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초고를 시인에게 보낸 후
버려질 운명
손으로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네
쓰고 버리고 구겨 버린 후
검열에도 살아남은 편지 한 통
그녀에게 전해졌네
인연은 끊어지고 세월이 흘렀네
수십 년 지난 후 문득
그 편지가 버려질 운명을 피했을지
쓸데없이 궁금해지는 날이네
군살 가득한 나이가 되어서도
손으로 편지 한 장 끄적여 보낸다네
그녀가 아니라 그분에게 보낸다네
시시한 원고와 부끄러운 부탁 담은 편지가
그분에게 전해질 때 까지는
두근두근 심장소리 들으며
당분간 밤잠을 설칠 듯하다네
나를 위한 시를 쓰지 말고
너를 위한 시를 써보라는 가르침에
부끄러운 시집이지만
버려질 운명을
피했으면 좋겠네
2019. 10. 10.
질문술사 시인박씨
버려질 운명을 다시 묻다
시집 초고를 손으로 끄적인 편지와 함께
한번도 만나뵌 적 없는 사랑하는 시인님께
방금 봉투에 담아 떠나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