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776. 아디아포라 'Adiaphora'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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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a(없다)'와 'diaphora(차이, 중요성)'가 합쳐진 단어다. 직역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는 것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어 '아디아포론'에서 유래한 용어로 신학적으로는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명령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사항을 가리키며, 크리스천의 신앙 양심에 따라 행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을 말한다. 본래는 신학적 용어지만 앞에서 직역한대로 ‘대수롭지 않은 것’, 즉 '해도 좋고 안 해도 되는' 다시 말해, 인생에는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현대인들은 선택지가 참 많아졌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부터,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콘텐츠를 볼지, 어떤 상품을 선택할지 등등 선택지는 넘쳐나는데 묘하게도 마음은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1.추구해야 할 것(Good)

2.피해야 할 것(Evil)

3.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는 것(Adiaphora)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택들이 우리 삶에 의외로 많다. '인생의 본질과는 무관한 선택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하루는 '아디아포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카페를 갈지, 어떤 브랜드를 살지, 어떤 말을 먼저 꺼낼지.

선택지는 많지만, 그 선택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중요하지 않은 선택들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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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폰트 크기 1pt, 버튼 위치 3px, 카피 한 줄의 뉘앙스'

디테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본질보다 디테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이 상품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 앞에선 침묵하면서, 그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선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풍경은 의외로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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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중요하게 여기면 결국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선택이 많아질수록 우리에겐 ‘버릴 기준’이 필요하다.

'아디아포라'라는 개념이 흥미로운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작업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획자로 16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아디아포라를 아디아포라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목격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경쟁 브랜드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러자 팀 전체가 술렁인다.

'우리도 빨리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안 하면 뒤처지는 거 아닌가요?'

경쟁사의 움직임이 중요한 정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기획 방향 전체를 흔들어야 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디아포라'다. 참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경쟁사의 선출시는 분명 큰 변수다. 하지만 우리 상품의 존재 이유를 송두리째 흔드는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즉, '아디아포라'다.


'아디아포라인 척 위장한 중요한 것'과 '중요한 척 위장한 아디아포라'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기획자는, 늘 바쁘지만 늘 중요한 일을 놓친다.

매일 쏟아지는 트렌드 리포트, 경쟁사의 신규 캠페인, 상사의 즉흥적인 한 마디, SNS에서 반짝 뜨는 이슈들.

이 모든 것에 동일한 무게를 싣고 반응하는 기획자는 결국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반응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야말로 일류 기획자를 가르는 척도가 되는 이유다. 다시 말해, 무엇이 아디아포라인지를 아는 것.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그의 저서 '명상록(Meditations)'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너를 해치는 것은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너의 판단이다.'





'현명한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준비란, 불필요한 것들을 미리 내려놓는 일이다.' — 명상록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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