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225.
사무실 책상 정리를 하던 중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펼쳐보니 10년 전 사용했던 아이디어 노트다. 그 속엔 열정만 넘치던 기획 초짜 시절의 고민과 기록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이건 정말 대박인데?' 싶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세상의 빛을 본 유(有)형의 산출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때로는 더 기깔나는 기획으로 다듬겠다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여간 아이디어들을 펼쳐보며 여러가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기획이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지점'을 향해 튼튼한 골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기획자들은 늘 앞만 보며 완벽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완벽'에 대한 강박이 우리 발목을 잡기도 한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 소비자 니즈를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개발 일정을 수립하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머릿속에만 머무는 기획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
아무리 일류 셰프의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레시피라도, '요리'라는 결과물로 고객의 식탁위에 올리지 않는다면 어떤 반응도 이끌어 낼 수 없다.
가끔 후배들이 묻는다.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냐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한다. 좋은 기획안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도 맞지만, 진짜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한 끗은 '기획의 완벽성'이 아니라 '실행력과 타이밍'에 있다고.
기획자에겐 본능의 영역이자 신비로운 재능처럼 여겨지는 '기획의 감(感)'이라는 것 역시 가만히 앉아서 고민만 한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의 과정 속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훈련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내면의 원석이 환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완성될 수 있다. 현장에서 상품기획자로 16년 간 몸 담으며 깨달은 진리다.
서양 속담 중에 The best advice is to say 'Act right now'라는 말이 있다.
'Act Right Now'
프로젝트의 사활을 결정짓는 '타이밍(Timing)'과 '실행력(Execution)'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가?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전략적일 필요는 없다. 직관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 이 말은 지나치게 완벽한 기획과 타이밍을 계산하기보다, 때로는 내면의 직관을 믿고 일단 엑셀을 밟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실패의 경험조차 일단 '실행'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1.인사이트는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내가 발견한 시장의 틈새나 기회가 오직 나에게만 보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시장의 신호를 포착하고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얻어낸 인사이트는 마치 '신선식품'과도 같다. 신선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부패하며 그 가치를 잃는다. '조금 더 완벽하게' 다듬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려 '매대' 위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망설임은 곧 '기회비용'의 손실이자 경쟁사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패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완벽'이라는 핑계 뒤에 숨지 마라
나는 '완벽하게 일처리 하는 사람'이란 말보다 '어떻게 든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더 듣기 좋다. 반대로 그런 사람과 일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많은 기획안들이 '완벽한 가설'을 세우려다 서랍속으로 버려진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완벽'은 '지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이라는 신인에게 베팅할 때, 그들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실행했을까? 오히려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것은 리스크를 최소화한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내놓고 시장의 반응을 보며 수정하는 '애자일(Agile)'한 태도다. 완벽함을 맹신하는 오만함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빠르게 고쳐나가는 겸손함이 더 압도적인 성과를 낳는다.
3.'실행'만이 진짜 데이터를 만든다
아무리 정교한 시나리오 플래닝도, 아무리 치밀한 마케팅 벤치마킹도 직접 실행해보기 전까지는 한낱 '추측'에 불과하다. 'Act Right Now'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는 유일한 열쇠다. 성공이든 실패든, 실행을 해야만 우리는 진짜 다음 단계를 설계할 수 있는 '살아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4.빠름보다 중요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멈춰있는 거대한 바위를 움직일 때 가장 큰 에너지가 드는 지점은 멈춰있는 바위가 움직이기 전이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훨씬 적은 에너지로 바위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일도 마찬가지여서 실행으로 옮기는 첫걸음이 가장 어렵다.
우리는 종종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로 실행을 미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다. 실행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완벽주의'라는 외면을 포기해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고객의 불편함을 가장 빠르게 해소하고, 그 경험을 통해 브랜드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삶을 사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기대다, 기대는 내일에 의존하고 오늘을 낭비하게 한다(The greatest obstacle to living is expectancy, which hangs upon tomorrow and loses today)'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라는 책에 등장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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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의 달력에는 '오늘(Today)'이라는 단어가 적혀있고,
실패한 사람의 달력에는 항상 '내일(Tomorrow)'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성공한 사람의 시계에는 '지금(Now)'이라는 로그가 찍혀있고,
실패한 사람의 시계에는 '다음(Next)'이라는 로그가 찍혀있다.
내일 보다는 오늘(Today)을,
다음 보다는 지금(Now)을 살아야 하는 이유다.
완벽하게 다듬겠다며 며칠째 쥐고 있던 기획안 하나가 있다. 더 이상 핑계를 대며 미루지 말고, 내일 아침 출근하면 당장 실행 버튼을 눌러야겠다. 다시는 서랍 속으로 짬이 되어 버리는 소중한 아이디어가 없도록 말이다.
나의 다이어리 다음 장에는 '검토 중'이 아닌 '진행 중'이라는 메모가 가득하길 바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