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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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냉장고를 사시면, 제습기를 공짜로 드립니다'
한 때 유행했던 상품기획 방식이다. 이른바 '덤 마케팅'이다. 냉장고를 샀을 뿐인데, 30~40만원은 호가하는 제습기를 공짜로 준다니 얼마나 좋은 상품인가? 하지만 해당 기획은 공교롭게도 꼼수 마케팅으로 취급되어 '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더랬다. 이유는 다름 아닌 '과장광고' 였다.
제습기는 덤이 아니라 '본품+제습기'로 구성되어 있는 묶음 상품이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200만원짜리 냉장고에 40만원짜리 제습기를 끼워넣고는, 냉장고를 230만원에 판매하며 제습기를 공짜인 것처럼 판매한 것은 엄연히 말해 '꼼수 마케팅'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었다. 담당 MD 입장에선 따로 사는 것보다 10만원이나 싸게 기획했다며 억울해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진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판매방식이 고객의 화(火)를 부른 게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늘 마주하던 풍경이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콩나물을 한가득 담고도, 할머니는 꼭 마른 손으로 한 움큼을 더 집어 얹어주셨다.
'이건 덤이야, 집에 가서 맛있게 무쳐 먹어.'
그 투박한 손길 끝에 얹어진 콩나물 몇 가닥은, 단순한 '공짜'가 아니라 그날 저녁 우리 집 밥상을 응원하는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처럼 느껴졌더랬다.
어릴 적 내게 '덤'이란 그런 것이었다.
10년 넘는 시간을 상품기획자로 일하며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런칭했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는 결정타는 화려한 스펙이나 파격적인 할인가가 아닐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오히려 고객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툭 던져진 '예상치 못한 배려', 즉 기획자의 진심 어린 '덤'이 고객의 감동을 이끌어내고 팬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홈쇼핑 MD로 주방 카데고리를 처음 맡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주방 카데고리는 사내에서 늘 부진한 비선호 카데고리였다. 나 역시 몇몇 브랜드가 방송 론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홈쇼핑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프리미엄 수입 식기 회사와 협업을 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홈쇼핑 주방 카데고리는 일명 삼구구(39,900원), 사구구(49,900원), 오구구(59,900원)짜리 저가 프라이팬이나 밀폐용기류가 주를 이루던 때였다. 헌데, 한 세트에 100만원 가까이 하는 프리미엄 수입 식기를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한다는 것은 실패확률이 매우 높은 도전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식기 회사 대표님에게 요즘 식기류 매출이 좋지 않다. 이번에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고 회사 대표님은 리스크가 크지만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겠다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유럽 시장에선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워낙 좋은 상품이었지만 소위 말하는 '엣지'가 없었다. 엣지가 없는 상품을 홈쇼핑스럽게 바꾸는 작업은 반 년 넘게 진행되었다.
헌데, 론칭 방송이 다가올 때쯤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독일 본사에서 추가 구성품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고급 찻잔 세트 원가가 너무 올라 무료로 제공할 경우 마진 측면에서 마이너스가 나버린 것이었다. 찻 잔 세트는 론칭 방송을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한 상품으로 빠져선 안되는 '엣지'였다.
나는 원안대로 모든 구성에 추가 구성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회사 대표님은 가장 비싼 6인조 세트에만 추가 구성을 넣고, 4인조, 2인조는 추가 구성품을 빼서 마진율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얼마간의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고, 방송에서 최대한 6인조 위주로 보여주겠다는 조건으로 전 구성품에 찻잔 세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대망의 론칭 방송. 여러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백화점에서 팔던 고급 식기를 최초로, 그것도 특가로 홈쇼핑에 선보인다'는 컨셉이 먹히며 방송 시작 20분만에 10억 준비물량을 모두 완판하는 기염을 토하며 후에 '프리미엄 식기' 열풍을 주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폭발적 매출에 놀란 독일 본사가 한국을 방문해서 판매 방식을 배워가기까지 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판매 후 달린 고객 후기였다.
'특별 구성품으로 함께 온 찻잔 세트가 너무 이뻐요.'
'싸구려 사은품만 받아보다가 이런 고급스런 제품을 덤으로 받으니 너무 감동이에요.'
'식기세트는 제가 쓰고, 찻잔 세트는 어머니께 선물했는데 너무 좋아하네요'
후기를 본 업체 대표님 역시 '우리 진심이 통했네요. 고객은 역시 위대하군요.'라며 기뻐했다.
한 번은 운동기구 렌탈 상품을 기획할 때였다.
상품 설명서와 계약서만 덩그러니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고민했다.
'고객이 이 거대한 제품을 처음 집에 들였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고민끝에 얻은 답은 설렘 뒤에 찾아올 '관리의 막막함'이었다.
우리는 정해진 서비스 외에 작은 '관리 가이드 북'과 함께, 담당 마스터의 필기체가 담긴 짧은 카드를 '덤'으로 넣어 발송했다. 물론 큰 비용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당신의 일상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진심이 담긴 메시지였다. 이 같은 작은 배려는 이후 수천 건의 자발적인 후기로 이어졌고, 바이럴까지 되며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덤을 '남는 것을 끼워주는 것'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기획자의 관점에서 '덤'은 철저하게 계산된 '진심의 총량'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덤이란, 상품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고객과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본질이 훌륭하지 않은데 덤만 화려한 것은 자칫 '고객 기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이 단단한 상태에서 얹어지는 작은 덤은 오히려 차가운 비즈니스 논리 속 '사람의 온기'를 불어 넣는 효과로 돌아온다.
가끔 효율성만을 쫒는 이들은 반박한다.
'마진도 박한데 굳이 이런 것까지 챙겨야 하나요?'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싶은건가요? 아니면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건가요?'
덤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기획자가 고객을 얼마나 깊게 들여다보았는지, 그들의 불편함과 기쁨을 얼마나 치열하게 상상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소비자 입장에서 같은 가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주는 쪽을 선택하고, 같은 상품이라면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얹혀 있는 쪽에 마음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건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위해 뭔가를 더 해줬다’는 감정이 작동하는 순간, 그 경험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이 ‘덤’의 힘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상품 기획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격과 기능만으로 경쟁하는 상품은 쉽게 비교되고, 쉽게 잊힌다.
하지만 거기에 작은 ‘덤’이 얹히는 순간 그 상품은 기억에 남기 시작한다.
그래서 진짜 좋은 덤은
“이걸 굳이 여기까지 해준다고?”라는 느낌을 남긴다.
그건 비용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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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기획안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완벽한 설계 위에, 고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일 '한 움큼의 덤'을 준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