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354. 한명회(韓明澮)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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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해 다룬바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역사 속 비극적 인물 '단종'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 속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유독 궁금해진 캐릭터가 한 명 있다. 작품 속 빌런으로 등장했던 인물 '한명회'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빌런 한명회(유지태)와 실제 역사 속 한명회는 어떻게 달랐을까?

1.영화 속 외모와 체격은 사실이었다

기존 대부분의 사극에서 한명회는 7개월 만에 태어난 '칠싹둥이' 설화의 영향인지, 체구가 왜소하고 꾀가 많은 모사꾼 캐릭터로 그려져 왔다. 반면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유지태 배우가 100kg까지 체중을 증량하여 마치 몽골이나 바이킹 유전자를 받은 것 같은 압도적인 거구로 등장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영화 속 거구의 한명회가 실제 역사 기록에 더 부합한다. 충남 천안에 세워진 한명회 신도비(비석)의 기록에 따르면, 한명회의 실제 외모는 '얼굴이 준수하고 체격이 크며, 바라보면 우뚝하여 위엄이 있었다'라고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즉, 영화는 기존의 왜소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실제 역사에 기록된 한명회의 웅장한 체격을 제대로 구현해 낸 것.

2.치밀한 지략가(역사) vs 무자비한 행동대장(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명회는 책략가라기 보단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냉혈한이자 무사처럼 묘사되었다. 영화 속 한명회는 본인이 직접 활을 쏘아 사람을 죽이거나 칼질을 하는 등 잔혹한 행동대장 같은 모습에 가깝다.다.아마도 직접 무력을 사용하는 등의 장면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 속 실제 한명회는 수양대군(세조)이 가장 신임했던 '책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살생부를 기획하여 살려둘 자와 죽일 자를 치밀하게 나누고, 계유정난이라는 쿠데타의 판을 짠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세조로부터 한나라 통일을 이끈 천재 전략가 '장량'에 비유될 정도의 지략가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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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한명회는 과거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여 38세의 늦은 나이에 말단 궁궐 문지기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 38세의 나이라고 하면 요즘으로 치면 50세가 넘은 나이. 즉, 남들이 거의 퇴직을 고민할 시기에 늦깍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헌데, 어떻게 그는 조선시대 최고의 관직 '영위정'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1.경덕궁 궁지기 임명과 무사 포섭

한명회는 38세가 되어서야 조상의 공덕으로 벼슬을 얻는 '음서' 제도를 통해 '경덕궁 궁지기'라는 말단 관직을 얻게 된다. 비록 가장 밑바닥 관직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홍달손, 홍윤성 등 무예가 뛰어난 무사들과 사귀게 되는데, 이 것이 훗날 거사에 활용할 핵심 인맥과 세력을 포섭하는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2. 수양대군(세조)과의 운명적 만남

당시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은 은밀히 자신의 계획을 실현해 줄 책사가 필요했다. 이때 한명회의 절친한 벗 '권람'이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를 적극 추천하여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되기에 이른다. 수양대군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말단 궁지기였던 한명회를 자신의 책사로 발탁한다. 소위 한 번의 면접만으로 '말단 직원'에게 중책을 맡긴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한명회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을지 대략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또한 '능력있는 인재'를 알아본 안목과 신분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한 수양대군 역시 역사 속 평가와는 별개로 꽤 능력있는 리더였을지도 모르겠다.

3.계유정난의 성공

한명회가 크게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계기는 역시 계유정난의 성공과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사건이다. 계유정난 당시 한명회는 누구를 살리고 죽일지 소위 '살생부 명단'을 직접 작성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계의 인사와 그들의 성향, 동향 파악에 그 누구보다 능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결국 쿠데타의 1등 공신 한명회는 수양대군(세조)에게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끈 천재 전략가 '장량'이란 칭호를 얻으며 승승장구한다.

4.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저지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인 1456년.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기 위한 음모가 꾸며진다. 이른바 '사육신 사건'이다. 영화의 초반에 고초를 겪으며 처형 당하는 이들이 사육신(성상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이다. 역사 속 한명회는 이 '사육신 사건'을 저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 한명회는 금성대군의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저지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단종 역시 금성대군과 함께 거사에 직접 가담하기로 결심하고 유배지를 탈출하는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이는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다. 금성대군의 복위 운동은 영월이 아닌 순흥 지역에서 기획되었으며, 거사를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된 사건이다.

