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152. 뉴발란스 'New Balance'

by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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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 물로 변해 땅을 적시는 계절 '우수(雨水)'다. 긴 겨울도 점차 끝이 보인다. 설 명절 연휴가 지나고 첫 주말을 맞아 러닝화를 신고 야외로 나갔다. 역시나 집 앞 공원에만 나가봐도 이미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올해는 날이 풀리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좀 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결국 2월 중순이 훌쩍 넘어간 시점에서야 이러고 있으니 마음속에선 후회가 밀려온다.

러닝에만 집중하면 좋으련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끝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최근 러닝 열풍이라는 걸 실감하는 포인트가 바로 다양해진 러닝화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이키와이 아디다스 로고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온러닝, 호카, 브룩스 등 평소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들이 많이 보인다.

헌데 요즘 '근본'이라는 단어와 함께 유독 상품기획자인 내 눈에 띄는 브랜드가 하나 있다. 한 때 '아저씨 신발'로 불렸던 '뉴발란스(NewBalance)'다.

요즘 뉴발란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실 뉴발란스의 인기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거세다. 고인 물 중에 고인 물임에도 불구하고 뉴발란스는 어떻게 이토록 치열한 운동화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나타내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일까?

1.'아빠 신발(Dad Shoe)'과 놈코어 트렌드

최근 패션계에서 '놈코어(Normcore)' 트렌드가 유행이다. 놈코어(Normcore)란 평범함을 뜻하는 'Normal'과 핵심을 뜻하는 'Hardcore'의 합성어다. '꾸민 듯 안 꾸민(꾸안꾸)' 스타일이 놈코어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운동화 등 기본 아이템으로 평범한 듯 보이지만 핫한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놈코어의 핵심이다. 투박하고 못생긴 듯하지만 힙한 '어글리 슈즈' 트렌드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 한 때 아빠 신발로 불리던 뉴발란스의 투박한 디자인은 이 트렌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심지어 경쟁브랜드들의 경우 트렌드를 쫓아 억지로 이에 맞는 신제품을 출시한 데 반해 뉴발란스는 '근본'으로서 자연스럽게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2.힙한 브랜드들과의 전략적 협업(콜라보레이션)

뉴발란스는 에임 레옹 도르(Aimé Leon Dore), 미우미우(Miu Miu), 스톤 아일랜드, 자운드 등 유명 패션 브랜드와 활발한 콜라보를 진행한 바 있다. 핫한 브랜드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콜라보 맛집'으로 등극한 것이다. 또한, 신제품을 소량만 기습 발매하는 '드롭(Drop) 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뉴발란스의 드롭(Drop) 전략은 한정판 콜라보레이션과 래플(추첨) 판매를 통해 희소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1)희소성 극대화(Limited Drop) : 인기 모델(997 등)을 소량으로 특정 시간에 한정 판매

2)콜라보레이션 래플(Collaboration & Raffle) : 타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래플(Raffle추첨)' 방식으로 판매

3.클래식 러닝화의 부활

과거 최고의 기술력을 담아 출시했던 퍼포먼스 러닝화들을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재출시한 것도 큰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뉴발란스 530' 모델은 한국(이랜드) 팀이 글로벌 본사에 적극 제안하여 재출시된 모델로, 투박하면서도 멋진 디자인과 편안함으로 국내에서만 200만 켤레가 팔렸다. 이외에도 30년 만에 재출시해 큰 인기를 누렸던 550, 뉴발란스의 창립 연도가 제품명인 1906, 11년에 단종되었다가 부활한 860v2 등 클래식 러닝화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하며 다시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4.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과 공격적인 마케팅

과거 기능성 신발 이미지가 강했던 뉴발란스는 최근 스트리트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슈즈를 아우르는 종합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피봇팅을 시도중이다. 신발뿐만 아니라 의류 부문과 직영 매장 매출을 크게 늘리며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고 있다. 또한, 과거 스타 마케팅을 지양했던 고집을 꺾고 오타니 쇼헤이, 카와이 레너드, 아이유, 김연아 등 국내외 대형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을 적극 기용하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최근 팬코노미(Fanconomy), 디토소비(Ditto) 트렌드와 맞물리며 긍정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5. 120년이란 시간과 '근본이즘'

