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051. 에어조던 'Air Jordan'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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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는 잘 몰라도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성공한 신발 브랜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발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그의 실루엣이 그려진 로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스포츠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이자 신앙이 된 이름, 지금의 나이키 제국을 만든 1등 공신 '에어 조던(Air Jordan)'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1980년대. 나이키의 위상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기껏해야 육상선수들을 위한 신발을 만드는 그저 그런 신발 브랜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이 이런 브랜드에서 내놓는 농구화를 거들떠 볼리 만무했다. 당시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와 아디다스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나이키의 입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오늘의 주인공인 '마이클 조던' 역시도 아디다스의 광팬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공식 경기에서는 공식스폰서인 컨버스를 신었지만, 연습 때만큼은 늘 아디다스만 고집할 정도로 열렬한 소위 '아디다스빠'였다. 그는 에이전트에게 '나의 첫 스폰서는 무조건 아디다스여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NBA는 2m가 넘는 거인 센터들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아디다스는 198cm의 조던이 너무 작다고 판단해 그를 외면한다. 아디다스의 냉담한 반응에 애가 타들어 가던 에이전트 '데이비드 포크'는 차선책으로 나이키에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당시 육상화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비교적 작은 브랜드였던 나이키를 조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미팅을 성사시킨 주인공은 다름 아닌 조던의 어머니다.

'나이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니?'라는 엄마의 한마디에, 효자였던 조던이 마지못해 나이키와의 미팅에 참석한 일화는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후에 '에어'라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나이키에는 조던의 가치를 알아본 인물이 있었다. 농구화 사업부 담당자였던 '소니 바카로(Sonny Vaccaro)'였다. '에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멧 데이먼'이 연기한 인물이 바로 소니 바카로다. 나이키는 무명의 신인 선수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년간 25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하며 그만을 위한 특별한 농구화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제안한다. 이 절박하고 대담한 베팅은 오늘날 스니커즈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서막의 시작이었다.


단순한 농구화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에어 조던'. 상품기획자의 시선에서 이 위대한 브랜드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1.위기를 기회로 바꾼 '반항'의 스토리텔링

'에어조던1'이 첫 선을 보인 건 1985년이다. 당시 NBA 선수들은 모두 흰색 농구화를 신었다. 이는 엄격한 당시 NBA 유니폼 규정 때문이었다. 에어조던은 강렬한 검정색과 빨간색의 파격적인 조화를 선보였다. 이른바 '브레드(Bred)'라 불리는 이 컬러는 하얀색 바탕을 강제하던 당시 NBA의 엄격한 유니폼 규정에 어긋나는 색상이었다. NBA 커미셔너는 해당 신발을 착용하면 경기당 5천 달러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평범한 기업이었다면 규정에 맞게 디자인을 수정했겠지만, 나이키의 마케팅 방식은 달랐다. 나이키는 NBA 커미셔너가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당 컬러의 운동화 착용을 금지하자 오히려 이를 그들의 제품 광고에 역이용하는 영리한 전략을 편다. 'NBA는 이 신발을 금지했지만, 당신이 이 신발을 신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카피로 대중의 반항심과 열광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위기를 오히려 브랜드의 강력한 서사로 둔갑시켜 버린, 그야말로 마케팅 교과서에 남을 완벽한 '스토리텔링'이었다.

2. 페르소나의 결핍(Pain Point)을 집요하게 파고든 상품기획

조던 시리즈가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예쁜 신발을 만드는 것을 넘어 '마이클 조던'이라는 단 한 명의 페르소나의 요구와 결핍에 집요하게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에어 조던은 단순히 '마이클 조던'을 광고 모델로 활용한 브랜드가 아니다. 나이키는 에어조던 시리즈를 내놓을 때마다 그의 니즈에 철저히 집중했다. 조던의 요구를 반영해 발목의 자유도를 높인 미드컷 디자인의 '에어 조던 3', 농구 코트에서는 물론 턱시도와 같은 정장에도 어울리면서 동시에 내구성이 강한 신발을 원했던 조던의 니즈를 반영해 번쩍이는 페이턴트 레더(에나멜)와 카본 플레이트를 적용한 '에어 조던 11'이 대표적인 예다. 사용자의 불편함과 열망을 정확히 꿰뚫은 상품기획이 얼마나 혁신적인 결과물을 낳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3. 로고마저 덜어내는 자신감, '상징'이 된 브랜드

초창기 '에어조던1'에는 나이키의 상징인 스우시(Swoosh)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그러나 '에어조던3' 부터는 마이클 조던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점프맨(Jumpman)' 로고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급기야 '에어조던7'에 이르러서는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를 과감히 빼버리기에 이른다.

나이키라는 모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던' 그 자체를 독자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격상시키기 위한 고도의 기획이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로고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노출시키려 애쓸 때, 가장 강력한 자산을 과감히 지워버림으로써 오히려 조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완성한 것이다. 요즘이야 자주 사용되는 마케팅 접근법이지만 당시로선 파격을 넘어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른바 '덜어냄의 미학'이 이룩한 새로운 브랜드로의 전환이었다.


나는 1990년대 AFKN(주한미군방송, 당시 2번) 채널을 통해 방영되던 NBA 경기를 챙겨보며 자란 '조던키즈'다. 한국어 해설도 없이 영어 해설로만 방송했기에, 매번 영어 듣기 평가하듯 귀 기울이며 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당시는 '마이클 조던'의 시대였다. '농구대잔치'가 전부였던 그 시절. TV속 화려한 무빙과 하늘을 나는 듯한 점프에 이은 덩크 장면을 선보이던 조던은 '농구의 신' 그 자체였다.

에어조던의 브랜드 역사를 되짚어보며 상품기획자가 아니라 NBA를 선망했던 한 소년으로 돌아가 다시금 깊은 상념에 잠긴다. 만약 나이키가 1984년. 조던이라는 한 신인 선수의 떡잎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이키가 존재했을까?

결국 위대한 브랜드는 뛰어난 기술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제품 이면에 흐르는 치열한 고민, 금기를 깨는 과감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조던이라는 페르소나를 위해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기획자들의 집요함이 모여 시대의 아이콘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

'위대한 상품기획이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열망을 파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역사 속 선배 기획자들에게 한 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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