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113.
오늘은 지난 '사케에 대한 단상'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일본을 대표하는 사케브랜드 '닷사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상품기획자에 시선에서..
'닷사이(獺祭, DASSAI)'와 엮인 일화는 워낙 많지만, 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건 일본의 야구 스타 '사사키 로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였던 그가 LA다저스로 이적할 때의 일이다. 당시 LA다저스에는 '미겔 로하스'가 자신의 등번호였던 '11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를 양보받게 된다. 메이저리그에는 등번호를 양보받은 선수가 번호를 넘겨준 선수한테 사례를 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때 그가 감사의 의미로 '일본의 유명한 술'이라며 건넨 일본주(日本酒)가 바로 '닷사이23'이었다.
때문일까?
술 좀 좋아한다는 외국인들에게 '최고의 사케(日本酒)'를 꼽으라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브랜드가 '닷사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브랜드이길래 이런 평가를 받는 걸까? 싶지만 그 명성에 비해 역사는 길지 않다.
'닷사이'를 만드는 '아사이주조'의 설립년도는 1948년. 80년 가까이 된 브랜드니까 그리 짧은 역사라 치부하긴 어렵지만, 100년 넘는 양조장만도 수백 개에 달하는 일본 사케 업계. 그것도 장인(長人)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모회사인 아사이 주조가 설립된 해는 1948년이지만, '닷사이'라는 술이 세상에 나온 건 그로부터 42년이 더 지난 1990년이다. 그렇다면 '닷사이'는 어떻게 이 짧은 기간에 '사케의 왕'이 되었을까?
닷사이의 탄생 비화는 개인적으로도 팬인 '시마과장'의 작가 '히로카네 켄시'의 '닷사이의 도전'이라는 만화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때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업으로 아사이 양조장을 물려받은 '히로시 사쿠라이'는 1970~80년대 맥주와 소주의 인기로 망해가던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최고급 사케인 '준마이 다이긴죠' 만들기에 도전한다. 여느 성공스토리가 그러하듯 수많은 역경을 딛고 '칠전팔기' 끝에 '닷사이'라는 상품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적당히 양념을 넣어 잘 버무리긴 했으나 사실 탄생스토리 자체는 이렇다 할 게 없다.
오히려 브랜드 스토리를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히로카네 켄시'라는 유명 작가와의 콜라보를 통해 '만화'라는 형태로 그려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실제로 닷사이는 전통주라는 카테고리의 성격과는 별개로 콜라보 마케팅에 상당히 적극적인 브랜드다. 세계적인 작곡가 '히사이시 조'와 협업하여 그의 서명이 들어간 '하사이시 조 라벨(Joe Hisaishi Label)'이란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본사의 닷사이 스토어 또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와의 협업 작품이다. 그 외에도 미슐랭 3스타 조엘 로브숑, 야니크 알레노 등 유명 셰프들과의 적극적인 콜라보를 시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뿐인가? 미쓰비시 중공업(MHI) 및 JAXA와 협업하여 우주 공간(ISS)에서 사케를 양조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예술, 건축, 미식을 넘어 하이테크와도 콜라보라니..
전통을 상징하는 사케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은 마케팅 행보야말로 닷사이의 진짜 브랜드스토리가 아닐까?
탄생스토리보다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다른 아닌 '닷사이'라는 브랜드네이밍이다.
닷사이 병을 보면 붓으로 쓴 한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수달을 뜻하는 '달(獺)'과 축제를 뜻하는 '제(祭)'가 합쳐서 '달제(獺祭)'라는 글자다. 직역하면 '수달의 축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술에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듣는 사람이 궁금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다. 소비자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이라는 씨앗을 심어주는 것! 이 것이 닷사이의 첫 번째 킥이다!
아사이 주조가 위치한 지역은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오소고에란 곳이다. 오소고에(獺越)라는 지명의 의미가 '獺(수달)'이 '越(넘어오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수달을 소재로 사용했고, '수달이 제사를 지내듯'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염원을 담았다는 것이 닷사이 측의 설명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지역을 대표하는 '지자케(地酒)'의 성격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수달이라는 재미난 캐릭터까지 연상이 되니 꽤나 잘 만들어진 브랜드스토리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닷사이 하면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는데, 45, 39, 23 독특한 넘버링이다. 이 숫자는 정미율(=쌀을 깎아낸 후 남은 쌀의 비율)을 표기해 놓은 것인데, 의외로 다른 사케 브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표기법이다.
일본 전통 사케 라벨을 보면 일정한 규칙이 있는데, 가운데 큼지막하게 쓰인 것이 술의 이름, 오른쪽 상단에 표기된 정보는 술의 종류와 등급, 왼쪽에는 양조장 정보, 그 외에 원료와 기타 정보들이 표기되고, 정미율 같은 세부 정보는 라벨 뒷편 상세정보란에 자그마하게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서양의 위스키에서 차용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 같다. 사케는 쌀을 많이 깎아낼수록 풍미가 좋아지지만, 그만큼 공이 많이 들고, 버려지는 쌀도 많기 때문에 정미율이 낮을수록 비싸다. 반면, 위스키는 오크통에서의 숙성기간을 표기하므로 숫자가 높을수록 비싸다. 참고로 닷사이 제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닷사이23'이다. 만약 사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23년 산?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이걸 의도한 건 아니겠지?
'23'이라는 숫자에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숫자 '23'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그의 백넘버를 바라보며 성장한 세대여서이기도 하겠지만, 23이란 숫자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렇듯 마케팅에서 '숫자'가 주는 임팩트는 강렬하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포인트는 이 지점이다.
마케팅 격언 중에 '숫자로 고객의 마음을 훔쳐라'라는 말이 있다.
'숫자마케팅'은 문자에 비해 기억이 용이하고, 함축적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리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똑같은 정보라도 '숫자'라는 상징적 수단을 활용하면 훨씬 더 소비자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닷사이를 대표하는 제품은 '닷사이23'이다. '닷사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23'이란 숫자가 포함된 '닷사이23'이란 대명사가 더 유명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아사이 주조가 처음에 만든 닷사이 제품의 정미율은 50%와 45%였다. 최상급 사케 '준마이 다이긴죠(정미율 50% 이하)'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었으니 이미 최초의 목적은 달성한 셈. 하지만 최고의 술을 만들고 말겠다는 일념을 담아 일본 최고의 정미율로 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당시 사케에 사용된 일본 최고의 정미율은 24%였다) 그리고 이를 상징하기 위해 라벨에 23이란 숫자를 새겨 넣은 것이 '닷사이23'의 시작이었다.
'일본 당대 최고의 정미율로 만든 술'이란 타이틀!
자 느낌이 어떤가?
당연히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종전의 히트작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곰곰이 생각해 보라.
'정미율이 높다'='최고의 사케'라는 등식은 하등 인과관계가 없다.
좋은 원재료가 무조건 맛있는 음식 맛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