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675. 프레이밍효과 Framing Effect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316.


스크린샷 2026-03-25 오전 12.33.05.png

홈쇼핑 채널은 상품기획의 꽃이라 불리는 분야다. 몇 달간 공들여 준비한 기획의 성패가 단 60분 남짓의 시간에 엇갈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시간에 100억짜리 스타브랜드가 탄생하기도 하고, 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기획한 상품이 한 순간에 실패한 상품으로 분류되어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방송 론칭의 준비 과정은 '서바이벌 오디션'에 참가한 지원자 만큼이나 치열하다. 이렇게 치열하게 준비함에도 론칭 방송이 성공할 확률은 단 20%에 불과하다.


얼마 전 봄시즌 운영할 주력 브랜드의 신상품 기획 보고가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공들여 준비한 기획이었다. 숫자도 탄탄했고, 논리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자마자 임원 한 분이 이런 말을 꺼냈다.

'이거, 실패 확률이 50%나 된다는 거잖아요.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그 말을 든는 순간 내 얼굴이 순간 굳어짐을 느꼈다. 아차! 발표 자료에 언급했던 성공확률 50%라는 말을 듣고 한 질문임을 직감했다.

'성공 확률 50%'

분명 같은 숫자였다. 그런데 임원이 읽은 것은 '성공 50'이 아니라 '실패 50'이었다.

회의실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이처럼 같은 말인데도 기분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이 상품은 성공 확률이 50%입니다.'
'이 상품은 실패 확률이 50%입니다.'

분명 같은 숫자지만, 받아들이는 감정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앞의 문장은 기대를 만들고, 뒤의 문장은 망설임을 만든다.


'이 상품은 성공 확률이 90%입니다.'

'이 상품은 실패 확률이 10%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숫자를 극적으로 바꾼다 해도 그 느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프레이밍 효과’다.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우리 신부님께 한번 여쭤보는게 어떻겠나?'

한 친구가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부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신부는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친구로부터 신부님의 답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다른 친구가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신부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1981년 발표한 개념이다. 동일한 정보라도 어떤 '틀(Frame)'에 담아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판단과 선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실험에서 사용한 유명한 질문이 있다.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 발생했다. 600명이 감염되었고,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

A안 : 200명을 살릴 수 있다.

B안 : 3분의 1 확률로 600명 전원을 살리고, 3분의 2 확률로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A안을 선택했다.


그런데 같은 선택지를 이렇게 바꿔 제시하면 어떻게 될까.

A안 : 400명이 사망한다.

B안 : 3분의 1 확률로 아무도 사망하지 않고, 3분의 2 확률로 600명 전원이 사망한다.

이번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B안을 선택했다.

숫자는 완벽하게 동일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틀(Frame)'뿐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bw6s0ibw6s0ibw6s.png

상품기획자로 살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기획의 본질 역시 결국 이 '틀'을 짜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어떤 프레임에 담아 고객에게 제안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혁신적인 선물'이 되기도 하고, '비싼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지방을 90% 제거한 제품'이라고 적힌 요거트와 '지방 10% 함유'라고 적힌 요거트.

당신이라면 어떤 제품에 먼저 손이 가겠는가? 내용물은 완벽히 동일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한다.

똑같은 제품인데, '정가 10만 원짜리를 30% 할인해서 7만 원'이라고 말하는 것과 '7만 원짜리 제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가 전혀 다르다.

기획 초년병 시절, 나는 상품의 스펙(Spec)에 집착했다.

'이 청소기는 흡입력이 200W이고, 배터리는 몇 분이며, 필터는 몇 단계입니다.'

내가 짠 프레임은 오직 '기능'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고객이 숫자와 단위에 감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청소기의 스펙'이 아니라, '가족들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깨끗한 바닥'이라는 '가치'의 프레임이다.

기획자의 프레이밍은 단순히 말을 예쁘게 꾸미는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고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상품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의해주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기획자로서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프레이밍이 자칫 '눈속임'이나 '교묘한 포장'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사은품 제습기' 사례처럼, 본질을 왜곡하는 프레임은 잠시 고객의 눈을 가릴 순 있어도 결국 신뢰라는 가장 큰 자산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진정한 기획자의 프레이밍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가짜 틀'이 아니라, 상품 속에 숨겨진 진심을 가장 잘 보이게 해주는 '투명한 유리창'이어야 한다.

프레이밍은 대외적인 언어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조직 안에서도, 보고 자리에서도, 회의실 안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한다.

같은 실적 데이터를 놓고도,

'전년 대비 매출이 15% 감소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전년도 역대 최고 실적 대비 15% 조정되었으나, 업계 평균 대비 8% 상회하는 수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표정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틀린 말을 하라는 게 아니다. 어떤 사실을 어떤 맥락의 틀에 담아 전달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이 바로 기획자가 단순한 '데이터 전달자'가 아니라 '의미의 설계자'여야 하는 이유다.

Gemini_Generated_Image_3lb6nk3lb6nk3lb6.png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이 프레이밍이라는 개념을 두고 불편한 감정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거 결국 포장 스킬 아냐?'

'본질이 부실한데 틀만 바꾸는 건 결국 사기 아닌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이러한 생각이 바뀌어갔다. 프레이밍은 거짓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책임에 가깝다.

이건 몇 가지 상황만 떠올려봐도 명확하다.

훌륭한 상품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상품도, 형편없는 프레임에 담기면 외면받기 쉽다.

반대로 나쁜 상품이 있다. 번지르르한 프레임으로 포장하면 잠깐은 잘 팔린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긴 힘들다.

결국 프레이밍의 힘은 '본질을 가장 잘 보이게 만드는 틀'을 찾는 데 있다.

감추기 위한 프레임이 아니라,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한 프레임 말이다.

그 경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기획자의 실력이다.


같은 하루를 보내고도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래도 이 정도는 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현실은 같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하루를 해석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요즘은 일을 하면서도, 삶을 바라보면서도 하나의 질문을 더 던진다.

.

.

.

'지금 나는 이 상황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고 있는가?'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우리는 세상을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본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


작가의 이전글031574. 덤 'Ex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