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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Dec 31. 2019

책팔이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워도 팝니다


책팔이



한 달에 책 한 권 사서 읽는 이가 드문 이 시대에
훌륭한 작가들의 책도 뒤로하고

별 볼 일 없는 친구의 시시한 시집 나왔다며

기꺼이 읽어주는 이가 고마울 수밖에


책 사달라고, 서평도 써달라고 칭얼거리는 건
내 삶의 소중한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몸부림
허나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눌 수 없다


게다가 얼마라도 지갑을 열어 책을 사서
바쁜 연말에 시간을 내서 읽고

소감까지 보내주는 벗의 수고로움보다
내 글이 주는 가치가 더 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부끄러운 두 손, 불안하게 떨리고

다시 또 글을 쓰고 책을 낼 용기 사그라든다


읽어주는 이 많았으면 하면서도
읽어라도 주시라 먼저 선물로 보내지 않는 건
어쩌면 저자로서 가진 알량한 자존심일지도


착한 벗들에게 고맙고
가난한 벗들에겐 미안하고
훌륭한 벗들에겐 부끄러우나


그럼에도 염치없는 나는

시시한 시와 글을 끄적일 터이고
벗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질문들을 모아둘 터이며
부족한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일은

지속할 것이다




2019. 12. 31

질문술사 시인박씨


책팔이 (초고)
#詩足 : 2019년 12월을 돌아보며...

  12월 초에 <다시, 묻다>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조촐하게 지인들을 초대해서 출판기념회도 가졌습니다. 쿨하지 않게 매일 인터넷 저점 판매량과 순위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첫 책이었던 <혁신가의 질문>은 3000부를 초판으로 인쇄했지만, 잘 팔리지 않는 장르인 시집으로 분류되는 <다시, 묻다> 초판은 천오백부 가량 인쇄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투자한 돈이 천만원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주로 경제/경영서를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시집을 내주셔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를 도와준 분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늘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타임라인, 카카오톡의 단톡방 등 손바닥 안에 연결된 모든 채널을 통해 책 좀 사달라고 구걸을 한 듯합니다. 학습과 성찰, 송년회 등 다른 목적으로 모인 모임에서도 책이 나왔다고 알리고, 서평을 써달라, 인증샷도 보내달라며 지인들을 귀찮게 했습니다. 좋은 책이라면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알아서 퍼질 것이라고 태연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곤 했습니다.
 
 그 조바심 아래에 스민 감정을 마주하고 머물러 봅니다. 그 감정 아래에 스며있는 욕구를 들여다보다가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그 부끄러움 밑에 깔려있는 근원적인 갈망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 잠시 멈춰서 있습니다.

"밥값은 하고 있느냐?" 전에도 이야기 한 적 있지만, 제게 영향을 미친 질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입니다. 막내로 자라며, 형제들이 힘들게 부모님 일을 도울 때에도 혼자서 게으름 피우고 놀면서 뿌리내린 죄책감이 남긴 질문이지요.

 응석받아주는 벗들 덕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시집 홍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새해엔 다른 책을 써야 하니, 조만간 책팔이와 관련된 글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듯합니다. 그래도 1쇄가 다 팔려야 마음이 좀 가벼워지고, 밥값을 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이 미숙한 제 자신과 동행하면서 2019년에 대한 아쉬움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시집 구입해주시고, 응원의 댓글과 서평 남겨주시는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 남깁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시집 한 권 선물하지 못한 제 가난한 마음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책을 쓴다고 외부활동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소득이 줄어든다고 가벼워지는 통장 잔고를 벌써부터 걱정 하나 봅니다.  이 가난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벗들이 보내주는 응원이 큰 힘을 주는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의 글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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