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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만다 Jul 26. 2016

쉼표(,)가 필요해요

몸과 마음이 지쳤다. 그래서 탈이 났나보다.


어제 오후, 점심 먹고 차분히 앉아서 기사를 쓰는 도중에 복통을 느꼈다. 정신을 붙잡고 월간지 마감을 해보려고 해도 전혀 집중이 안 됐다. 


점심에 밥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변비 때문에 배가 아픈가?

옷이 너무 쪼여서 배가 아픈 건가?


2시간이 다 되가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선배한테 SOS 요청을 했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기사를 못 쓰겠다고 했다. 즉시 부장께도 보고드린 후 종각역 근처 내과를 방문했다. 


"선생님, 윗배가 너무 아파요. 제가 점심에 과식했나 봐요"

"윗배가 아파요, 아랫배가 아파요?"

"음, 윗배가 아픈 거 같아요. 위장이 아픈 거 같아요."

"그럼 일단 누워봐요. 어디가 아픈지 좀 짚어봅시다."


침대에 누우니 의사 선생님이 배 이곳저곳을 눌렀다. 배 위쪽에서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꾀병이었나 싶었던 찰나, 선생님이 오른쪽 배 아래로 손을 짚으니 통증이 느껴졌다.


"네 선생님! 거기가 좀 아픈 거 같아요. 위가 아니라 아래에요."

"여기 맞아요? 여기는 대장 쪽인데… "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눈치로 몇가지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설사 증세는 잦은지, 구토는 있는지, 혈변은 있는지, 대장암 관련 가족력은 없는지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물었다. "구토는 없었는데 가끔은 선홍색 피가 비치기도 해요. 저는 근데 그게 치질인 줄 알고 아무런 조치도 안 했는데.. 가족력은 없어요 선생님."


일단 장염증세로 진단받고 처방전을 받았다. 통증이 있었다던 부분은 대장이 시작되는 부위였다. 앞으로도 비슷한 증세가 반복된다면 대장에 염증이 났거나, 혹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날 진단받고 집에 와서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했다. 복통이 자정 넘어서야 중단되기도 했거니와 이런저런 고민에 잠을 쉽게 청하지 못했다. 내가 앞으로 몸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암에 걸릴 수 있다니. 그 사실이 계속 머릿속을 멤돌았고 약해진 정신력과 내 미래를 비관한 나머지 30분을 홀로 울었다.


솔직히 지금 몸 젖혀두고 상태가 좋지는 않다. 잘해야겠다는 욕심에 만사 다 제쳐두고 온 정신을 일에만 쏟아부었다. 라이프 패턴은 일을 중심으로 재편됐고, 집안일, 데이트는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이따금 토요일에는 데이트하러 나갈 기운조차 없어 종일 잠만 청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도 자기도 기자생활을 해봤다며 남자친구가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와주는 때도 더러 있었다.


빨리 성장해서 나라는 사람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욕심, 기사를 잘 쓰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 천천히 주변도 돌아보고 책도 읽고 여유도 느낄 시간이 없이 계속 앞만 보고 내달렸다. 뭔가 제대로 완벽하게 해둔 건 없고 일만 벌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도대체 난 지난 9개월간 무엇을 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다.


엄마 생각도 났고 아직 못 이룬 내꿈도 생각났다. 사실 기자가 내가 진짜 꿈꾸던 직업인지 아직 확신도 서지 않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취미 생활도 더 하고 싶고 해외 여행도 가고 싶은데 ㅠ.ㅠ 혹시 몰라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는 받아봐야겠지만, 꿈을 꾸고 살아갈 기회마저 무기력하게 뺏긴다는 생각에 슬퍼서 울었다. 오빠가 전화기 너머로 "너 요새 너무 자주 우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울기라도 하니까 속도 풀리고 내일은 웃는 건데 말이다. 


그림 1. 2015년 7월 17일 서울광장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다가 찍은 노을 사진

그림 2. 심지어 2015년 5월에는 새벽 7시 영어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대박 완전 대박.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돌이켜보니 사진이나 베이킹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했고 책도 틈틈이 읽었다. 전시회나 뮤지컬도 잘만 보러 다녔고 금요일 밤에는 6시 칼퇴 후 혼자 영화관에 들러 영화도 봤다. 카페 가서 노트북 펴들고 앞으로 무슨 꿈을 꿈꾸며 살 것인지 위시리스트를 적는 게 소소한 일상이었고 남산도서관에 올라가 책 한 권 빌리는 것 역시 일주일 중 어느 하루의 모습이기도 했다. 


온라인 에디터로만 근무했던 그 시절에는, 그래도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있었는데… 마음의 여유. 


그런데 신기하다. 어제오늘 월간지 쓴다고, 아프다는 이유로 잠깐 일에 틈을 내주니 생기가 도는 듯하다. 작년에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물론 에버노트나 다이어리에 적은 글귀와 사진을 보고 과거를 떠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니 살맛이 나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괴로워했던 건 바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퍽퍽한 삶이 아니었을까. 백날 카카오나 네이버의 신규 서비스나 실적은 들여다봐도… 지난해보다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마음의 문을 닫았는지, 얼마나 마음이 여려졌는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얼마나 남자친구를 사랑했는지 비교할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에 치여 과거는커녕 당장 오늘을 살기에도 바빴다. 주말에는 현실(내 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다. 근 한 달 넘게 그랬던 것 같다. 계속되는 무기력감, 이슈에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 


에이. 모르겠다. 한동안 뉴스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리포트도 안보니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지금 너무 행복한데 ㅠ.ㅠ 일단 복통이 다 나을 때까지는 에라 모르겠다 자세를 유지해야겠다. 에라 모르겠다.!!   꿈도 건강이 우선돼야 꿀 수 있는 거다. 나머지 5개월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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