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302.
일요일 오전. 아침에 눈을 떠 TV를 켜니 지구 반대편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 이야기로 시끌벅쩍하다. 어제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짤막하게 접하긴 했는데, 포화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전쟁'이라는 단어가 실감 나는 순간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마치 내 앞마당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가슴을 졸이게 되는 걸 보니, 역시 미디어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생각해 본다.
가만히 뉴스를 보고 있자니 당장 내일부터 요동칠 경제지표에 걱정이 앞선다.
왜 미국은 하메네이를 노렸을까?
1.표면적 명분 : 핵 위협 제거
공식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전쟁의 이유를 '임박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 이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과 탄도 미사일 위협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확보 등으로 핵무기 완성이 임박했다고 판단한 이스라엘과 미국이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북한처럼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이란의 주요 핵 시설은 물론 이를 통제하는 지휘부 전체를 선제 타격한 것이라는 게 언론에 비친 이번 전쟁의 핵심 명분이다.
2.실질적 목표 : 이란 정권 교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의 상징이자 절대 권력자인 하메네이를 제거하는 것이 정권 붕괴의 시작이라 판단한 듯하다. 이란 수뇌부를 일거에 제거해 무주공산 상태를 만들면, 이란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관공서를 장악하고 스스로 정권을 교체할 것이라는 단기전 시나리오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친미 온건 세력으로의 정권 교체'로 본 것이다.
3.궁극적 목표 : 중동 이탈과 중국 견제 집중
외국 주요 언론과 사설들을 살펴보니, 이번 전쟁의 궁극적 배경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견해가 많다. 즉, 미국의 '중동 이탈 전략'이 궁극적으로 '중국 견제에 올인하기 위해서'라는 큰 그림에서 이뤄진 행동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중동 지역 개입에서 손을 떼야만 최대 경쟁국인 중국 견제에 올인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이란의 핵 개발, 탄도 미사일, 호르무즈 해협 위협 등 중동의 핵심 불안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야만 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오랜 숙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스라엘은 이란을 이토록 싫어할까?
이란과 이스라엘의 숙적 관계는 국제 정세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주제다. 하지만 두 나라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직항 항공편이 오가고 미사일 기술과 석유를 교환할 정도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토록 짧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왜 이들은 '원수'가 되었을까?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 등 기존의 주적이던 아랍 국가들과 평화 조약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한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전통적인 아랍국가들의 위협이 줄어들자,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었다. 이란은 종교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신정 체제' 국가다. 이 체제를 유지하고 국민들의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강력한 '외부의 적'이 필요했는데, 호메이니는 혁명 직후 미국을 '큰 사탄',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규정하며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 '이스라엘을 중동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정치 구호는 이란 체제를 결속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했고, 현재까지도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라는 소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란은 중동 내 패권을 장악하고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기 위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시리아,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국 국경 사방에서 날아오는 군사적 위협의 배후에 항상 이란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입장에선 이란이야 말로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주적이라 할 수 있다.
왜 호메이니 정권이 탄생했을까?
호메이니로 대변되는 현 이란 체제의 시작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은 왕정 국가였다. 당시 이란을 이끌던 팔레비 왕조는 '백색 혁명'이라 불리는 급진적인 서구화 및 근대화 정책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성직자들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서양식 교육과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등 급진적 근대화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계 및 기존 기득권 세력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고, 이는 민중과 상인 계급,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세력 형성에 있어 트리거가 된다.
1979년 2월, 수백만 명의 이란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인 끝에 팔레비 국왕이 물러나고, 기존 정권의 탄압으로 프랑스로 망명 갔던 성직자이자 혁명의 구심점이었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하면서 이슬람 혁명은 성공한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최고지도자(라흐바르)가 국가를 대리 통치해야 한다는 '벨라예테 파키(신정 체제)' 이론을 국가 통치 체제로 확립한다. 라흐바르가 행정, 입법, 사법, 군사 등 모든 권력을 쥐는 강력한 종교 국가의 시작이었다.
왜 쿠르드족은 이란을 싫어할까?
이번 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대체 누구길래 중동전쟁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까?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아랍인, 페르시아인, 터키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4대 민족 중 하나다. 하지만 단일 국가를 세우지 못해 '세계에서 가장 큰 무국적 민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근대사의 거대한 파고를 겪으며 이들의 고향인 거대한 산악 지대 '쿠르디스탄'에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4개 국가의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이들은 각 나라의 소수민족으로 쪼개진 채 살아가고 있다.
1979년 당시 이란 인구의 약 15%를 차지했던 쿠르드족은 왕정이 무너지면 자치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슬람 혁명을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는 쿠르드족의 자치 요구를 일축하고, 혁명이 성공한 지 반년 만인 1979년 8월 오히려 쿠르드족을 향해 '성전'을 선포한다. 당시 발생한 무장 충돌로 1만 명 이상의 쿠르드족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왜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국일까?
이쯤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해가 되는데, 미국은 왜 진흙탕 싸움에 끼어든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페트로 달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트로 달러(Petrodollar)'란 산유국들이 원유 수출 대금으로 벌어들이는 달러를 의미하며, 오일달러로도 불린다.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계약에 따라 원유를 달러로만 결제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지난 수십 년간 달러 중심의 금융 패권을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되는 시스템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이란은 경제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중국 위안화로 원유 결제를 늘리며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란 원유 수출량의 약 90%가 중국으로 간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을 테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이란 전쟁 개입은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핵 위협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균열이 가고 있는 '달러 패권 수호'와 '중국의 성장 견제'를 통해 미국의 1강 지배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패권 전쟁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은 지나친 과대망상일까?
조기 종료, 장기화, 제5차 중동전쟁 발발 등 갖가지 시나리오가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전쟁이 앞으로 어떤 스토리라인으로 전개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머리가 복잡하다.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이 주제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