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142. 최선 'Do my best'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211.



얼마 전 살아있는 축구의 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한 인터뷰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만 40세의 나이에 포루투갈을 UEFA 네이션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그를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었다. '어떻게 그 나이까지 왕성하게 현역생활을 이어갈 수 있느냐. 비결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 비결을 말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자만 지금 당장 내가 오랜 기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을 말해준다고 해도, 과연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였다.

대중은 그의 화려한 선수경력과 사생활은 잘 알지만, 그 이면에 그가 지독한 루틴왕이자 훈련광이란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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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고와 최선은 다르다.

사람들은 모두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선 최선의 자세가 필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고는 타인을 향하지만, 최선은 언제나 자신이 기준이어야 함을 알지 못한다.

최고가 결과만을 말한다면, 최선은 그 과정 자체임을 알지 못한다.

최선은 내가 얼마나 고난을 이겨냈고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관건이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꼴찌를 할 수도 있다.

반면 최고라는 타이틀은 타인을 이겨야만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최고만을 꿈꾸며, 최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인생에서 누구나 최고가 될 수는 없겠지만, 누구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최선(最善)'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보폭을 뜻한다. '가장 최(最)'에 '착할 선(善)'. 말 그대로 가장 최적의 상태, 즉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티끌만큼의 후회도 남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한 번은 주문을 잔뜩 받아 두었는데, 프랑스 현지에서 비행기 선적 일정이 꼬이면서 국내 입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결국 심야 택시도 아닌데 프랑스 현지에서도 한국식 '따따블' 전략은 통했고, 어렵게 빈자리를 얻어 간신히 상품을 인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물류비용 덕에 치밀한 기획으로 잔뜩 받아둔 주문액은 대박은 커녕 본전도 못 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지만, 지구 반대편 물류 회사를 다 뒤져가며 단 몇 박스라도 실어 한국으로 보낼 빈자리를 찾아 헤맸던 그 집요함. 밤낮으로 일일이 배송추적을 해가며 통관일정부터 입고일절까지 물셀틈 없이 체크했던 그 집요함. 물류센터에 직접 나가 물건 하나하나를 체크하고 송장번호까지 일일이 확인하던 그 집요함. 그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내겐 '최선'의 순간들로 남아있다.

사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MD인 나 스스로가 자신의 'PB(Personal Best)'를 갱신했음을 아는 고독한 승리의 순간 말이다.


기획 업무에서 '최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공식은 없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샐리의 법칙’이 도와줄 때도 있고, '머피의 법칙'이 회방꾼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획이 '최고'의 결과를 내는 법은 결코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결국 폰트 한 자의 위치를 조정하는 그 지루한 '최선'들이 모여 고객의 옆구리를 찌르는 '리마커블'한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최고라는 자리는 늘 누군가와의 경쟁 속에서만 존재한다.

반면 최선은 다르다. 최선은 비교가 아니라 태도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기준을 낮추지 않는 것.


최고는 결과의 언어지만, 최선은 과정의 언어다.

오래 버티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최고가 되겠다'가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다.

최고만 바라보면 작은 실패에도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최선을 기준으로 삼으면 실패조차 성장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요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한 가지가 있다.

최고는 목표로 삼기엔 좋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최선이라는 것을..

오늘도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질문해 본다.

'오늘 나는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는가?'

오늘 밤은 최고가 되지 못한 억울함보다, 최선을 다한 나에게 따뜻한 술 한 잔 건네고 싶다.




'최고는 비교를 통해 얻어지지만, 최선은 스스로를 넘어서며 완성된다.'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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