이러한 유행의 바탕에는 '신발은 편안해야 한다'는 뉴발란스의 강력한 본질이 깔려 있다. 1906년 닭의 발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아치 서포트(깔창)를 만들던 것에서 출발한 뉴발란스의 창업 스토리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브랜드 철학이다. 이러한 브랜드 철학은 첨단 기술과 더불어 프레시폼(FRESH FOAM), 퓨어셀(FUELCELL) 등 자체 개발한 최첨단 쿠셔닝 기술로 발전되었다. 또한, 인건비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공장에서 직접 신발을 생산하는 'Made in USA', 'Made in UK' 프리미엄 라인을 고수하는 전략 역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근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근본이라 불리는 브랜드이니만큼, 그들의 근본 스토리도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다.

뉴발란스의 시작은 1906년 미국 보스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민자였던 발명가 '윌리엄 라일리(William J. Riley)'는 뒷마당의 닭들이 세 발가락만으로 완벽한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발바닥 아치 부분을 받쳐주는 특수한 깔창을 발명한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만들어진 이 제품은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아 '뉴발란스(New Balance)'라는 이름으로 출시된다. 뉴발란스의 시작이었다.

1938년은 뉴발란스가 기능성 신발에서 러닝화 시장에 진출한 최초의 해다. 처음 시작한 아이템은 최초의 '맞춤형 러닝화'였다. 역시나 그 시작은 '발의 편안함'이었다. 1960년에는 혁신적인 러닝화 '트랙스터'를 세상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이 모델은 신발의 길이로만 고를 수 있던 신발사이즈의 개념을 발볼 너비까지 확장한 최초의 제품이었다. 발볼이 넓어 고민인 사람들에게 맞춤형 신발을 신은 듯한 편안함을 제공하며 큰 인기를 끈다.

1972년. 현 오너인 '짐 데이비스'가 6명의 직원이 하루 30켤레를 만들던 작은 회사였던 뉴발란스를 인수한다. 당시는 미국 전역에 거대한 조깅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1976년에 처음으로 알파벳 'N' 로고를 부착하여 출시한 러닝화 '320'이 최고의 러닝화로 선정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90년대 뉴발란스는 위기를 맞는다. 당시는 인건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상품경쟁력을 높이던 것이 유행이던 시대였다. 또한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화려한 스타 마케팅의 시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뉴발란스는 비싼 인건비를 감수하면서도 미국과 영국 내 생산을 고집했다. 품질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촌스럽고 투박한 비싼 신발'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고, 소위 '아빠 신발'이란 조롱까지 받으며 시대의 뒷켠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평생 단순함과 본질을 추구했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유명인의 애착 신발로 사랑받기도 했다.


상품기획자로서 '뉴발란스(NewBlance)'라는 브랜드를 바라보며 드는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자기다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들은 유행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분야인 ‘편안함’과 ‘품질’이라는 근본에 집중해 왔다. 그것도 자그마치 120년이란 시간을 말이다.

아식스가 화려한 제품 스펙을 자랑하고 나이키가 대중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스타들을 자랑할 때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뉴발란스는 근본으로 돌아가 '당신의 발은 편안한가요?'라고 물었다. 제품이 아닌 고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해석은, 결국 그들을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뉴발란스는 유행을 좇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에 집중하며 '아빠 신발(Dad Shoe)'이라며 조롱할 때도 자신만의 본질을 고수했다. 그 결과, 놈코어와 어글리 슈즈 트렌드가 도래했을 때 가장 진정성(Authenticity) 있는 브랜드로 자연스럽게 트렌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이는 브랜드가 자신만의 확고한 헤리티지를 지키고 있으면, 시대의 흐름과 맞물렸을 때 폭발적인 수요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트렌드를 쫓아 끊임없는 변주를 시도하고 있는 뉴발란스의 전략 변화가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수순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향후 수십 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고집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상품기획이라는 것이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일이지만, 때로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에서 완성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뉴발란스라는 브랜드 서사는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하다.

기획과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Balance)’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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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질문해 본다.

당신의 브랜드에서, 당신의 기획에서 '지킬 것' 그리고 '바꿀 것'은 무엇인가?
혹시 화려한 유행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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