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12. 사케(酒,さけ)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112.



일본을 방문하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다.
매대를 가득 매운 이름 모를 사케(酒,さけ)들이다.

일본 전역에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 개수만도 1,500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브랜드별로 내놓는 술의 가짓수가 딱 한 가지는 아닐 터, 그 종류와 다양성은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이 맞지 않나 싶다.

한국의 빈약한 전통주(酒)의 라인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아쉽기는 한데,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통주 문화 말살' 정책과 그 궤를 같이 하기에 아쉬움을 넘어 씁쓸한 감정마저 든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주세법(1907년) 시행과 동시에 술에 세금을 매기기 편하도록 ‘가양주(=집에서 직접 빚던 술)’ 제조를 금지했다. 허가를 받은 사람만 술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의 주류 시장은 대형 양조장 위주로 재편된다. 주류 시장에도 이른바 한국 특유의 대기업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일본에도 아사히, 산토리 등 대형 주류회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전통주 시장과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의 술 문화는 공통점이 많다.

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술 역시도 쌀로 만든다는 점에서 같고, 누룩곰팡이를 효소로 쓴다는 점 역시 같다. 때문에 일본의 사케를 처음 접한 사람들도 이렇다 할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 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가지로 나뉜다.

탁주(濁酒)는 '빛깔이 탁하다'라고 해서 예로부터 주로 농사꾼들이 마시던 술이라는 의미로 ‘농주(農酒)’라고도 불리었는데, 현대인들에겐 바로 걸러 마신다는 의미의 ‘막걸리’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돈 좀 있다는 양반네들은 청주(淸酒) 또는 소주(燒酒)를 마셨다. 아무래도 막걸리에 비해 손이 많이 가다 보니 고급술로 분리되었고, 술을 높여 부르는 의미로 '약주(藥酒)’라고도 불렸다.


일본의 사케는 우리가 흔히 '청주'라 부르는 술을 말한다. 예전에는 ‘정종(政宗)’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종은 술의 종류가 아니라 사케를 판매하던 회사의 브랜드명이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께선 아직도 사케류의 술을 통칭해 정종이라 부르신다. 역시 브랜드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일본에선 이런류의 술을 ‘니혼슈(日本酒)’라 부른다. 메이지유신 이후 늘어난 외국산 술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부르던 것이 정착된 것이다. 술은 일본어로 ‘오사케(お酒)’다. 맥주, 위스키, 소주, 와인도 일본에선 모두 사케(酒)로 불려지니, 청주를 사케로 부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일본의 사케가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웬만한 기본 지식 없이는 제대로 즐기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인 몇 가지 기준 정도는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듯하여 소개해본다.

와인 라벨처럼, 일본의 사케 또한 라벨에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한국인들에게도 나름 유명한 일본의 대표 사케 브랜드 '닷사이(獺祭)'의 라벨지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사케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프론트라벨 정중앙에 표시된다. 한자 또는 붓글씨 필체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들 또한 읽기 어려워한다고 한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글자는 주류의 종류를 의미한다. 준마이, 다이긴죠, 긴죠 등등 도대체 뭐가 뭔지 복잡한 용어들이 많은데, 중요한 키워드는 '순미'와 '정미'다.

'정미(精米)'란 '쌀을 얼마나 깎아냈는가'를 의미한다. 깎아낸 비율. 즉, 정미율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쌀을 많이 깎아낼수록 풍미가 올라갈 뿐 아니라, 버리는 쌀도 많아지는 만큼 등급 또한 올라는 특징이 있다. 정미율이 낮을수록 고급으로 치며, 50% 이하를 '다이긴죠', 60% 이하를 '긴죠', 70% 이하를 '혼조죠'라고 부른다.

'순미(純米)'란 말 그대로 순수하게 쌀로만 만들었느냐, 알코올을 첨가했느냐를 말한다. '쌀로만 만든 술'이라고 해서 등급 앞에 '준마이(純米)'라는 명칭이 붙는다. 닷사이 라벨에는 '준마이 다이긴조'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순수하게 쌀로만 만든 최상급 사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상적으로 왼쪽에 작게 표시된 글자는 술을 제조한 양조장의 정보다. 닷사이 옆에 숫자 23이 보이는데, 이건 술의 정미율을 의미한다. 쌀의 23%만 남기고 다 깎아내 사용했다는 뜻이다. 보통 양주에서는 라벨에 적힌 숫자가 숙성기간을 의미하고, 숫자가 높을수록 가격이 비싸지는데 반해, 사케는 숫자가 낮을수록 비싸지는 게 특징이니 알아두면 좋다.

이 외에도 일본에는 SMV(Sake Meter Value)라고 해서 사케의 맛을 측정하는 기준도 있다.

와인처럼 산도, 당도 등을 수치화해서 세밀하게 분류하는 기준까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룹핑 할 수 있는 '수많은 라인업'이 부럽긴 하다.


얽히거나 쌓이었던 일이 쉽게 잘 풀리는 것을, 우리는 '술술 잘 풀린다'라고 말한다.

역시 술 얘기가 주제로 나오니 내 글도 술술 풀리다 못해 날아간다.

술이라는 녀석이 이야깃거리가 참 많긴 한가 보다.







- 관련글 보기 : 닷사이23 'DAS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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