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가 될 것인가?
다른 사람도 네가 얘기한다는거 알아?
아니, 오직 너만.
누구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가 될 것인가?
나무 같은 벗이여,
그대 나무가 되고 싶다 내게 말했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같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무가.
루까는 제제에게 그런 나무였네.
모두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아니라.
제제에게만 특별히
그 그늘을 온전히 허락해 준 밍기뉴였다네.
루까 같은 벗이여,
그대의 그늘은 모두를 품어주기엔
아직 그만큼 풍성하지 않다네.
온 지구를 덮어주려고,
만나는 모든 인간에게 그늘을 주려고,
그만큼 크게 빨리 자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네.
그대의 제제가 누구인지 알고,
그대의 제제가 그늘이 필요할 때,
단 한 명의 제제를 위해 그늘이 되어준다고 해도
충분하다네.
나무 같은 벗이여,
그대가 맺은 열매를 모든 이들이
맛볼 수 없다고 너무 섭섭히 여기진 말게나.
그저 오고 가는 이들이 맛볼 수 있음 족하고,
제제를 위해 특별한 열매 하나 정도를
숨겨둘 수 있어도 좋다네.
루까 같은 벗이여,
내 질문은 이렇다네.
그대의 그늘에서 쉬고 놀도록 허락할
제제는 누구인가?
그대의 제제에게 그늘을 내어 주고도
한 뼘만큼의 여유가 남는다면,
내가 지쳤을 때 조금 쉬어갈 수 있게
허락해 줄 수 있으면 더 좋겠네.
나무 같은 벗이여.
2019. 8. 28.
나무가 되고자 하는 벗에게
질문술사 시인박씨는 주제넘은 질문을 했다.
‘누구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가 될 것인가?’
살아가는 동안 모두에게
그늘이 되어줄 순 없다.
우린 늘 한계 속에서 선택에 직면해야 한다.
PS. 나의 벗 루까에게,
그리고 자넨 이미 내게
그런 그늘을 제공해 준 적이 있다네.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내게 그늘이 필요할 때
옆에 서서 곁을 내어 준 적이 있었다네.
내겐 자네가 그런 밍기뉴 나무였어.
그대의 친구, 카뻬친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