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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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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Aug 26. 2019

시집을 펴내지 못한 초보 시인 박씨 이야기

요즘 세상에 시집은 잘 안 팔린다고 한다


요즘엔 시는 잘 안 팔린단다


시를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시집을 사는 사람은 점점
드물어지는 시시한 세상이란다

이름 있는 시인들의 시는
예쁘디 예쁜 손글씨로 꾸며져
카톡이든 페북이든 공유하는 이 많지만
밥값도 안 되는 돈 내고 시집을 사는 이 드물더라

직접 만들어 본 표지 시안



내 나이만큼의 시를 엮어 모은 인쇄본 들고선
편집장님과 면식 있는 출판사 사장님들 만나보니
유명 시인 아니라면 요즘 시는 안 팔린단다

시집 말고 실용서 내자는 출판사에
눈치 없이 시집 내자 조르기 미안하고 민망해서
다음 책이나 함께 내자고 약속하고 돌아서는데
그동안 새로 써보겠단 책 목록이 든 폴더를 찾아서
모두 휴지통에 버렸다가

잠시 후에 소심히 복구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혼자 출판도 가능타 해서
내 나이보다 많은 추천사는 미리 받아두고
나 홀로 직접 편집을 시도해 본다

40편의 시를 모아서 만든 실험적인 인쇄본


내 나이만큼 쌓였던 시가 일 년도 안되어
내 나이 두배보다 더 많아졌다
편집을 하다가 멈춰 새로운 시를 쓰다 보니
쌓여가는 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시집 출간은 하염없이 미뤄져만 간다

익숙하지 않은 편집도 디자인도 혼자서 해보다가
출판사들 욕하고, 독자도 욕하고, 세상을 욕하다
아직 시집 하나 가지지 못한 어린 시인의 마음은
병들고 시들어 늙어만 간다

시인박씨 딸내미가 그려줌


사백 쪽이 넘는 두꺼운 시집을 내야 하는가
마음 아파 시를 쓰고, 가슴 아파 시를 또 쓰고
화가 나도 시를 다시 쓰다, 문득 이건 아니다 싶다

공책 한권 챙겨 들고

수락산 자락으로 나가 풀꽃도 구경하고

소풍 시인 할배의 흔적도 만져본다
메마른 계곡길 따라 주섬주섬 올라가다가
말라가는 새싹을 멍하니 바라보고 멈춰 선다

또 시를 쓰며 눈물짓고

눈물 닦고 시를 다시 쓰니
내 맘 한켠도 이파리 하나 만큼은 깨끗해진다
틈새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이 예뻐서
쭈그려 앉아 미소 짓고 펜을 들어 시를 또 쓴다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운동이라고
손바닥에 땀이 살짝 묻어 나오고
꽃잎 한 장만큼 딱 그만큼 따뜻해진다

표지 물음표 질문술사도 첫째 딸의 작품


누가 읽어볼지 몰라도 따뜻한 맘 전해 지거나
작은 깨달음 하나 전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를 계속 쓰는 건 멈출 수 없을 듯하다

다만 미안한 건 추천사 써 주고도,
시집 출간 소식을 접하지 못하는
맘씨 좋은 내 벗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사백 쪽 넘는 시집이 정말 시집일까 질문하다가
갈팡질팡 혼돈에 빠지고

새벽별 보면서 잠이 든다




직접 출판사를 차려야 하나.....


2019. 8.26

질문술사 시인박씨

시집을 출간한다는 의미를 다시 묻다  


#이건100프로사실이아닌 #문학적창작품이에요
#경험과과장이이리저리섞여서 #암튼고마워요

나태주 시인조치도 이리 말씀하신다. 겸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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