자인 작업에도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 선배가 오후에 주시겠다고 하시니, 일단 기사 본문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12시. 이미 점심 약속은 취소한 상태로 기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관계 부처들의 멘트 확인이 필요했다. 한시부터 전화를 돌리는데 휴가, 출장 중이라 전화 연결이 되질 않았다. 전화 받는 사람들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며 코멘트를 주지 않았다. 난 그 멘트가 필요한데, 마감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마감을 안 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우선 살고 봐야 했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휴가를 가든 말든, 나는 어쨌든 기사를 써야만 했다. 평소 같으면 상대방의 상황을 배려했겠지만, 기사 출고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내가 기사를 완성하기로 약속한 시각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선 자책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기사 완성이 1차 목표다.
오후 3시 미팅을 위해 이동하는 중에 다행히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지하철 간이 의자에 앉아 멘트를 받아졌었다. 끝. "부장, 기사 완료했습니다." 휴. 이제 신나게 미팅하려고 택시 타고 이동하는 순간, 전화가 왔다. 수정 지시였다.
수정했다. 다행히 추가 수정지시는 없었고, 세밀한 취재에 대해 부장이 칭찬하셨던 거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 안 난다. 미팅 장소에 도착하니 3시 40분. 40분이나 늦어서 얼마나 죄송한지 모른다. 오후 미팅은 갑자기 내린 장맛비로 취소됐다. 오늘ㅡ일과다.
정말 운 좋으면 오전 11시에 마감하고 오후에 편하게 취재 다닌다. 업체들을 돌아다닐수록 정말 좋은 기사가 나온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대충 전화 안부로 때울 경우가 많은데, 대개는 질문 거리가 명확할 때 기사 아이템이 잡힌다. 그래서 자료도 많이 봐야 하고 기사도 많이 봐야 한다. 질문 거리가 준비되지 않은 안부 인사는 대개 수다로 그치는 사례를 많이 접했다.
요즘에는 다행히 저녁 술자리가 없어서 저녁을 여가로 활용하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 대부분은 다음날 기사를 쓰기 위한 준비로 보낸다. 솔직히 난 즐겁다.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한 취재가 어렵기는 해도 그만큼 보람을 느낀다. 공부할 거리도 많고 확인해야할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래도 퍽 재미있다.
특별한 거 아니면 다른 매체에 나온 기사를 따라쓰라는 지시가 없는 방침도 퍽이나 마음에 든다. 주말에도 발제를 시키고 보도자료를 포함해 하루 10개의 기사를 쓰라는 곳도 사실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는 주말이나 저녁에는 기자들이 쉬면서 에너지 보충할 수 있는 여력이 돼서 그나마 할 만하다. 만약 강제적으로 내 휴식 시간까지 빼앗는 회사라면 이미 기자를 그만뒀을 것이다.
기사 술술 써질 때도 있는 날이 있는가 하면, 취재 과정부터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기자란 직업은 매력적이다. 매일 기사를 쓰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자, 기획력을 발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라면 즐기기로 했다. 오늘, 사실 너무 힘들었다. 위로가 필요해서 글을 썼다. 오늘은 좀 푹 쉬어야지. 어느 때보다도 체력이 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