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어, 다시 묻다 (1)
지금 전 제주도 어느 까페에서 제 인생의 중요한 배움들을 다시 물어보며, 끄적이기도 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불혹이라는 나이-마흔이 되니, 제가 삶을 통해 배운 것들이 무엇이였는지 문득 정리하고 싶었나봅니다. 노트에 끄적인 부끄러운 성찰 몇가지를 정리해봅니다.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1.
나는 배웠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들 또한
몸을 통한 직접 경험만큼이나
기쁨을 선물한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스승들과
수천년 세월 전에 울려퍼진 목소리도
책 속에 담겨 만날 수가 있음을.
2.
나는 배웠다.
배우는 자가 없다면
가르치는 자 또한 없다는 것을.
수많은 학교와 교실을 만들고,
가르침으로 먹고 사는 전문인을 키워도
배우는 자가 없다면 헛된 투자임을.
대학이라 불리우는 곳에 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있는 곳에 배움이 되살아난다는 것을.
3.
나는 배웠다.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고 훈련하는 것보다
어떤 배움이 필요한지 묻고 대화하는 것이
더 크고 깊은 배움을 촉진한다는 것을.
참가자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퍼실리테이션이나
실제 과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액션러닝 같은
방법들이 배움의 질과 배움의 기쁨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4.
나는 배웠다.
코치(Coach)는 선수(Player)의 성장과 성공에
공헌함으로써 승리와 보람을 함께 누리는 존재임을.
우리 삶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심판이나 감독관이 아니라,
우리를 조력하는 코치와 같은 존재들임을
5.
나는 배웠다.
꿈을 꾸고, 비전을 수립하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용기만큼이나,
꿈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온전히 수용하고, 걸림돌을 직시하며,
모순과 양가감정들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가장 행복하지 못한 순간들을
어찌 대하는가가 중요한 것임을.
6.
나는 배웠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나다움을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이들의 견해를 경청하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과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을 때,
다름이 도움이 되는 나-너-우리다움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7.
나는 배웠다.
남의 글을 읽는 것이든, 남의 수업을 듣는 것이든,
남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음미하는 즐거움과
자신의 글을 쓰고,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이어져있음을.
나의 기쁨과 편안함이
누군가의 고뇌와 노고의 산물임을.
나와 연결된 누군가의 기쁨이
나의 고통을 견딜만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자양분임을.
8.
나는 배웠다.
미숙하더라도 시작해보고,
미완이라도 마무리하고,
다시 쳐다보기 싫어도 또 해보고,
실수하고 고치고, 다시 또 고쳐가며
조금씩 나아져갈 수 있음을.
그러니 처음 시작라는 이들과
미숙해보이는 모든 것들을 비웃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를
나는 배웠고 또 배우는 중이다.
9.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들의 배움을 촉진하는 것과
가까운 가족의 배움을 촉진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끈끈하게 엮여 있는 관계 속에서
배움을 적용하는 것이 휠씬 어렵다는 것을
두 딸의 아빠가 되고,
한 여인의 남편으로 살아가면서,
나의 오만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부모님의 훌륭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10.
나는 배웠다.
반짝 반짝 빛나는 스승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고,
내가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부족한 나를 필요로하는 이들 속에서
작은 나눔을 실천하면서
나의 작은 빛이 더 밝아지고
온기를 품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참된 스승은 뛰어난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게 빛남을 허락해준
가난한 영혼의 우리 이웃임을.
11.
나는 배웠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길을 걸을 때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도
혁신적인 방법을 발견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님을.
중요한 변화는 절대 혼자 시작하지 않고,
함께 할 벗들을 만나서
좋은 팀을 만들어가기 전까지
단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12.
나는 배웠다.
크고 거창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보다,
작더라도 일단 시작해보고,
소소하더라도 꾸준하게 지속하고,
미흡하고 부족하더라도 일단 세상에 내놓고,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이,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나갈 힘을 선물한다는 것을.
미숙한 나와 세상을 껴않으며,
조금씩,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사는 것이
온전한 인간의 길임을....
13.
나는 배웠다.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2018. 8. 21. 질문술사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안정을 내팽개치고 바로 그 새롭고 무한한 모험의 세계를 선택한 것이다" _ 찰스 핸디 [코끼리와 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