5.왕실과의 혼인

권력의 중심에 선 한명회는 왕실과 사돈을 맺으며 자신의 지위를 영구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자신의 셋째 딸을 예종의 왕비(장순왕후)로, 넷째 딸을 성종의 왕비(공혜왕후)로 만들어 두 명의 왕의 장인(부원군)이 되었다. 또한, 세조, 예종, 성종 등 세 번의 왕권 교체기마다 정난, 좌익, 익대, 좌리공신이라는 네 차례의 1등 공신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으며, 마침내 조선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까지 오르며 권력의 정점을 차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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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라는 인물을 공부하다보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부동산 1번지라 불리는 '압구정동'의 유래가 이 한명회라는 인물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압구정동이란 지명은 한명회가 노닐기 위해 지었던 '압구정(狎鷗亭)'이 있던 자리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압구정은 현존하는 정자는 아니다. 하지만 정자가 있던 위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73동 부근이었다고 한다. 수백년이 지난 현재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입지란 걸 생각하면 사람 보는 안목만큼이나 부동산 보는 안목도 뛰어난 인물이었지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권세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압구정 때문에 비극적 말년을 맞게 된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오직 왕만 쓸 수 있는 '용봉 천막'을 빌려 달라고 성종에게 요구했다가,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던 성종의 분노를 사 권력을 잃게 된다. 이른바 압구정 사건이다.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17년 뒤인 1504년, 연산군이 일으킨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신의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라는 참혹한 형벌을 받게 된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권력의 화려함과 허망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로 자두 회자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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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사는 남자'라는 영화 때문에 오랜만에 역사공부로 밤을 샜다.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우등생 소리를 들었을텐데 싶어 '웃프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종과 수양대군이라는 자극적인 소재 때문일까? 그 중심에 이는 '한명회'라는 인물은 항상 악인, 빌런 등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인물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는 어쩌면 그 시대 최고의 '전략가'이자 '기획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핵심 자원 확보'

그는 과거 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후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궁궐 문지기라는 말단 관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 초라한 자리를 한탄하는 대신, 도성 순찰을 담당하는 무사 홍달손 등 무예가 뛰어난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사귀며 훗날 거사에 필요한 '실행 인력'을 포섭한다.

기획자는 자신이 현재 처한 직급이나 환경의 한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인력, 권한, 예산을 탓하면서 안되는 이유만 늘어놓는 기획자는 B급이다. 인력, 권한, 예산이 주어지면 그에 걸맞는 퍼포먼스를 뽑아내는 기획자는 A급이다. 하지만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파악하고, 훗날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핵심 인적·물적 네트워크까지 미리 구축해 두는 기획자는 S급이다.

2.치밀한 타겟팅과 '이해관계자 분석'

그가 기획한 '살생부'는 단순히 적을 죽이기 위한 '데스노트'가 아니었다. 누구를 먼저 치고 누구를 나중에 처리할지 우선순위를 정했으며, 포섭할 세력과 제거할 세력, 중립 세력을 나누어 후일까지 도모하고자 계산된 고도의 정치적 도구였다.

PM(Project Manager)으로서 성공적인 기획을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정확히 분석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필수다. 프로젝트 성패의 절반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팀 구성만 잘 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프로젝트'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프로젝트에 꼭 필요한 사람, 배제할 사람, 특정 역할을 맡길 사람을 파악하여 각각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3.의사결정권자에게 확신을 주는 '명분과 피칭(Pitching) 능력'

한명회는 수양대군과의 첫 만남에서 '왕실의 후손으로서 난적을 토벌하는 것이니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여 절대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말로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또한 '더 많은 말을 하지 마라. 내가 마음을 정하였다'라는 수양대군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질문으로 망설이던 결정권자의 결단을 유도한다.

기획안이 아무리 좋아도 최종결정권자(투자자 혹은 리더)를 설득하지 못하면 실행될 수 없다. 훌륭한 기획자는 강력한 '명분'과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하여 결정권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어 최종 의사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4.선(Boundary)을 넘는 오만함과 '리스크 관리 실패'

그는 말년에 권력의 정점에 선 한명회는 압구정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다. 권력에 취해 오만함이 낳은 결과였다. 이 사건은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던 젊은 왕 성종의 분노를 샀고, 결국 권력에서 축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의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인사이트는 공교롭게도 '겸손'이다. 주변에 작은 성공에 취해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망각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심지어 큰 성공을 거둔 경우는 오죽할까. 성공에 취해 선을 넘는 오만함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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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월이지만 유난히 햇살이 따스하다.
2월의 햇살 아래서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의 '설계도'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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