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놈은 정말 이중인격자 같다
나는 '기자’라고 불리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일은 끝이 없고 취재 범위 대상은 무제한이다. 전통적인 기자관과 현대에 이르러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업계 표준도 없고 기준도 없다. 조직에 순응하면서도 '모두가 예스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패기를 이 사회에서는 요구한다. 양립되는 두 가지의 가치가 혼재되면서 나아갈 방향을 잃는다.
구어체는 쓰지 않아야 하지만 모두가 읽기 쉬운 기사를 써야 한다.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쉽도록 써야 하지만, 세상의 인재들은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다. 제너럴(General)을 만족하는 기사는 알맹이가 없고 피상적이다. 스페셜(Special)하게 쓰면 미시적이라고 지적당한다.
서비스나 산업을 한 문단, 혹은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이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한 산업의 무게추를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다뤄도 되는지 내적 갈등을 겪는다. 또 모든 걸 나열하면 어렵다고 한다. 함축해서 표현하면 누가 어렵게 쓴 걸 읽느냐며 지적당한다.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서 술은 먹지만 업무의 연장선상은 아니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취재하면서도 홍보 자료도 열심히 처리해야 한다. 어떤 곳은 아예 '보도자료 포함 하루 10개 기사 처리'를 내걸기도 한다. 현장 전선에 나가보고 싶지만 '기자실'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는 편이 많다.
산업 트렌드를 짚어보고 싶은데 네이버, 카카오가 하는 게 아니면 높은 기사 벨류를 인정받지 못한다. 기업과 기업인이 중심인 사회 속에서 서비스와 디자인, 개발의 가치는 평가절하당한다. 서비스와 디자인, 개발 영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미시적’이다.
거시란 기업의 인수합병, 투자, 인사이동을 다루는 것인가? 공시를 보며,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이 거시적인가? 재무제표를 잘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산업부 출입기자의 모든 능력인가? 모든 기자가 똑같은 시각에서 기사를 써야 하는가? 내가 기업이슈에 빠삭하다고 해서 그 기업을 잘 안다고 뻐길 수 있을까?
기자의 독자는 누구인가? 홍보인인가? 업계 관계자인가? 일반 독자인가? 독자 타깃에 따라 OSMU를 해야 하지 않나? 왜 마치, 기사의 독자는 업계 관계자라도 단정 짓고 글을 써야 하는가?
나는 왜 어떤 기업을 출입하는 기자가 되어야 하는가? 기업 이슈가 아니라 기술의 발전사를 다루는 건 기사 벨류가 낮은가? 글로벌은 다양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데 왜 나는 카카오와 네이버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눈여겨보지 않아야 하는가? 전세계 기술 변화 트렌드가 국내에 유입된다고 가정했을 때 해외 기업들의 투자 이슈도 함께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나는 카카오와 네이버에 집착할수록 시야를 좁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성장하는 건 맞을까? 카카오와 네이버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카카오와 네이버를 앞세워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살기 위해 카카오와 네이버를 활용하는 건 아닐까?
아직 1년 차다. 하다 보면 된다. 지금은 '생각'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기사는 생각해서 쓰고 인사이트까지 곁들여야 한다. 생각하면서 일을 하지는 않지만, 기사는 생각하면서 써야 한다.
나는 한 기업의 서비스를 분석하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이 아닌데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홍보 담당자는 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기자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기업 홍보를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것일까, 산업과 기술, 서비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일조하는 데 자긍심을 느낄까? 단순히 마케팅 측면에서 모객 효과가 있는 점만 부각하려고 할까?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는다. 그렇지만 기사는 자율적으로 써야 한다. 취재도 자율적으로 한다. 그렇지만 회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안에서는 계급을 따르고, 밖에서는 평등을 외친다.
내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그 대상은 마치 이중인격자 같다. 심리학을 좀 연구해봐야겠다. 나도 내 심리, 정신상태, 마음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