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좋아할 일인가?
2020. 4. 24(토)
질문술사 시인박씨
뿌리 깊음을 다시 묻다
詩足 _ 뿌리 내림의 고단함
사람들은 뿌리 깊은 나무를 칭송하나, 뿌리 깊은 아픔을 아는 이 드물다. 사람들은 뿌리 깊음을 부러워하나, 뿌리가 깊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고, 깊어진 만큼 늙어간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곧바로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도 많나니'라는 용비어천가의 문장이 떠오른다. 천성적인 반골기질 때문인지, 지배 계층의 뿌리 깊음을 강요하는 주장에 쓸데없이 저항해 본다. 다수의 식물들은 풍성한 토양에서 깊이 뿌리내리기보다는, 오히려 척박한 환경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리며 자라곤 한다. 뿌리 깊은 칭송할 것이 아니라, 위로할 일이다.
젊은 나무보다 늙은 나무의 뿌리가 깊음은 자연스럽다. 뿌리 내림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기도 하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유연함은 사라지고 조금씩 경직된다. 젊은 시절에 멋진 어른들을 만날 때면, 그분들의 뿌리 깊음에 끌렸다.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보다는, 자유롭지 못하고, 뿌리내린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움켜쥔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오히려 추해져 가는 나를 보게 된다. 불안하지만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나의 늙어감을 새삼 느끼게 된다.